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1 생각뿔 세계문학 미니북 클라우드 34
오스카 와일드 지음, 엄인정.이한준 옮김 / 생각뿔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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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루 평균 4시간을 교통수단에 몸을 맡기는 나로서는 이어폰을 집에 두고 오는 날이면 불안함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다. 여차저차 아침 시간을 버티어 낸다 하더라도, 집으로 돌아오는 장장 두 시간에 걸친 기나긴 여정마저 귀속의 작은 즐거움 없이 버텨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 스마트폰의 배터리라도 나가는 날이면 그날은 참을 인자를 새기며 지루한 인내와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나긴 하루 일과 끝에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선 기절 직전의 스마트폰을 대면하기 일쑤다. 그리고 일주일에 20시간을 전자 화면만 보며 지낼 순 없는 법이다. 피곤한 눈으로 글자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e-북과 그림이 번쩍이는 웹툰 화면을 한 시간 이상 보다보면 비문증이 생기는 기분마저 든다. <생각뿔 미니북 시리즈>는 그런 면에서 좋다. 매일 함께 하는 스마트폰은 잠시 넣어두고 한쪽 손에 잡히는 책을 읽으며 지루함을 달랠 수 있다. 장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문학의 맛을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 

 

 만약 현실과 이상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어보길 바란다. 책은 길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상 속 삶을 엿볼 수는 있다. 도리언과 헨리, 바질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의 내면을 보여준다. 때론 우리도 도리언처럼 죄의식은 제쳐두고 순수한 내면의 동기에 따라 살기를 원한다. 오직 아름다움을 위해, 쾌락을 위해. 그러나 인간은 한계를 갖는다. 세월에 따라 늙어가고, 여러 가지 사회적 윤리적 제약이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술을 마시며 이런 마음 한 구석의 이상을 내비치는 수밖에 없다. 유려한 말솜씨로 쾌락을 이야기하는 헨리처럼 말이다. 한편으론 사회 속에 살아가는 우린 거의 항상 바질처럼 생각하고 살아간다. 나의 행동은 나에게서 그치지 않고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들의 삶의 방식 중 무엇이 옳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 다만 도리언을 따라 철저한 유미주의자가 되어보기도 하고, 바질을 따라 현실에 발을 디뎌보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바질과 도리언은 초상화의 작가와 모델로서 둘다 그림 앞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쾌락과 아름다움에 대한 탐닉은 큰 대가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만큼 매력적이고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결말을 단순히 비극으로 말할 순 없을 것이다. 도리언은 끝까지 내면의 동기를 따랐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았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쾌락과 아름다움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얼마나 위험하고 경계해야할 것이지를 경고한다. 책을 읽어보며 언제나 마음 한켠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갈등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질문해보라. 아름다움은 무엇이고, 쾌락은 무엇인지, 행복이란 무엇이고 인생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곳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내가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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