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없다를 읽고 예수는없다 -수행





예수는 없다를 읽고 예수는없다

예수는 없다를 읽고나서…

이 글은 분명 한국 학자가 쓴 글인데, 영어 제목이 안에 들어 있다.
아마도 저자가 외국에서 교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영어 제목을 붙여 본 것인지 아니면 이 책의 영어본이 있는 건지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다.
제목은 No Such Jesus. 굳이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그런 예수는 없다` 정도가 될 것 같다.
이 글의 제목에서 이 글의 의도는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지금 한국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런 예수는 없다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기존의 기독교 신앙을 특별히 한국 사람들이 믿는 그런 방식 속에서 탈피하여 좀 더 세련되고 현시대에 맞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강 글을 읽지 않고도 어떤 내용이 있을 것인지 짐작할 수는 있었다.

책에 여러 가지 재밌는 비유가 나와 있다.
아마도 이 비유를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맞아. 기독교를 이런 식으로 믿고 또 강요하고 그러면 안 되지`라고 말이다.
자신의 아빠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철수 이야기나 벌거벗은 임금님에 비유한 기독교 신앙인들의 모습 등 저자의 목적에 따라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방식이 참신하다.
저자는 기독교 신앙을 버리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런 예수, 그런 기독교, 즉 기존의 배타적이고 문자적인 신앙, 과학적인 현시대를 설명할 수 없는 신앙에서 탈피하라고 한다.
그러니, 예수는 아예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런 예수가 없다라는 영어 제목이 훨씬 책의 의도를 잘 표현해주고 있는 듯 하다.

저자는 아기를 목욕시키고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기까지 버리면 안 된다는 말을 인용한다.
그리고 이 책은 목욕물을 버리고 아기를 살리는 시도를 하겠다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이 아주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아기를 목욕시키고 목욕물만 버리자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본질적인 기독교 신앙을 살리자는 것이 기독교인 나로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런 신앙의 회의를 통해서 더 건전하고 세련된 신앙을 가진다면 세상을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대상으로 생각한 독자는 아마도 한국의 크리스천들일 것 같다.
책의 전반적인 흐름과 내용상 저자의 의도대로 많은 크리스천들의 반발을 일으키기기에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보수적 문자적으로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들이나 선교에 헌신하는 교회들에 대해서 그게 기독교의 핵심이 아니라고 과감하게 이야기한다.
이런 태도로 글을 쓰는 것이 좀 위험하다고 느끼는데 글의 전반적인 느낌은 무식하고 구시대적이고 유치하게 놀고 있는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한 수 가르쳐주겠다는 식이다.
무식한게 죄라고 뭐 충분히 그렇게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원주의적인 현대 사상 및 신학계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이단아가 아닌 상냥한 전달자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바로 이 책의 집필 대상인 한국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만 이 책을 읽을 수는 없었다.
내가 느끼는 문제는 저자가 버리고자 하는 목욕물이 내가 볼 때는 아기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 책이 이상하게 보일 수 밖에 없다.
아기를 목욕시키고 아기를 버리자는 이야기로 들린다.
사탕껍질이 아무리 고급스럽고 예쁘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사탕 알맹이다.
내게 사탕 알맹이를 빼고 사탕 껍질만 주는 사람에게 나는 당혹스러운 느낌을 가질 것이다.
이 책은 굉장히 잘 쓰여진 책이다.
그러나, 저자는 기독교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고 함부로 사탕 알맹이를 빼고 껍질만 주는 이상한 행동을 취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좋게 평가할 수 없다.
차라리 정말 솔직하게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라고 이야기했다면 그 용기와 논리에 더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다.
문자 그대로 성경을 믿는 그런 신앙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옳다.
배고파 죽겠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죽을 것 같다는 의미가 아니라 배고프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맞다.
그렇게 해석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정말 배고파서 죽을 것 같은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전자는 그 안에 포함된 의미를 받아들여야 하고 후자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저자는 모든 말을 전자와 같이 그 속에 함축된 의미만을 파악하려고 한다.
전자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실수지만 후자를 함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도 분명 치명적인 실수이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기독교인들은 현재 사상이나 종교학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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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는 없다를 읽고 예수는없다 -수행
출처 : 탐구스쿨 자료실


[문서정보]

문서분량 : 2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예수는 없다를 읽고 예수는없다
파일이름 : 예수는 없다를 읽고 예수는없다.hwp
키워드 : 예수는없다를읽고예수는없다,예수,없다,읽고,예수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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