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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 독점계약 번역 개정판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 까치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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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역사란 무엇인가를 처음 읽은 것은 갓 스무살이 되었을 때였다. 그때 나는 선배에게 뭔가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울 수 있는 그런 책이 없냐고 물었고 선배는 과학 혁명의 구조’,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같은 책들과 함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어 보라고 권했다. 그리고 난 그 중에서 제일 얇아 보이고 내 관심사와도 제일 맞닿아 있던 역사란 무엇인가를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 처음에 느껴지던 그 막막함이란. 나로서는 노학자가 펼쳐가는 점잖은, 그러면서도 방대한 이야기를 따라갈 인내심이 없었다. 다행히 각 챕터들은 마지막에 결론을 요약해서 말해주고 있었고(각 챕터가 하나의 강연이므로), 그래서 나는 흐리멍텅한 정신으로 중간을 넘기다가, 각 챕터 끝부분 결론만을 머리에 남기고 독서를 끝냈던 것 같다. , 그래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지 그럼. 그리고 각 학문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어야지. 당연한 얘기를 하고 있었군. 이 정도의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다시 이 책을 떠올리게 된 건 영화 변호인을 보게 된 까닭이었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그 영화에서 검사측은 피고인 학생이 함께한 독서모임이 여러 불온서적을 탐독했다는 이유로 그 모임을 이적단체로 지목했고, 그 불온서적 중에 이 역사란 무엇인가가 있었다. 배우 송강호가 역을 맡은 변호사는 이 책의 지은이인 E.H.카에 대해서 설명하며 영국의 저명한 역사가이자 외교관인 이 사람의 저서가 어떻게 불온서적이 되는지, 단지 지은이가 소련사를 저술했다는 것과 그것을 위해 소련을 왕래한 것이 불온서적이 되는 이유라면 이 책을 필독서에 넣고 있는 서울대학교는 그야말로 빨갱이 집단이 되는 것인지를 힘있게 따져묻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그렇지, 나도 읽어봤지만 그런 정중하고 이치에 맞는 책을 불온서적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말이 안되지라고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그러고 보니 내용이 잘 기억이 안나는군, 조만간 다시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나서 얼마전, 나이 마흔이 되어서야 다시 까치글방에서 새로 번역되어 나온 이 책을 펼쳤을 때 나는 너무나 놀랐다. 여러 미진했던 것을 보충한 최신 번역이었지만, 사실 그전에 보았던 책과 많은 부분 같을 것인데도 한 장 한 장을 읽어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이럴 수가. 그리고 다시 영화 변호인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 국가기관이 이 책을 불온서적으로 본 것은 터무니없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별안간 그들이 진실로 이 책에서 두려워했던 게 무언지가 내 가슴 속에 와닿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젊은이들에게 지은이가 던지는 묵직한 진실의 외침이었다. 내가 감히 요약하자면, ‘역사를 어떤 고정된 틀에 가두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라는 외침.

 

이 책에 있는 총 6개의 챕터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첫 챕터인 역사가와 사실이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지은이는 사실을 다루는 역사가들의 주된 태도들을 비교한 뒤, 역사가 그저 사실관계의 나열이라고 보는 오래된 태도들에 대해 논박을 하고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으로 챕터를 마무리한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하지만 정확하게 이 문장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전체를 함께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다(까치글방 번역에서는 이 문장 전체의 영어 원문도 함께 실어 놓았는데, 좋은 센스였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재와 과거 사이의 대화라는 것은 곧 앞에 말하는 역사가사실의 상호작용이란 말을 다시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역사가(현재)가 사실들(과거)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그 가운데에서 도출해낸 하나의 중간결론이다! 따라서 역사는 그저 사실의 수집에 머무르는 무미건조하고 고정된 어떤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해석해야 하는 펄펄 살아 있는 것이다. 이것을 시작으로, 지은이는 역사에서 개인과 사회 문제’, ‘역사와 과학과의 관계’, ‘역사에서 인과관계의 문제등을 다루며, 마찬가지로 역사학을 사회나 과학, 인과관계 등에서 떨어뜨려 박물관 안에만 존재하는 죽은 존재로 받아들이는 여러 생각들에 대해서 시종 정중하게 반론을 제기한다.

 

생각해 본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한참이나 지난 지금이지만, 우리들은 역사를 과연 살아있는것으로 인식하고 있는가? 오히려 학자들 스스로 전문가임을 내세워 대중을 역사와 떨어지게 만들고, 국가는 역사에 대한 한가지 견해만을 대중들에게 강요함으로써 역사를 점점 굳어진 사체로 만들려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이 마흔에 다시 읽어본 역사란 무엇인가는 나에게 참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책은 변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내가 이만큼의 나이가 되어, 책을 읽으며 지은이처럼 젊은이들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었고, 힘있지만 시종일관 품격을 잃지 않는 지은이의 태도를 보며 나 또한 남은 인생을 그렇게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을 곁에 두고 다시 때때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 역사에 관심을 잃지 않도록,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재해석과 탐구로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눈을 다듬어 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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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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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사실성과 넘치는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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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왜? - 1945 ~ 2015
김동춘 지음 / 사계절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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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 분석력과 시각을 가진 사회학자의, 현시대 우리 사회의 제문제에 대한 비판과 분석.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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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 Denma 1~3 박스세트 - 전3권
양영순 지음 / 네오카툰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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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기지와 상상이 무사히 완결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며.. 어서 후속편을 기다리게 되는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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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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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영혼에서 나오는 진한 이야기들. 이 시대의 현자 중 한 명인 저자의 책은 언제든 신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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