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의 눈물
권지예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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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중편과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 마지막 단편을 빼고 모두 등장인물들이 이국에서 체류 혹은 여행하며 겪는 에피소드들이다. 작가의 글은 예전에 <무민은 채식주의자>라는 소설집에서 '미래의 일생'이라는 짧은 소설을 읽긴했지만 초단편이라 크게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정식으로 권지예 작가의 소설을 읽게 된 소감은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을 만큼 인물의 변화하는 감정에대한 묘사에 대한 표현이나 전개가 뛰어났다. 인간의 느끼는 감정을 단 하나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그 미묘한 감정과 상황을 공감할 수있게 서술하는 전개에 매력을 느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중편의 '베로니카의 눈물'은 소설이 아니라 실제 작가의 경험담인가 싶을 정도로 쿠바에서 여성작가의 생활기를 잘 보여주고있다. 낯선 외국에서 이방인이 시행착오를 겪고 현지인들과 소통하는 과정이 촘촘하게 묘사된다. 과장해서 활자가 화면으로 바뀌어 영화를 보는 느낌으로 읽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쿠바라는 나라에대해서는 남미라는 것 밖에는 솔직히 잘 몰랐다. 소설 속에서 본 쿠바는 공산주의 국가로, 외국 여행객과 현지인이 쓰는 화폐가 다른 이중통화 시스템이다. 와이파이도 허락 된 곳에서만 쓸 수있고, 자국민들은 호텔에 출입이 가능하지않아 호텔 담벼락에 서서 인터넷을 사용하며, 주택난으로 헤어진 부부와 그들의 새로운 애인, 할머니 등 여러 구성원이 한 집에 사는 공동주거가 흔하다고 한다. 줄서서 국가가 배급하는 빵을 받는 모습은 우리나라 60-70년대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호텔에서 음료를 시켜 먹으며 시원하게 인터넷을 하는 외국인 여행자들과, 그 아래 노상에서 햇빛을 피해 그늘이 드리워진 호텔 벽에 바짝 들러붙어 찌꺼기 와이파이로 동냥 인터넷을 하는 현지인들. 빛과 그늘이 공존하는 이 나라의 상징적인 이 풍경은 한 장의 작품 사진처럼 내 뇌리에 박혔다.(p.50-51)


낯선 이국에서의 체류기도 재밌게 읽었지만 개인적으로 이 편에서는 흥미로웠던 건 호의 속 저의에대한 심리묘사였다. 어른이 되며 여러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는데, 어느순간 상대방의 말을 표면 그대로 믿지않고 저의를 생각하곤 한다. 저 사람이 이 말을 무슨 뜻으로 한거고 이 행동은 무슨 뜻이 있는 건가를 끊임없이 추측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에서 모니카는 베로니카의 행동과 말에 저의를 파악하고 오해하지만 치졸해질까봐 끝내 말을 꺼내지 못한다. 뒤에 반전이 있긴하지만 그런 인간 대 인간의 저의에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그 밖에도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사진과 인터뷰 자료를 준비하러 프랑스 파리로 온 재이가 파리에서의 과거를 회상하고 마지막에 독자를 충격에 빠트린 <낭만적 삶은 박물관에나>, 죽은 남편이 남긴 선물을 전달하러 쿠바로 가는 아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표현한 에피소드 <파라다이스 빔을 만나는 시간>, 친구대신 딸과 플로리다주의 올랜도를 가게 된 서연이 딸의 미투를 알게되고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플로리다 프로젝트>, 남편과 발칸반도 패키지 여행을 하며 같이 온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교양있는 척 아래 숨어있는 과시욕과 그 비슷한 본성에 대한<카이로스의 머리카락>, 사회면에서 볼 수있는 비극적인 기사를 소설화 한 것 같은 <내가 누구인지 묻지마> 


슬픈은 가슴에 응어리를 지게 하지만 분노는 슬픔을 태워버리더군요(p.183 / '파라다이스 빔을 만나는 시간')


모두 소설이지만 이국이라는 것만 빼고 현실과 동떨어져있지않다. 모든 에피소드가 생생하고 쌉싸름하다. 단편을 원래 좋아하지않지만 하나같이 흡입력있었다.  이렇게 맛깔나게 글을 쓰는 작가를 만났는데, 신인작가가 아니라 다른 작품을 언제든지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뻤다. 나는 여행기도 좋아하지만 하루키의 <먼 북소리>처럼 체류기도 좋아하는데 찾아보니 작가의 프랑스 체류할 때 쓴 <빠리 빠리 빠리>가 있었다.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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