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니체 - 고병권과 함께 니체의 <서광>을 읽다
고병권 지음, 노순택 사진 / 천년의상상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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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침놀”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니체의 “서광”을 원전으로 한 강독서이다. 고병권 씨의 “다이너마이트 니체”가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여 이 책도 구매하였다. 전체적으로 깔끔했지만 “다이너마이트 니체”와 중복되는 부분도 많은 거 같고 “서광” 자체가 “선악의 저편” 보다도 더 해석의 여지가 분분하기 때문에 “다이너마이트 니체” 보다는 만족감이 적었던 거 같다. 물론 비교해서 만족감이 적었던 것이고 마음을 울리는 대목도 많이 있어서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헤겔의 “황혼의 미네르바”와 니체의 “서광”을 비교하는 것은 퍽 흥미로웠다. 보통 지혜를 황혼에서 많이들 찾는다. 황혼에서 우리는 행복감을 느끼고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사람들의 지혜를 우러러본다. 하지만 황혼은 치명적인 약점을 갖는다. 황혼은 필수적으로 피로를 동반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저녁 시간대에 안락을 원하고 노년기에는 안식을 원한다. 피로는 정신을 변질시키기 마련이기에 황혼의 때는 우리가 가져야 할 시간이 아니다. 새벽, 즉 “서광”의 때가 우리가 가져야 할 시간이다. 하루의 시작은 부담스러울 수가 있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또 산더미라는 걱정이 앞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안락을 찾지 않게 되고 정신을 단련하게 되는 것이다. 시작하는 때는 항상 “서광” 이어야 한다.



근대의 잡식성과 고대의 순수성을 비교하는 대목이 많이 나온다. 니체가 근대인을 비판하는 점에서는 ‘이상’ 이 생각났다. 당시 일제 치하 경성을 양복을 입은 절름발이라고 비유하며 조선의 모조 근대를 말했다. 우리나라 역사의 “근대 부재”와 관련하여 니체의 근대 비판은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었다. 니체의 근대 비판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고대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신선했다. 물론 니체가 상정한 “고대”란 “역사적 고대”와 일치하는 개념은 아니다. 상당히 신화적 색이 입혀진 “고대” 이고 “근대”를 비판하기 위해 상정한 개념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나는 대목은 고대와 근대의 맹세의 무게의 차이였다. 자기가 약속한 것, 신 앞에서 맹세한 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마저 내던지는 고대인을 근대인은 이해하지 못한다. 근대인의 말의 무게는 너무나 가볍다. 고대인의 그런 행위에 근대인은 조소를 보내기도 하나 고대인이 맹세를 목숨으로 지키려 하는 것은 결국 자기 확신이다. 신 앞에서의 맹세는 결국 자신과의 맹세이다. 고귀한 자의 말의 무게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자신을 믿기에 자신의 말을 지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행동한다. 근대인은 위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행동을 꺼리고 가만히 편안함을 누리기를 원한다. 그에 반해 고대인은 자신을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항상 행동하며 살아간다. 내 말의 무게는 어떠했는가? 내 맹세의 무게는 어떠했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아란 무엇인가? 에 대한 답으로 소유를 내놓은 부분이 인상적이다. 여기서 말한 소유는 ‘재산을 가지다’는 소유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정신, 기억, 충동과 같은 것들을 포함한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결국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위대한 사람은 시대를 자신의 것으로 여긴다. 감각과 관련해서 수년 전 해부학 수업 시간에 당장 같은 보라색을 보아도 모든 사람이 제각각 조금씩은 다른 색으로 인식한다. 라는 당연하지만, 당시에는 충격적인 내용을 들은 기억이 난다. 이 책에서 비슷한 내용이 언급되는데 사람의 감각이 이렇게 다르기에 합리적 이성에 따른 인식이란 것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조금은 다른 결론을 내놓았다. 인식하는 사람 수 만큼 세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개인이 각자 자신의 세계를 이해하고 나의 세계가, 나의 시대가 나의 것임을 확인하고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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