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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평전 - 스포츠는 국경을 넘어 마음을 이어준다
데라시마 젠이치 지음, 김연빈 외 옮김 / 귀거래사 / 2020년 8월
평점 :
한글판 <손기정 평전>의 원본인 <評伝 孫基禎>에 대해 일본의 사와후지 도이치로 변호사가 작년 5월말 쓴 독후감입니다. 사와후지의 허가를 얻어 여기에 전재합니다. (발행인 겸 역자 김연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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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두 번 다시 일장기 아래서는 뛰지 않으리라”-손기정, 금메달을 딴 후의 다짐
<사와후지 도이치로(澤藤藤一郎) : 변호사> (2019.5.26.)
어제(2019년 5월 25일) 지구좌(地球座) 총회에 참석했을 때 사회평론사(社會評論社) 마쓰다 겐지(松田健二) 사장으로부터 『評伝 孫基禎』(寺島善一 著)을 받아서 흥미 깊게 읽었다. 저자의 입장은 공평하다. 올림픽과 스포츠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지배 역사도 함께 다루고 있다. 그런 만큼 독후감은 역시 가볍게 쓰기 어렵다. 일본인의 조선에 대한 차별의식의 저류가 공공연히 드러나고 있는 지금이라서 더욱 그렇다.
저자는 근대 올림피즘의 숭고함을 강조하고, 손기정과 동 시대 육상 선수들과의 교류를 “스포츠로 쌓아 올린 우정은 국경을 넘어 언제까지나 불변”이라며 칭송하고 있다. 오시마 겐키치(大島鎌吉, 1936년 베를린올림픽 일본선수단 기수. 1964년 도쿄올림픽 일본선수단장으로 16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여 ‘도쿄올림픽을 만든 남자’로 불렸다. 역주)’, 제시 오웬스(미국. 베를린올림픽 100미터 등 남자 육상 4관왕. 역주), 하퍼(영국. 손기정에 이어 마라톤 2위) 등과의 교류는 확실히 감동적이지만, 현실의 가혹함에 압도된다.
국위선양의 내셔널리즘, 인종차별, 그리고 상업주의의 발호라는 올림픽 사정(事情)은 1936년 당시나 현재나 별반 큰 변화는 없지 않을까.
내년(2020년) 올림픽은 역사수정주의자가 수상을 맡고 있는 나라, 민족차별주의자가 지사 자리에 있는 수도 도쿄에서 개최된다. 정말로 도쿄올림픽 개최의 적극적 의미가 있는 것인가.
프로‧아마를 가리지 않고 스포츠가 융성하고 있는 지금, 젊은이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예전에 불합리한 처우를 받았던 조선인 육상 선수가 있었다는 것을.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했기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그 대표적 인물이 손기정이다.
손기정, 1919년 8월 출생(1912년의 오류. 역주). 당시 이미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다. 가난의 고통 속에 달리기를 계속하며 마라톤 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내, 세계기록 보유자로서 1936년 8월 9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 도전, 금메달에 빛난다. 당시의 올림픽 신기록. 또 이때 조선인 남승룡도 동메달을 획득한다.
그 시상식에서는 ‘일장기’가 게양되고 일본 국가 ‘기미가요’가 연주되었다. 그것은 손기정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굴욕이었다. 훗날 그 자신이 이렇게 말했다.
“우승 시상대에서 일장기를 쳐다보며 일본 국가를 듣는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 내가 과연 일본 국민인가? 그렇다면 일본인의 조선동포들에 대한 학대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결코 일본 사람일 수가 없다. 일본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압정에 신음하는 동포를 위해 뛰었다는 것이 본심이다….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일장기 아래서는 뛰지 않으리라. 이 고충을 더 많은 동포들이 알아야 된다.”
손기정도 남승룡도 시상식에서는 음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손기정은 유니폼 가슴에 붙어 있던 일장기를 우승자에게 주어진 월계수로 가리고 있다. 시상식 바로 정면에서 본 사진에서는 가슴의 일장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옆에서 촬영한 사진에는 일장기가 찍히고 말았다. 이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게재한 것이 8월 25일자 동아일보였다. 잘 알고 있는 ‘사라진 일장기(일장기말소사건을 말함. 역주)’ 사건이다.
현지의 일본군 20사단 사령부가 격노하여 즉시 총독부와 경찰에 관계자의 긴급 체포를 명했다. 이렇게 해서 5명의 관계자가 체포되어 40여 일간의 잔혹한 고문이 행해졌다. 게다가 동아일보는 무기한발행정지 처분, 5명은 언론계로부터 영구추방 되었다.
그런데, 손기정과 남승룡의 시상식 후, 일본선수단 본부는 선수촌에서 축하파티를 여는데 두 명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 “차별과 멸시에 대한 항의였을 것이다”라고 한다. 그 시간에 두 명은 어디에 있었을까.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던 안봉근이라는 인물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 안중근의 사촌이다.
손기정은 그때 안봉근의 서재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태극기’를 대면했다고 한다.
“이것이 태극기로구나. 우리 조국의 국기로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감전이라도 된 듯이 뜨거운 것이 몸을 흘러갔다. 태극기가 이렇게 살아 있듯 우리 민족도 살아 있다는 확신이 용솟음쳤다.” 이것이 그의 자서전 『아아 월계관에 눈물(ああ月桂冠に涙ー孫基禎自伝)』(講談社‧1985년)의 한 구절.
그 후 손기정은 철저하게 경찰의 마크를 받는다. 도저히 금메달리스트로서의 취급이 아니다. 그가 일장기를 달고 뛰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었다. 지도자가 되겠다며 도쿄고등사범(도쿄교육대학을 거쳐 현재 쓰쿠바대학. 역주)과 와세다(早稲田)에 입학을 지원했지만, 수험을 거부당했다. 메이지(明治)대학만이 따뜻하게 받아들였지만, 당국은 이것을 허가할 때 조건을 붙였다. “다시는 육상을 하지 않을 것.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얼굴을 내밀지 말 것. 가능한 한 조용하게 지낼 것”이었다고 한다.
메이지대학은 하코네역전(箱根駅伝)에서 그를 뛰게 하려고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들 손정인의 말에 의하면 2002년 임종할 때 남긴 말이 “하코네역전에서 달리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마라톤은 올림픽의 꽃이다. 반듯이 최종일에 거행되는 최종종목. 이 특별한 경기의 승자에게는 특별한 경의가 표해진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10만의 관중이 기다리는 스타디움에 선두로 모습을 드러내고, 마지막 100미터를 12초대로 달린 슈퍼 히어로. 그것이 일본인으로 등록된 조선인 손기정이었다.
손기정은 조선민족의 영웅이 되었다. 민족의 단결과 연대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입장에 섰다. 일본 당국은 그 언동을 제약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손기정이 조선인의 민족적 자각과 긍지를 고무하는 언동을 하지 않을까 하고 우려했던 것이다.
메이지대학 명예교수인 저자는 손기정과 메이지대학의 친밀한 인연을 자랑으로 여기며 이 책을 썼다. 게이오(慶應)도 와세다도 도쿄고등사범도, 이 메이지의 자세에 경의를 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문은 아래에서. (링크 생략. 역자)
(2019년 5월 26일)
<사와후지 도이치로(澤藤藤一郎) : 변호사>
初出:「澤藤統一郎の憲法日記」2019.5.26
http://article9.jp/wordpress/?p=12685
*번역 김연빈(도서출판 귀거래사 대표 겸 한글판 『손기정 평전』 공동 번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