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기는 사마의 더봄 평전 시리즈 1
친타오 지음, 박소정 옮김 / 더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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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혔던 책인데, 중간에 시험기간이 껴있어서 구매한 지 한 달이 넘어서야 후기를 써보게 되었다. 사실 삼국지 이름을 앞세운 자기개발서류의 불쏘씨개들을 퍽 싫어하는 편에 속한다. 아주 어렸을 때는 몇 번 속기도 했었다. 옛날에는 보통 조조, 제갈량을 앞세워 그런 불쏘씨개들을 많이 팔았는데 요즘에는 사마의가 많이 소환되는 거 같다. 이 책도 그런 편견이 있어서 살 생각이 없었으나 내용이 그런 자기개발서류가 아니라 고증도 철저하고 그냥 사마의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삼국시대를 다룬다고 하여 구매를 하게 되었다.

책은 재밌고 술술 읽힌다. 첨언하자면 삼국지에 관심이 많고 몇 년 전 방영한 [대군사 사마의 호소용음]을 본 사람이라면 사실 다 아는 내용이다. 사마의에 대한 캐릭터성이 다르긴 하지만 다 아는 내용이어서 막 엄청 새로운 내용을 기대하고 보면 실망할 수 있으니 유의하기 바란다. 삼국지 관련 콘텐츠는 사실 다 아는 내용이어도 물고 뜯고 씹고 맛보는 재미가 있으니 아는 내용이라는 것이 내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나마 신박했던 것은 사마씨 집안이 원래는 무인 집안이었다가 사마의 몇 대전에 문인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사실과 집권 초기 조상에 대한 재평가, 조예 사망 과정에서 나타난 혼란스러운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준 것, 그리고 고평릉 사변에서 환범의 역할과 같은 것들은 생각할 거리를 퍽 던져줬다. 환범이 고구마를 얼마나 먹은 기분이었을지 상상만 해보아도 나도 답답해질 지경이었다. 옛날 같으면 어휴 멍청한 조상이라고 씹었겠지만 요새는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우리야 역사를 거의 전지한 입장에서 보는 거고 사람이란 게 급변을 당해도 침착하게 세상을 바둑판으로 볼 수 있지가 않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드물고 대부분의 사람은 조상같이 행동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택지가 옳고 그름이라면 인생사 편할 것이지만 대부분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옳은 것과 편한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후자를 택하면서 살고 평상시에 전자를 택하던 사람들도 위급한 상황에서는 후자를 택하는 경향이 많은 거 같다. 어쩌면 생존 본능적인 면모일 것이고 그걸 극복하고 세상을 바둑판으로 보는 인물들이 안 좋은 말로 하면 좀 싸패끼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이게 술이부작의 자세인가 출처 표시가 명확한 거 같지 않아 좀 불편했다. 소설적 면모도 조금 유치해 보이기도 했다. 읽다 보니 친타오 교수가 전문 역사서와 대중역사서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전문적인 내용이 들어가면서도 대중성을 갖추기 위해 소설적 도구도 사용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적 면모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고평릉 사변 때 사마의가 독백하는 장면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마의가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스스로는 자기가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마의는 남들이 참지 못하는 모욕 같은 것은 대수롭지 않게 참아 넘기나 남들이 잘 참는 아니 모욕이라고 느끼지도 못하는 내 머리 위에서 전횡을 일삼으며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비유하자면 내 바로 앞에서 욕하는 시정잡배 한 사람과 나라를 전횡하는 난신 한 사람 둘 중 누구에게 더 모욕감을 느끼는가? 아무리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본능적으로 전자에서 더 모욕감을 느낄 것이고 진정으로 후자에서 더 모욕감을 느끼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고평릉 사변에서 이해가 안 되는 점이 그런 부분이었다. 아니 굳이 왜? 조상과의 관계가 그 정도로 험악했던 것도 아니고 아들들의 출세길도 그렇게 막힌 것도 아니다. 거기다가 본인은 해볼 거 다해본 일흔 넘은 노인이다. 지금도 충분히 많은 나이지만 당시에는 평균 수명을 훌쩍 넘긴 나이이다. 인생의 말년에 와서 그런 담대한 선택을 한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제 은퇴도 했고 역사의 다음 장면은 자식들에게 맡기면 될 것이 아닌가? 친타오 교수가 사마의의 독백 형식으로 제시한 존엄성 문제는 그에 대한 하나의 해답으로 적절했다고 본다.

상당히 재밌는 책이었고 충분히 권할만한 책이다. 저자가 사마의를 마냥 숭배하는 것도 아니고 부록에서는 오히려 퍽 비판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나 또한 사마의에게는 양가감정이 있는 거 같다. 숭앙하는 점도 있지만 혐오스러운 점도 있다. 대표적으로 망탁조의로 세트로 묶여서 역적 취급당하기도 했고 석륵은 조맹덕이나 사마중달같이 고아나 과부를 이용해먹기는 싫다고 까기도 했다. 그런 대중적인 비판도 있지만 나는 사마의의 가치관이 어떠했냐를 따져보고 싶다. 사마의에게 효와 충, 두 가지 가치 중 하나를 택하라 한다면 사마의는 주저 없이 효를 고를 것이라 생각한다. 사마의의 일생에서 언제나 중요했던 것은 나와 가족을 지키는 것이다. 이게 뭐 나쁜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현대인 대부분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함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마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출세를 했고 군주를 섬겼으며 제갈량과 겨루어도 보고 말년에는 정변도 일으켰다. 개인으로는 그걸 나쁘다고 할 수 없겠지만 시대의 입장에서는 그냥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행동을 하다 보니 결국 천하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니 천하를 어떻게 어떻게 해야겠다는 목적성이 애당초 결여되어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대는 그 시대 나름의 사명이 있고 그 시대에 천하를 가진 사람은 나름의 사명을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삼국시대에 무수한 영웅들이 쏟아져 나와 자신의 사명을 시대에 적용시키려고 천하를 다투었으나 결국 천하를 얻은 자는 가족을 지키려던 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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