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온 바다에서 차를 마시다
한승원 외 지음 / 예문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낙이 있다. 턴테이블에 낡은 클래식 LP판을 얹어 잡음과 함께 퍼지는 음악에 푹 잠겨 있는 순간이 낙이기도 하고 힘겨운 일을 마무리 짓고 들이키는 차가운 맥주 한 잔이 낙이기도 하고 벼르고 벼르던 책을 손에 넣는 순간이 낙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차를 마시는 그 시간...나에겐 더 없이 소중한 낙이다. 물어 물어 좋은 차를 구입하고 좋은 차가 생기면 친구들을 불러 차를 나누고 이런 저런 이야기 삼매경에 빠지는 시간, 홀로 조용히 차의 맛과 향을 음미하며 마시는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귀한 낙이다. 그런 나의 손에 ''와온 바다에서 茶를 마시다''라는 책이 주어졌으니 그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는 사실 나조차도 책을 읽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는 시인은 시로 혹은 시적인 표현으로, 여행가는 기행문으로, 영화평론가는 영화로, 스님은 마치 설법하시 듯 각자 자신의 분야에 바탕을 두고 차에 관한 에세이를 집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따로 있다. 책을 읽을 때 가장 큰 쾌감은 감정이입이 되는 순간이다. 내가 마치 책 속의 누군가가 되버린 것처럼 몰입해 버리거나 그 사건, 그 현장에 나도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그 순간이 책을 읽을 때 찾아오는 큰 쾌감 중 하나다. 이 책은 읽는 내내 쉼 없이 읽는 사람을 책 속으로 현장 속으로 글쓴이의 느낌과 체험 속으로 끌어들인다. 와온 바다에서 茶를 마시다를 읽으며 난 얼마나 많은 쾌감을 느꼈던가.  

인도 캘커타에서 조병준님과 그의 친구 그레고르, 쏘화가 ''준''표 생강계피차를 둘러앉아 마실 때 나도 그 사이에 있었다.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는 그 생강계피차의 맛이 내 입에서 목구멍으로 뜨겁게 넘어가고 있었고 향긋한 계피향과 그들의 따스한 우정이 나에게도 어깨동무를 해주었다.
곽재구 시인이 고적한 선운사 한 켠에서 노스님이 내민 녹차를 마실 때 느꼈던 소쩍새 울음소리와 보리 익는 냄새가 서울 도심 한 구석에 자리잡은 나에게 전해졌다. 와온 바다를 두고 차 한 모금을 마실 때 차에서 풍기던 만월의 달빛내음도과 꽃내음은 이미 내 폐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정무인님의 고고한 꽃차들의 향과 따스하고 부드러운 다구들 그리고 한지를 통해 들어오는 햇빛 아래 내가 있었고 유건집님이 풀어 놓은 옛 이야기 속, 족수거사와 영수합 가족들이 둘어앉아 시회를 열어 시를 읊고 술에 취하고 시흥에 취하던 격식 없는 그 즐겁고도 풍성한 자리에 어느 틈엔가 나도 슬쩍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있었다.  

이연자님이 자분자분한 꽃차 이야기를 읽으며 마셔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감꽃차가 아까시차가 목련차가 진달래차가 나의 미각을 후각을 상상력을 끈임없이 노크했고 남난희님이 사랑채 툇마루에 앉아 바라보던 백운산과 빗소리 그리고 차 한 잔은 이미 나에게도 보이고 들리고 느껴졌다. 

차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평온한 여유와 차 한 잔이 주는 삶의 깊이 있는 성찰에 대해 나 같은 범인도 저 위에 비범인들도 다 똑같이 공감하는 것을 보면 ''차''라는 것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주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끝으로 조병준님의 글 중에 차에 관한 한 귀절을 소개하고 싶다.
"색, 향, 맛, 이름이 달라도 세상의 모든 차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불과 물과 어떤 재료가 합쳐서 만들어내는 어떤 신비로운 것이 있었습니다. 그걸 차의 연금술이라고 불러도 쫗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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