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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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대학교 교양수업 때 롤리타 컴플렉스와 소아성애자에 대해 배운 기억이 있다.

롤리타.

언어유희의 대표라는 꼬리표도 있었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 예전의 기억 때문에 어느 정도의 (불편한)편견을 가진 채 이 책을 시작하였다.

아름다운 첫 문장으로도 유명하지만 실제 첫 문장을 읽고도 애초에 가진 편견때문에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아.뿔.사.


나는 감탄 아닌 걱정이 앞섰다.

앞으로 어떤 글을 읽는다 한들, 이보다 더 아름다운 문장과 형용, 언어의 완벽한 조화를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1p.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 리. 타.

 

책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그의 문장력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험버트가 ‘나의 롤리타’를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단순한 수단으로서의 언어가 어떻게 인간의 ‘오감’을 자극 시키는지, 그 진수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험버트의 내면을 서술함에 있어서는 지루할 틈 없이 역동적이었고, 시적이었다. 이렇게 애절하고 아름다운 언어의 조합 때문인지 소설 중 후반부에서는 내 머릿속에 있던 기괴하고 비뚤어진 애정행각을 하는 (이해 불가능한)험버트는 사라지고, 너무도 사랑했기에 죽음을 각오하고 그 사랑을 갈망하는 (어쩌면 사랑에 있어서는 우리와 같은)험버트가 들어와 있었다.


412p.
2년 동안 어마어마한 쾌락을 마음껏 누린 덕분에 욕망이 습관화되고 말았다. 그래서 늘 욕구불만을 느끼며 살아가야 했는데, 이러다가 학교와 저녁 식사 사이에 어느 뒷골목에서 우연히 유혹과 마주치게 되면 갑자기 거침없는 광기를 부리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외로움은 나를 점점 부식시켰다. 친구와 관심이 절실했다.


마지막 장을 덮은 지 하루가 다 되어가지만 그 감흥이 다른 어떤 소설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

내 기준에 있어서 이제껏 좋아하는 책들은 주로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많거나, 인물과 내용적인 면에서 마음이 사로잡히거나,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체험하게 해주는, 그래서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는 책들이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이것들을 완벽하게 포함한 책은 보지 못했다. 헌데 내게 <롤리타>가 그 모든 기준을 충족시키는 첫번째가 되었다.

오감을 자극하며 살아움직이는 문장들, 비상식과 편견까지 넘어선 한 인간의 사랑에 대한 열망, 그리고 그에 대한 깊은 이해까지.

아마도 한동안, <롤리타>는 내 인생 최고의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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