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 -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 101인의 가상유언장
도종환.황금찬 외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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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 아니 생명이 없는 무생물이라 할지라도 우주에 내재된 절대불변의 법칙 곧 생성과 소멸이라는 과정을 피할 수 없다. 인간은 존재가 소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 인하여 불멸을 소망하거나 내세를 꿈꾸거나 혹은 존재의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품게 된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법칙 앞에서 인간이 진정으로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이유는 존재의 소멸 그 자체가 아니라 가족, 연인, 친구 등 살아생전 맺어왔던 모든 존재들과의 관계가 영원히 종식되고 해체되기 때문이다. 나를 설명할 수 있었고, 나를 입증 할 수 있었고, 내가 ‘나’일 수 있도록 해주었던 모든 것과의 영원한 작별 앞에서 인간은 마지막으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 날>은 한국의101명의 문인들이 가상의 유언을 통해 자신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남은 생을 얼마나 소중하게 가꾸어 나갈 것인지 또한 소중한 사람들 위해 마지막으로 어떠한 말을 전하고자 하는지를 ‘유언장’으로 남긴다.  

기실, 유언장이라고는 해도 아직 임박하지 않았을 죽음을 상상하면서, 그것도 많은 독자들이 볼 것이라는 전제 아래 쓰여 진 이 유언장들이 과연 얼마나 진실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문인들답게 유려한 글 솜씨로 잔뜩 치장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유언장’이라는 형식은 이들의 마음을 진실로 숙연케 했다. 자신의 재산을 어찌어찌 해달라는 분부를 시작으로 반드시 땅에 묻어 달라, 화장(火葬)은 결코 안 될 말이다 혹은 반드시 화장을 해서 어디어디에 뿌려달라고 거듭 당부하는 모습은 당장이라도 망자가 될 것처럼 간절하고 절박했다. 카드빚으로 너 때문에 우리 가족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고 있느냐며 유언장을 통해 자식을 꾸짖고 타이르는 모습에서는 어쩔 수 없이 실소가 새어나왔고,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국보 1호는 남대문이 아니라 한글이 되어야 하니 반드시 자신의 뜻을 이루어 달라고 자식에게 당부하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꼬장꼬장한 어르신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흔들었다. 

유언장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거의 대부분 자신의 가족들 그 중에서도 부인 혹은 남편 그리고 자식들에게 쓰여졌다. 당연한 이치임에도 불구하고 당신, 여보, 아들 누구야, 딸 아무개야를 읊조리는 구절은 가슴 한 켠이 쥐가 난 것처럼 저려왔다. 서경림님의 '이어짐 속에 내가 있으니'라는 제목의 유언장을 읽으며 결국 눈시울이 붉어진다. “작년에 많은 돈을 주고 치과에서 이 몇 개를 심었을 때, 당신은 나에게 그 이들이 다 마모될 때까지 살아야 한다고 웃으며 말했소. 농담 속에 당신의 간절한 염원이 깃들어 있는 것을 왜 내가 모르겠소? 그런데, 이제 그것들을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게 되었소. 허허” 남편과 부인의 머리에는 이미 하얗게 서리가 내렸을 것이고, 반평생을 함께 해온 노부부 중 한 사람이 먼저 떠날 때의 심정은 어떠할까. 남겨진 채 한 사람을 먼저 떠나보낼 때의 심정은 또한 어떠할까. 

하지만 책의 제목은 이러하다. 오늘은 내 생의 마지막 날이 아니라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 날'이라고. 바로 오늘이, 매일 매일의 아침이 남은 생의 첫 날임을 깨닫게 될 때 세상을 사유하는 지평 자체가 달라지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중한 존재들을 더듬어 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사랑하는 사람들, 소중한 존재들이 나에게는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들을 사랑하고 아껴 줄 수 있는 시간이 아직 나에게 남아있음을...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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