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한 인생

태연한 인생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2년 6월

예전에 고등학교 때, 문학교과서 였는지, 아님 문제집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새의 선물>이 지문으로 짧게 발췌되어나왔던 적이 있다. 전문도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꽤 인상적이었다.(어떤 내용인지는 기억안나지만) 그래서 포스트잇에 제목을 적어놓고 시험기간이 끝나자마자 한 권을 다 읽었던 기억이 있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주위를 관찰하고 부조리를 조근조근 고발하는 모습이 강하게 와닿았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소설집은 한 권 읽었고,(기억이 나지 않음) 처음만나는 장편소설이라 기대를 많이 했다. 처음 몇 장을 넘길 때만 해도 뭔가 일어날거같은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류의 부모가 처음 만났던 장면이라든지, 류의 어머니가 아버지의 부정을 알게된 후 연극을 하는 배우처럼 시작된 여행을 아무렇지 않게 이어가든 장면 등이 그랬는데 소설은 제목 처럼 그냥 태연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크게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고 이어진다.

소설을 쓴 작가이지만, 평도 그렇고 대중에게도 그렇다 할 인기없이 소위 잘나가지 않은 작가로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사회에 적대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냉소주의자 요셉과 소설의 주연이지만, 처음과 끝 빼고는 크게 등장하지 않는 류가 나온다. 즉흥주의자인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로 인해 삶의 무게를 다 짊어져버리고 인생에 대해 시니컬해졌던 어머니를 둔 류는 그런 가족환경 때문인지 요셉과의 열렬한 사랑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다.

소설은 그 일이 있고 시간이 많이 지난 후의 둘의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해서 헤어진 연인이 감동스럽게 재회한다든지, 영화에서 처럼 우연한 조우가 있거나 하지는 않는다. 단지, 회상씬에서 잠깐 나오는 것 빼고는 둘의 재회는 둘 만의 이야기는 소설에서 그렇게 구체적으로 다뤄지지는 않는다.

요셉은 잘나가지는 않는 작가로 지금은 아내와 이혼을 코 앞에두고 혼자 살면서 여러 카페에서 글을 쓰고, 대회의 심사를 하면 통장에 얼마의 돈이 들어오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사회에 비판적이고 누구의 말이든 냉소적으로 받아치며 꽤나 고고한 지식인듯 살아가지만, 그의 제자 이안이 보기에는 그는 여제자와 불륜에 빠지고,(현재도 유부녀와 만나고) 속물주의에 제자의 글을 단편소설로 쓰는 속물주의에 빠진 위악적인 인간 일 뿐이다.

사회나 인간을 모순을 지적하는 인물이 도덕적이지 못하고 속물적인 이야기. 어쨌든 밝은 분위기의 소설은 아니다. 요셉이 부정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가 지적하는 것들이 잘못된 것들은 아니었으니 그야말로 불편한 진실들.

....지식인으로서는 정의로운 사람도 정서적으로는 편견투성이었으며 평등을 주장하지만 아는 사람들과 평등해지기 싫어했다. 많은 기자들은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몇가지 사례만으로 자신의 편견을 일반화할 뿐이지만 전문가들은 더 나아가 거기에서 규칙을 발견해내서 자신의 신념체계로 대중을 속이기를 좋아했다. p. 143

요셉이 생각하기로는 한국의 노인들은 양손에 근대화와 봉건주의라는 상반된 이데올로기를 쥐고 편의에 따라 그 두가지 중 하나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내밀었다. p. 203

소설에서는 요셉을 통해 문단의 상업성과 파벌, 권위주의 또 위악적인 개인(요섭)에 대해 비판하고 류를 통해서는 매혹과 고독 두 가지의 사이에 고독을 택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있다.다 읽고 느꼈던 것은 이것말고도 뭔가 더 있을거같다는 생각이 계속 맴돌아 뭔가 찝찝한 기분이든다. 소설을 다 이해하기에는 내 내공이 많이 부족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