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2 생각뿔 세계문학 미니북 클라우드 35
오스카 와일드 지음, 엄인정.이한준 옮김 / 생각뿔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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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이제 그처럼 허황된 것에 질려 버리고 말았어요. 이제 당신만이 어떤 예술보다 더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지요. 연극 속의 꼭두각시가 저와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중략)... 이제 저는 무대가 싫어졌어요. 제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감정을 흉내 낼 수는 있겠지만,

 이제 저 자신을 애태우는 이 감정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어요.”


 시빌 베인의 처절한 고백.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다. 허황된 예술의 본질을 보여주면서도 이를 뛰어넘는 예술의 가치를 보여준다. 그만큼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시빌이 연극이라는 예술에서 벗어나 인생으로 발돋움을 한다면 도리언은 아름다운 예술 그 자체를 인생과 일치시킨다. 그에게 인생은 예술이고, 아름다움은 인생이다. 그렇다. 굳이 인생이 옹골차게 차있을 필요는 없다. 그저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인생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물론 그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모든 행동에는 대가가 따른다. 일단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내면의 동기만을 따르며 살 수는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교도소에 가는 치명적인 짐을 짊어지게 될지 모른다. 또 하나, 무언가에(도리언의 경우 아름다움) 온전하게 나 자신을 몰입하기도 어렵다. 이것이 진짜 인생이 아닐 것이란 자기 검열이 끊임없이 스스로를 반문하기 때문이다. 선택의 기로엔 언제나 끝없는 질문이 따르기 마련이다. 나는 잘 살고 있는가. 이것이 사회 질서에 어긋나지는 않는가. 나는 도덕적인가. 이게 행복을 줄 수 있는가. 다른 이들은 무어라 생각하는가.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두려움은 잠시 미뤄두고 자신 속에 내재된 경이로움에 귀를 기울이는 도리언 그레이는 그래서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사실 지금도 정확히 답을 내리진 못하겠다. 무엇이 진짜 인생인가. 시빌의 삶도, 헨리의 삶도, 바질의 삶도 모두 진짜 인생이다. 하지만 한 번쯤은 스스로에 온전히 귀를 기울이는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진 않다. 혹시 뒤따를지 모를 무시무시한 대가에 대한 걱정은 잠시 마음 저편에 치워두고 현재를 즐기는 거다. 그렇다면 순간순간의 나는 언제나 인생의 목표를 이룬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현실적으로 도리언처럼 죄의식 없이 닥치는 대로의 감정에 휩쓸리면 나도 주변도 모두가 말 그대로 ‘파멸’되겠지만... 수많은 제약들 속에 살아가는 스스로를 위해 마음 한 켠에 도리언 그레이를 놓아주는 것도 괜찮은 삶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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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1 생각뿔 세계문학 미니북 클라우드 34
오스카 와일드 지음, 엄인정.이한준 옮김 / 생각뿔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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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평균 4시간을 교통수단에 몸을 맡기는 나로서는 이어폰을 집에 두고 오는 날이면 불안함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다. 여차저차 아침 시간을 버티어 낸다 하더라도, 집으로 돌아오는 장장 두 시간에 걸친 기나긴 여정마저 귀속의 작은 즐거움 없이 버텨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 스마트폰의 배터리라도 나가는 날이면 그날은 참을 인자를 새기며 지루한 인내와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나긴 하루 일과 끝에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선 기절 직전의 스마트폰을 대면하기 일쑤다. 그리고 일주일에 20시간을 전자 화면만 보며 지낼 순 없는 법이다. 피곤한 눈으로 글자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e-북과 그림이 번쩍이는 웹툰 화면을 한 시간 이상 보다보면 비문증이 생기는 기분마저 든다. <생각뿔 미니북 시리즈>는 그런 면에서 좋다. 매일 함께 하는 스마트폰은 잠시 넣어두고 한쪽 손에 잡히는 책을 읽으며 지루함을 달랠 수 있다. 장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문학의 맛을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 

 

 만약 현실과 이상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어보길 바란다. 책은 길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상 속 삶을 엿볼 수는 있다. 도리언과 헨리, 바질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의 내면을 보여준다. 때론 우리도 도리언처럼 죄의식은 제쳐두고 순수한 내면의 동기에 따라 살기를 원한다. 오직 아름다움을 위해, 쾌락을 위해. 그러나 인간은 한계를 갖는다. 세월에 따라 늙어가고, 여러 가지 사회적 윤리적 제약이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술을 마시며 이런 마음 한 구석의 이상을 내비치는 수밖에 없다. 유려한 말솜씨로 쾌락을 이야기하는 헨리처럼 말이다. 한편으론 사회 속에 살아가는 우린 거의 항상 바질처럼 생각하고 살아간다. 나의 행동은 나에게서 그치지 않고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들의 삶의 방식 중 무엇이 옳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 다만 도리언을 따라 철저한 유미주의자가 되어보기도 하고, 바질을 따라 현실에 발을 디뎌보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바질과 도리언은 초상화의 작가와 모델로서 둘다 그림 앞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쾌락과 아름다움에 대한 탐닉은 큰 대가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만큼 매력적이고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결말을 단순히 비극으로 말할 순 없을 것이다. 도리언은 끝까지 내면의 동기를 따랐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았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쾌락과 아름다움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얼마나 위험하고 경계해야할 것이지를 경고한다. 책을 읽어보며 언제나 마음 한켠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갈등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질문해보라. 아름다움은 무엇이고, 쾌락은 무엇인지, 행복이란 무엇이고 인생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곳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내가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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