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이틀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 들녘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종신 검사관'의 요코야마 히데오 작품

'종신 검사관'은 기대치 않은 곳에서 꽤나 재미있고 무척 신선했던 작품이었다.
그런 연장선상의 가벼운 기대감으로 집어든 이 책은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에 이어 이것저것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가슴 쓰리는 책이었다. 


일반적인 미스터리나 서스펜스적 요소 하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사람의 감정에 대한 심리적 긴장감과 불안감으로, 읽는 내내 뭔가 아릿한 저림을 느끼게 했던 책이다. 
그리고 재독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감정적 스릴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사라진 이틀'은,
용의자가 자백은 했으나, 범죄 후 자수하기까지 행적이 묘연한 이틀 동안의 시간적 공백을 가리킨다.


가지 소이치로. 
일본 경찰 간부인 경감. 7년전 백혈병으로 독자를 잃었으며,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부인을 교살, 그리고 이틀 간 시체 방치.


이야기의 줄기는 <경찰관의 아내 살인, 그런데 왜 그는 자살하지 않았을까> 이다.

책의 번역자도 지적했듯이, 일본인의 '자실'에 대한 문화적 시각은 우리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자살을 통해 자기 최후의 자존감과 긍지를 지켜내야 한다고 믿는 문화.


그래서, 그를 바라보는 타인들은 '어째서 아내를 살해한 경찰이라는 사내가, 자살로 신의를 지키지 않고 구차하게 자수함으로써 목숨을 연명하려 하느냐!'라는 분노로부터 의문과 경계를 드러낸다.
그리고 수사는,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의문을 쫓아가는 여섯 명의 사람
자부심으로 무장된 베테랑 심문관, 중앙으로의 복귀를 노리는 검사, 특종의 먹잇감을 노리는 신문사 '용병' 기자,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는 전직 판사 아버지를 둔 현직 판사, 정상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변호사, 그리고 은퇴를 앞둔 감옥의 교관.

이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의 시선으로 가지 경감을 바라본다.
그리고 끊임없이 묻는다, 왜 자살하지 않았냐고, 자수의 뒷배경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냐고.


그리고 가지 경감은 답한다.
"죽을 장소를 찾았었다.... 그렇게 말하면 되나요?"

이것은 분노일까, 아니면 슬픔일까.
가슴이 타들어갈 듯이 뜨거워졌다.
시키는 한마디 한마디 말을 씹어뱉었다.
"그런 걱정은 필요 없습니다. 나는 그저, 당신의 진정한 마음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고, 진짜, 시키는 자신의 말을 책임지기 위해, 그리고 다른 다섯 명 역시 그들 나름의 도리와 자기 방어를 위해, 가지 경감의 일에 매달리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 꼭 1년만 더 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알게 된다.
왜일까? 왜 하필 일년일까?

그리고 각자에게 덧씌워진 질문,
"당신은 무얼 위해 사나요?"

우리는 각자 무얼 위해 사는 걸까?
그냥, 주어진 삶이니까?

나는 무얼 위해 사는 걸까?
목적 없는 삶은 불안하고 무의미한 걸까?


인생 오십년.
1년만 더 살고 싶다던 가지 경감은, 또 다른 생명 하나를 더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자신을 버텼다.
사방이 어둠인 절망 속에서, 그가 희망을 찾아 꿈틀거렸던 건, 그저 삶에 대한 욕망 때문일지 모른다.
그래서 구차한 걸까? 희망으로 버티는 것이?


나는,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걸까?


답은, 없다.




후지바야시는 재판관 전용 복도를 걸으면서 자신의 발언을 조금 후회하고 있었다.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쓰지우치라는 사내는 질투심이 많은데다가 자부심이 강하여 아랫사람의 의견이나 반론을 용납하지 않았다. 현 지법원장과 파벌도 같고 사이도 그럭저럭 괜찮기 때문에, 아주 작은 실점도 지법원장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상황이었다.

자중해야지, 후지바야시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근무평정이 나쁘게 나와 벽지에 있는 지원으로라도 보내지면 세다가야를 오가기 힘들어진다.



나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각자의 상황에서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에게 부끄럽게 아둥바둥거리며 산다.
희망의 크기도 각자 다르고, 절망의 크기도 각자 다르다.

모습만 다를 뿐이지,
누구가 조금씩은 구차하다.
갑과 을의 관계는 상대적인 것이며,
희망과 절망은 동정의 앞뒷면과 같다고 한다.

인생은 누군가 대신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가 평가하는, 구차하지 않은 삶, 그게 과연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절망을 희망일 수 있게 할, 그런 사라진 이틀이 내게도 존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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