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5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김근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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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5대 장편소설을 다 읽어보자는 열의를 가졌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죄와 벌에 이어 “백치”를 읽게 되었다. 오래전 “백치”를 처음 접했을 때는 읽는데 퍽 답답할 거 같은 예감이 들어 거부감이 들었다. 제목이 백치이니 백치가 주인공일 테고 그러면 목이 메듯 답답한 장면들이 많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언제나 나를 실망하게 하지 않았기에 이 책을 구매했다.



백치란 사전적으로 지능이 아주 낮아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백치”의 주인공인 공작은 그 정도의 중증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물론 사전적으로 백치일 시절도 있겠지만 그 시절이 소설에서 상세하게 묘사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착하고 순진하며 약간 감정절제가 힘든 수준이었다. 일상생활도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공작이 백치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어서인지 초반부에는 공작이 왜 백치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으며 다른 인물이 공작에게 백치라고 하면 괜히 나까지 모욕감이 들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점점 나도 모르게 공작을 정상인의 범주로 올려두었다가 후반부에 사교계에 처음 소개하는 자리에서 감정을 절제 못 하고 이리저리 떠드는 것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닥쳐, 이 눈치 없는 백치야!’라는 생각이 들어 놀라기도 했다. 사실 후반부의 공작은 이해하기 힘든 모습을 보이며 점점 몰락해가는 것이 아니냐는 스산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 소설도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상당히 암울하게 결말이 지어졌다. 지금까지 읽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죄와 벌” 보다 훨씬 비극이라고 생각했다. 두 작품 모두 살인사건을 다루는 것에 반해 “백치”에서는 도스토옙스키식 이상적 인간, 그리스도 공작이 나온다고 해서 밝은 결말을 예상했는지도 모르겠다. 끔찍한 살인사건을 다룬 소설들은 희망찬 결말을 그리고 이상적 인간이 나오는 소설은 암담한 결말을 그리는 것에는 물론 합당한 뜻이 있을 것이고 나도 은연중에 알 거 같기도 하다. 그러나 비극을 보고 나서 느껴지는 헛헛함은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이 소설에는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나온다. 모든 인물이 상징하는 바가 있고 그 심리도 도스토옙스키 특유의 묘사가 더해져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모든 인물을 하나하나 다 언급하기는 힘들므로 주인공 미쉬낀 공작을 중심으로 인물에 대한 감상을 남기려 한다. 사실 로고진이나 이뽈리뜨는 도스토옙스키 소설에서 많이 봐왔던 인간군상이라 그렇게까지 흥미롭지는 않았다. 미쉬낀 공작은 이전 소설에도 보기 드문 인물이라 더 흥미가 갔던 거 같다. 초반부에 그가 모욕을 느낄 상황이 여럿 있었는데 그는 모욕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남다른 부분이긴 하다. 그가 모욕을 느끼지 않자 오히려 모욕을 준 인물들이 더 분노를 느끼는 것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다른 인간을 본 것이다. 우리가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감정, 그중에서도 부정적인 감정을 전혀 가지지 않는 인물을 보면 분노가 일 거 같다. 나와 다르면서 이상적이니깐, 심지어 나도 공작이 전혀 모욕감을 느끼지 않자 자연스럽게 내가 대신 모욕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 사람의 미세한 심리를 잘 묘사한 거 같다. 공작이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 백치가 되어 간다고 느꼈다. 특히 아글리아와 나스따시야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나중에 가서는 진심으로 둘 다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의아하기까지 했다. 이게 백치의 사랑인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 그렇게 백치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는 로고진을 위로하는 장면에서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백치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자기가 사랑하던 여자를 죽인 자를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



아글리아와 공작이 나오는 장면들은 이 소설이 로맨스 소설로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의 감정을 어쩔 줄 몰라 한 아글리아의 모습에 괜스레 설렘을 느끼기도 했는데 아글리아의 말로도 비극적이라 안타까웠다. 사실 아글리아와 나스따시야 모두 광기의 면모를 보였다. 그렇기에 백치 공작을 사랑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공작은 슈나이더 교수의 치료로 정상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된 후 러시아로 와서 여러 인물과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그리고 다시금 정상 생활이 불가능한 백치가 되어서 슈나이더 교수의 치료를 받는다. 어쩌면 백치가 공작의 기본값이고 잠시 역할을 하기 위해 정상인으로 돌아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점은 아마 도스토옙스키가 그리스도의 공생애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도스토옙스키는 백치 상태가 가장 영광스러운 상태라고 생각했나? 발작도 사랑한 양반이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나스따시아는 공작을 거부하고 로고진에게 갔다. 용서를 거부하고 벌을 받으러 간 것이다. 용서와 벌, 나는 사실 둘 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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