-
-
해피홀릭
권지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권지예라는 소설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2년 이상문학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뱀장어 스튜’라는 소설을 통해서였다. 그전에도 그 후에도 그녀의 글을 읽지 못했다. 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워낙 다작을 하는 작가가 아니라 그다지 많은 책들을 내지 않았고 그래서였는지 ‘해피 홀릭’이 이제야 두 번째로 읽는 권지예의 작품이자 첫 번째로 읽게 된 산문집이다.
해피 홀릭? 정말 해피 홀릭 할 수 있을까? 인생이 그토록 해피하단 말인가? 하긴 깔끔한 외모에 권지예만의 독창적이고 신선한 내용과 문장력으로 소설가라면 한 번쯤은 꼭 받고 싶은 이상문학상을 그것도 대상을 받은 여성 작가가 아닌가. 이청준, 박완서, 이문열, 양귀자, 윤대녕, 은희경, 이인화, 신경숙 같은 당대 최고의 작가들이 모두 이상문학상 대상 작사들이란 말이지...그러니 오죽이나 인생이 해피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도대체 얼마나 해피한 인생인지 볼까 하는 질투어린 마음으로 책을 펼쳐들었는데 난 그만 깔깔거리며 웃고 말았다. 첫 번째 챕터부터 솔직한 일상의 표현과 유쾌한 글발로 나를 몹시 웃겨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저 웃기기만 하거나 가벼운 농으로 일관된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그녀의 깊이 있는 성찰과 보고 싶은 이들에 대한 그리움, 삶에 대한 아픔과 반성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녀가 해피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 때문이다. 남편, 친구들, 선배들, 시어머니, 어머니, 아버지, 선생님, 짧은 만남으로 이름만 기억하는 사람 등등 그녀 주변의 사람들로 인해 그녀는 화가 나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지만 결국 그들로 인하여 그녀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인생이 해피할 수 있었다. 관계성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인간은 이 지긋지긋한 관계성으로 인하여 분노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권지예는 이러한 인간의 관계성에 대해서 솔직하고 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다.
타인의 삶을 그것도 굉장히 은밀하고 내면적인 일상을 몰래 들여다보는 기분으로 글을 읽는 재미도 좋았지만 나와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성에 대해서 그리고 이들로 인해 내가 얼마나 해피한지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해피하게 해주었다. 어쩌면 이들에게 나는 참 큰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 내가 이들을 해피하게 해주고 있는지 아니 오히려 이들을 화나게 하고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4월의 햇살로 따뜻해진 육체와 ‘해피 홀릭’이라는 책 한 권으로 따끈해진 마음까지 참 기분 좋게 따스한 봄날이다.
그러나 요즘엔 ‘행복은 불행이 감싸인 씨앗’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삶에도 행복한 순간은 있게 마련이며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사실 가장 무서운 건 불행보다는 불행의 반복이 가져주는 ‘희망 없음’이 아닐까...나는 그동안 행복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알고 보면 나는 ‘행복’이 아니라 ‘행운’을 꿈꿔왔는지도 모르겠다...행복과 불행은 빛과 그림자처럼 서로 상대적이라는 것이다...겸허하게 인생살이의 쓴맛도 받아들이면서 그 속에 든 삶의 진실을 따뜻한 눈으로 보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주 평범한 행복의 비결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 해피 홀릭 중 ‘ 행복에 대한 오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