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H. 로렌스 유럽사 이야기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지음, 채희석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양사에 관한 지식이 파편적이라고 느껴 한 번 정리해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 최근 번역된 로렌스의 '유렵사 이야기'를 염두에 두게 되었다. 외설 시비가 있는 작가에게 옥스퍼드대학이 역사서를 의뢰했다는 책의 탄생 배경부터가 몹시 흥미로웠다. 최근 '장미의 이름'을 읽고 중세 역사를 다시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불길처럼 일어 이 책을 사게 되었다.



유럽사를 정리한 교양역사서로는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20세기 초반에 나온 역사서임에도 쉽게 읽히며 단순히 시간 연대기가 아니라 역사를 핵심주제로 분류하여 역사 지식을 정리하기에는 무척 좋은 책이었다. 물론 20세기 초반부에 나왔기에 동양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다. 훈족의 아틸라가 중국 황제와 동등한 조약을 맺었다거나 , 흉노족과 훈족을 동일시하는 서술은 당시 동양 역사에 대한 이해가 무척 부족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대적 한계로 최신 역사연구가 반영되지 않은 것도 아쉬우나 교양 역사서로는 손색이 없다.



서두에서 역사적 인물의 사적인 면모를 탐구하고자 하면 인물이 변질된다는 이야기가 처음부터 흥미를 끌었다. 셰익스피어의 카이사르와 버나드 쇼의 카이사르, 그리고 실제 카이사르는 전부 다르다는 것이다. 카이사르의 사적인 모습이 완연히 어떠했는지는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카이사르는 엘리자베스 시대적 면모가 들어갈 것이고 버나드 쇼의 카이사르는 빅토리아 시대적 면모가 들어갈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를 서술할 때는 사적인 면모는 제하고 공적인 기록에 집중해야 한다는 서술이 공감 가면서도 흥미를 끌었다.



저자는 역사를 단순히 사실을 나열하거나 구태여 인과관계를 설명하려는 두 가지 방식을 다 거부한다. 오히려 역사의 역동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도 독특하다고 볼 수 있다. 로마에서 교황과 황제들로 또 왕들로 그리고 부르주아들로 역사가 어떻게 역동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역사가 순환한다는 일종의 경향성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헤겔의 절대정신이 생각나기도 했다.



내게도 역사는 참 좋은 친구였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역사책을 곁에 두고 살았고 언제나 가장 좋아하며 가장 잘하는 과목이었다. 역사를 공부할 때는 전혀 힘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쉬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사람들이 역사의 유익에 대해 말하며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고들 한다. 나는 사실 그런 것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냥 좋고 재밌으니깐 역사책을 계속해서 읽는 거지 다른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는 것이 요즘 세태에 맞으므로 과연 역사에 일가견이 생기면 인생에 무슨 유익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최근에 해보게 되었다. 비유하자면 역사는 인류의 기출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답지는 없는 기출문제이다. 역사적 순간순간에 이랬으면 좋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으레 말하고들 하지만 사실 어떤 선택이 좋은 결과를 불러왔을지는 아무도 장담 못한다. 그저 짐작할 뿐이다. 그리고 역사를 기계적으로 이해한 경우, 히틀러가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함락하고도 들어앉은 거를 보고 모스크바에 집작 하지 않고 군대를 세 방향으로 나누어 패망을 자초했듯, 그다지 좋은 결과를 부르지는 못한다. 역사라는 기출문제를 연구하면서 인간사의 경향성을 배울 수 있는 거 같다. 그 경향성을 바탕으로 현시대적 상황을 복합적으로 적용하면 더 좋은 통찰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구태여 붙이는 역사의 유익이라면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