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 - 키웨스트와 아바나에서의 일 년
아널드 새뮤얼슨 지음, 백정국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평점 :
헤밍웨이에게 글쓰기 수업을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작가가 아닌, 스승으로로서, 인간으로서의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떤 분야에 능통하고 싶을 때, 우리는 그 분야의 최고 권위자의 조언이나 가르침에 자연스레 의존하고, 그들의 생각을 습득하고자 노력한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이들에게 헤밍웨이는 의심할 여지 없는 분야 최고의 권위자이자 살아있다면, 문하생들이 가장 수업을 받고 싶어하는 이가 아니었을까.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은 그런 헤밍웨이에게 글쓰기에 관해 수업을 받은, 더불어 헤밍웨이, 그가 인정한 단 한명의 문하생인 아널드 새뮤얼슨과 헤밍웨이가 함께한 시간을 기록한 책이다. 작가가 되고싶었던 새뮤얼슨은 코스모폴리턴지에 실린 헤밍웨이의 ‘횡단여행’을 읽고 그를 만나기 위해 키웨스트로 간다. 헤밍웨이를 조우한 그는 그와 함께 필라호에 동승하게 되고 그 곳에서 1년을 보내며 ‘작가 수업’을 받게 된다.
“글쓰기에서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절대로 한 번에 너무 많이 쓰지 말라는 걸세. 절대 샘이 마를 때까지 자기를 펌프질 해서는 안 돼. 내일을 위해 조금은 남겨둬야 하네. 멈춰야 하는 시점을 아는 게 핵심이야.” _본문 발췌
“잘 쓸수록 힘들어져. 오늘 쓴 이야기는 어제 쓴 것보다 나아야 하니까. 세상에서 가장 고달픈 짓이지. 쓰는 일 말고도 하고 싶고 더 잘할 수 있는 게 수두룩하지만, 펜을 놓고 있을 때는 기분이 더러워져. 내가 가진 재능을 썩힌다는 생각이 들거든.” _본문 발췌
“소질만 있다면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야. 내가 자네에게 줄 수 있는 딱 한 가지 충고는 꾸준히 쓰라는 걸세. 물론 지독하게 고된 짓이지. 내 경우 단편 열 개를 써봤자 그중 하나 정도만 쓸 만한 뿐 나머지 아홉은 버린다네.” _본문 발췌
헤밍 웨이는 새뮤얼슨에게 단순히 글을 잘 쓰는 법에 대해서만 일러주지 않는다. 오히려 방법을 조언하기 보다는 글을 쓰는 이가 스스로 무엇을 쓰고, 왜 쓰고, 어떻게 쓰고 싶은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답을 내리게하는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친절하지 않지만, 어쩌면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그의 이런 조언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밀도 있되 생생한 조언으로 들려온다.
“쓰고 싶은 건 나도 마찬가지라네. 그게 내가 사는 이유니까. 그러나 우리가 낚시하는 동안에는 나도 별수 없어.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니야. 글쓰기를 직업으로 여기고 매달릴 거라면 나중을 위해 둘도 없이 귀중한 자료를 얻게 될 걸세. 이런 경우가 아니면 결코 만나볼 수 없는 흥미로운 사람들도 만나게 될 테고.”_본문 발췌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 외에도 이 책에서는 <노인과 바다>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의 새치 낚시 경험이 이 소설에 어떻게 생생하게 반영되어있는지 일종의 ‘후일담’도 함께 담겨져있다. 또한 작가로서의 헤밍웨이가 아닌 인간 헤밍웨이의 인생관과 사소한 습관까지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들도 담고 있다.
글을 쓰는 법에 관한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오히려 글쓰기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대한 존경하는 작가의 생각, 철학을 온전히 느낄 수 있던 책이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뿐아니라 글을 좋아하는 모든이들에게 꽤, 괜찮을, 도움이 될, 멋진 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