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마을 이야기 1
제임스 캐넌 지음, 이경아 옮김 / 뿔(웅진)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남미소설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과부마을 이야기’라는 제목만으로도 기대감은 충분했다. 어렸을 적 브라질 작가인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보고 가슴 한 귀퉁이가 뻑적지근할 정도로 뭉클했던 기억이 난다. 커서는 칠레 작가인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그토록 가슴에 오래 남았었다. 콜롬비아 작가인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은 다 읽고 난 후에 나를 백년은 폭삭 늙게 만들었고 시인인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의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시집은 지금까지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집 중에 하나다. 최근에는 인기 작가인 브라질의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고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진정한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포루투칼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또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읽었던가. 아마도 이것이 내가 읽은 남미소설의 전부일 것이다. 이 몇 권의 남미 소설과 시는 너무나 흥미진진하고 강렬해서 그리고 아름다워서 여지까지도 내 뇌리 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콜롬비아 출신의 제임스 캐넌이라는 작가의 ‘과부마을 이야기’라는 소설은 기대했던 대로 남미소설 특유의 강렬함과 이국적인 향취(한국인인 내가 느끼기에)가 물씬 풍겼고 대담했다. 중간에 책을 내려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흡인력 있는 전개와 인물들의 독특함은 아, 역시 남미소설이다라는 감탄을 안 할 수 없었다. 내전으로 인해 남자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마을, 마리키타는 오로지 여자들만 존재한다. 물론 남자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소년들과 성직자의 위선을 상징하는 라파엘 신부와 같은 소수의 남성이 존재하기는 한다. 단지 라파엘이라는 신부는 마리키타라는 공동체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니 마리키타에 상처만 남기는 방해물일 뿐이다. 결국 소년들은 죽고 라파엘이 떠나고 나서야 이 마을에는 오로지 여자만이 존재하게 된다. 처음에는 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는다. 그녀들은 사나워지고 조금은 비이성적이 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이성을 되찾고 나름의 질서를 잡아가며 여유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나간다. 시간이 지나 네 명의 남성이 이곳으로 돌아와 가족을 만들고 염원하던 아이가 탄생하면서 이 소설은 마무리 된다.  

 

이 소설을 통해 제임스 케넌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 전쟁으로 인한 참상? 남성들의 권위주의 타파? 여성공동체의 낙관적인 비전? 글쎄...틀린 말은 아닌 것 같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전통주의에 대한 도전과 정치에 대한 풍자 그리고 조화와 탄생일 것이다. 제임스 케넌은 결코 어렵지 않은 이야기를 통하여 심지어 유머까지 곁들여 가며 그의 철학과 사상, 그가 바라는 희망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전쟁이 없는 세상, 남녀가 평등하게 조화를 이루는 세상, 이런 세상을 작가는 대담하고 거침없이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또 한편의 남미소설은 기대했던 대로 내 뇌리 속에 오랜 시간 머물게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