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종말은 투표로 결정되었습니다
위래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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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종말은 투표로 결정되었습니다>책에는 6명의 작가님이 종말을 주제로 한 단편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다.


마치 흑백영화의 한 장면을 찍은 것처럼 블랙과 회색, 화이트 톤이 주를 이룬 표지는 종말이라는 주제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다양한 느낌과 이미지들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한 것 같아서 좋았다.

책을 처음 펼쳤을 때 나오는 차례에 적힌 6가지 단편의 제목들을 보며 각기 다른 작가님들이 집필하신 다채로운 이야기를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장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단편 소설인 '죽이는 것이 더 낫다'를 집필하신 위래 작가님은 이 책의 작가님들 중 내가 유일하게 아는 이름이자 서평단으로 신청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위래 작가님의 웹소설, 슬기로운 문명생활을 완결까지 실시간으로 달렸었고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작가님이 쓰신 단편소설은 과연 어떤 내용일지 정말 기대가 됐다.

어느 날 미국에서 우연히 발견된 한 권의 책에는 읽는 사람에게 살인 충동을 불어넣는 섬뜩한 능력이 있었다. 책의 능력으로 인해 다수의 사망자들이 발생했고 뒤늦게 책의 위험성을 알게 된 국가기관은 책을 사회로부터 격리하여 완전히 없애기는커녕 이를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고 한다.

수감되어 있는 사형수나 범죄자들을 이용해 책의 내용을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한 뒤 언제든지 국가의 이해관계에 따라 제거하고 싶은 사람을 암살하는 데 사용하려고 하는 권력자들의 의도가 참 어처구니없었으나 저런 위험한 능력을 가진 책을 자신들이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이 더욱 경악스러웠다.

결국 책을 통한 암살작전은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기며 국가기관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게 되고 책을 통해 불러일으킨 살의는 이내 전 세계에 급속도로 퍼지며 살해 주의라는 새로운 사상을 탄생시키게 된다. 그로 인해 인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방법으로 사람이라는 종의 멸종을 코앞에 두게 된다.

물론 이 세계에도 인류를 지켜내기 위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수서관 클레어는 책의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든 접하기만 한다면 성별, 인종, 부와 권력을 가리지 않고 살의에 전염되기에 인류의 마지막 보루인 바벨 도서관에 어렵게 손에 넣은 책의 원본을 보내고 인류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는 어느 책의 열람을 요청하지만 바벨 도서관의 위원회들도 결국 어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호기심과 욕망과 교만을 이겨내지 못한 듯하다.

요청을 수락할 수 없다는 답변을 보낸 위원회에게 클레어가 보낸 새로운 메시지에는 '도서관과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혹시 그 책을 읽으셨나요?'라고 적혀 있었다.

이 문장을 마지막으로 단편소설은 끝이 났지만 글을 다 읽고도 느껴지는 여운과 소름 돋는 느낌에 한동안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지를 못했다.

위래 작가님의 상상력과 종말이라는 소재를 풀어나가시는 신선한 전개 방법이 진심으로 감탄스러웠다.

이 외에도 책의 제목과 관련이 깊은 유권조 작가님의 '침착한 종말'은 사회의 주요 역할을 인공지능에게 전부 전담한 미래에 안드로이드 의원들의 투표로 인류의 종말이 결정되게 된다. 이러한 결정이 났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한 뒤에도 직장에 출근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점차 인류의 종말이 현실화되며 다가오는데 종말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글을 뚫고 생생하게 느껴져서 인상적이었다.

미래의 사람들이라고 안드로이드의 갑작스러운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건 아니었다. 안드로이드 의원들을 저지하고 인류 종말 결정을 어떻게든 되돌려 놓겠다는 저항군들로 혼란스러운 바티칸에서 한 안드로이드가 의원이 되기 전에 집필했던 소설의 결말을 알고자 하는 '혜민'은 의원과 홀로 독대할 수 있는 짧은 시간 동안 종말과 테러와는 전혀 상관없는 자신의 소망을 이루고자 했다.

종말의 위기 앞에서 우연히 보게 된 책의 결말을 알고 싶었던 혜민의 소망은 이루어졌지만 분노한 사람들에 의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안드로이드가 물리적으로 파괴되어도 이미 예정된 종말의 시간은 피할 수가 없었다.

종말이 주제인 만큼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의 결말은 인류의 종말로 귀결이 된다. 그럼에도 6편의 이야기가 종말로 향하는 과정 속에서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종말을 맞이하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작가님들이 글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따뜻한 시선과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아 좋았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각 단편소설들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계속 떠올라서 작가님들의 다른 작품들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며 찾아봤는데. 이토록 멋진 글을 쓰시는 작가님들을 알 수 있게 되어서 너무 행복했다.


*본 서평은 황금가지로부터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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