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7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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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완역 출간에 힘써주신 출판사와 번역가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이다.  어렸을 때 동화로 읽었거나 혹은 만화로 본 작품들 중에 꼭 완역본으로 보고 싶은 책이 몇 권 있었지만 삶이 바쁘다보니 미루고 미루던 중이었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인데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걸리버 여행기>의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그러한 마음은 기우에 불과했다.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나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걸리버의 아버지가 노팅엄셔에 자그마한 땅을 갖고 있었고 아들이 다섯인데 그 중 셋째 아들이 걸리버다.  집이 그렇게 넉넉지 못하니 걸리버는 유명 의사의 도제로 들어가 4년을 일한 뒤 추후에 의사가 된다.  걸리버는 양말가게 딸과 결혼 했으며 사교력이 별로 없어 병원운영이 잘 안되어 선상의사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소셜은 흔히 허구라고 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 또는 사춘기 그리고 20대 초중반쯤까지 얼마나 이 허구의 세계에서 행복했었던가.  상상의 나래를 편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나에게 허구의 세계는 점점 매력을 잃어갔다.  현실은 눈앞에 있었고 벅차고 힘든 여정이다.  현실은 그야말로 현실이다.  나의 삶이 허구에 빠질 틈을 나는 좀처럼 갖기 힘들었다.  점차 뉴스를 보고 자기계발서를 보고 정보전달 책을 보고 가끔 사치를 부려봤자 두시간 남짓의 영화나 공연을 보는 게 다였다.  TV드라마나 예능을 보는 것도 시시하게 느껴지기 시작한지 꽤 되었다.  뉴스만큼 재미있는게 있을까 싶은 정도다.


그래서 이책을 읽으며 알 수 없는 감정이 나의 가슴을 뻐근하게 만들었다.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에 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소설가는 허구를 만들어내는, 비약적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뻥쟁이인 셈인데, 조나단 스위프트는 보통 뻥쟁이가 아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소인국의 나라나 걸리버가 겪은 일들이 모두 실제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한문장 한문장이 위트 있었고 마치 '진실'을 말하는 듯 거침없이 재미있게 묘사되었기에 어느 부분도 놓칠 수 없이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희로애락과 삶의 '진실'이 담겨져 있다.  조나단 스위프트는 도대체 몇 살에 썼길래 이런 통찰력을 갖고 있는 걸까.


걸리버는 선상 의사로 일하다가 배가 난파되고 소인국에 들어가서 혁혁한 공로를 세우고 고위 공직자가 되기까지 하지만 배신과 음모에 휘말리기도 한다.  소인국 사람들이 걸리버에게 먹을 거리를 갖다 주거나 걸리버의 몸 위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다치기도 하고 걸리버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 이동하기도 하며 궁정에 불이 났을 때는 무엄?하게도 오줌으로 불을 끄기도 한다.  적이 쳐들어 왔을 때 안경을 쓰고 적들의 화살로부터 눈을 보호해 가며 적을 제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명 피해나 파괴를 반대하는 의견을 황제에게 내는 박애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명을 거역한 행동들과 정치인들의 시기심으로 인해 위기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삶의 이치와 철학은 담았지만 조나단 스위프트가 묘사하는 소인국 세계 그리고 거인으로서의 걸리버는 온통 눈이 휘둥그레해 지는 재미를 담았다.  나의 머릿속에서 아주 재미있는 만화와 영화가 스르륵 전개 되었다.  걸리버가 황제의 허락 하에 소인국 도시를 구경하는 모습만 해도 그 세밀함에 감탄하게 된다.  혹시 거리에 남아있을 산책자를 밟지 않기 위해 조심해서 걷는 걸리버의 모습과 열어놓은 창으로 들여다보는 궁전의 내부까지,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며 어느 영화보다도 재미있는 영화를 머릿속에서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다.  


걸리버는 소인국을 떠나 다음 세계로 또 다음 세계로 모험을 이어가게 된다.  완역본은 조나단 스위프트가 묘사하는 모든 것을 최대한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작가가 17세기의 사람인데 2019년을 살고 있는 나를, 그것도 이제 각박한 삶에 치여 허구의 세계에 시들어진 나의 마음을 이렇게 가슴뛰게 움직일 수 있다니.  명작은 시대를 초월하는구나.  나는 영미문학을 전공한 사람이고 시대를 넘는 명작을 꽤 많이 원서로 읽었지만 조나단 스위프트의 작품은 처음 읽어본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다.  책을 읽으면서 책과는 상관없는 나의 삶의 고민이나 앞으로의 계획과 걱정이 굉장히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렇게 넓고 밝을 수가 있다는 걸 조나단 스위프트를 통해 깊이 배웠다.  그것도 너무나 익살맞고 유쾌한 재미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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