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인생에게 바칠, 멋진 소설

디어 라이프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책을 읽기 전 나는 늘 습관적으로 그 책에 대한 누군가의 추천사를 먼저 들춰보곤 한다.

‘내가 쓰는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이라고.

'2013 노벨문학상'이라는 타이틀보다 사실 소설가 신경숙의 이 한마디가 더 매력적이었다.

문학을 읽는 이유는 사실 인생의 어떤 한 부분을 발견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단편은 그것을 캐치하기에 더할 나위없는 방법이고, 그래서 때론 가장 섬뜩하고, 시원하다. 그러니,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이라고 형용하는 이 한마디에 어찌 읽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마친 400페이지가 넘는 소설. 그 끝에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저 한마디는 결국 <디어 라이프>를 사람들에게 소개할 가장 적절하고 멋진 형용사이자, 곧 이 소설의 부제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것을 말이다.

그녀의 말대로 <디어 라이프>는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각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은 지금 당신의 모습과 내 모습과 어느 하나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앨리스 먼로는 그런 일상의 한 순간들을 정확하고 섬세히 포착하여 우리 눈앞에 펼쳐놓았다. 알고 있지만 모른 척 했던 것,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했던 것, 욕망했지만 인내했던 것들을.

그리고 그 이야기들, 그 인물들 사이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한다. 친절하게 내어주지는 않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찾아 그 미학을 배로 느낄 수 있게 하는 작가 특유의 배려는 그녀가 얹어주는 덤이다.

현재와 순간을 재발견하는 것 외에 <디어 라이프>가 주는 또다른 즐거움은 ‘깨달음’이다.

단편 <호수가 보이는 풍경>에서 작가는 흐려지는 기억과 잡을 수 없는 세월을 이야기하며 욕망, 나이 듦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자갈>에서는 언니의 죽음을 괴로워하는 ‘나’를 보여주며,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결국은 ‘받아들이는 법’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는 삶의 지혜를 넌지시 던져준다.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하게 될 인생의 저편과, 맞닥뜨릴 절망의 심연을 어루만지듯, 짧은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는 우리의 삶을, 우리를 응원하고 있다.

더 설명하려하지 않아도 감동은 충분하고, 더 꾸미지 않아도 얻는 것은 넘친다.

나는 왜, 이제야 이 아름다운 책을, 그리고 작가를 알았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머문다.

단편이 주는 미학은 지나칠 수 있는 삶의 미묘한 순간들을 잡아내어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디어 라이프>는 그 정점에 있는 가장 세련 된 작품이 아닐까 한다.

언젠가 삶이 지겹다고 생각이 될 무렵, 그리고 소중한 누군가가 그의 한계에 다다랐다고 할 무렵, 나는 주저없이 이 책을 읽고 또 읽히고 싶다. 우리는 아직 삶의 저 깊은 곳을 보지 못했다고, 그러니 조금 더 열심히, 멋지게 살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앨리스 먼로의 그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