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BL] As time goes by 1 [BL] As time goes by 1
사슴고래 / 피아체 / 2017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총 4권의 BL (boy's love) 소설입니다.  사슴고래님 소설은 두번째인데 처음 읽었던 썸띵 빅! 과 아주 많이 다른 분위기라서 신기해하며 보았습니다. 사실 모 사이트에서 연재하실 때 두 소설을 다 읽었는데 소설만 읽고 마음에 들어 선작해두고 시간이 지나 나중에 알고보니 동일한 작가님이 쓰신 소설이더군요. 글 쓰시는 스타일이 취향에 맞거나, 글이 일정 수준 이상이거나 뭐 그렇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어느쪽이건 간에 믿고 볼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이 글을 끝까지 읽고 나서는 당연히 다음 작품도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소설이나 그렇듯 중심이 되는 장르가 있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용과 기사를 중심으로 써내려간 섬세한 중세 판타지입니다. 설정이 흥미롭고 서사가 탄탄하고 각 인물들의 개성이 잘 살아있어 가장 큰 카테고리인 비엘이라는 장르적 특성상 한정된 독자들에게만 읽힌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서사를 중시하고 새로운 설정을 펼치는 소설은 그 설정을 독자에게 얼마나 자연스럽게 전달하느냐도 매우 중요한데 용과 기사의 관계, 주인공들을 둘러싼 정치상황 등의 배경이 소설의 이야기와 잘 맞물리고 녹아들어 있습니다.
 
수는 아내를 잃고 복수를 위해 살아온 용기사이고 공은 가족을 잃고 용기사를 후견인으로 삼게된 인물입니다. 공이 어려서 수에게 존댓말하고 수를 마지막 외전까지 극진히 보살피는데 그게 아주 좋았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수를 감금하고 싶어하는 소유욕을 보이는데 그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수가 후견인이고 공이 보살핌을 받는 입장이라 그 사이에서 오는 긴장감도 잘 그려져 있고, 공이 연하이기 때문에 수에게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심리상태도 납득이 갑니다.
 
사실 이런 서사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에서는 사건을 일으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등장하는 민폐캐릭터를 보기가 참 쉬운데 등장인물들이 다 잘 만들어진 인물이라 시대에는 이끌려갈지 몰라도 다들 자신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서 어리석다 탄식하며 보지 않아도 됩니다. 두 사람의 감정선에서 서로에게 솔직하게 고백하지 못하는 것이 좀 그렇긴 했습니다. 그냥 말을 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고 하면 조금더 일이 쉽게 풀리지 않을까 하고요. 하지만 두 사람은 후견인과 피후견인의 관계고 나이차이도 엄청나게 나는 상황, 게다가 수는 이미 전쟁과 개인사를 넘치게 겪은 인물로 공에게 그런 일들을 겪지 않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죠.
 
소설은 아내를 잃고 복수를 위해 살기 시작한 미하일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1, 2권에서 미하일이 참 멋있게 그려집니다. 전략전술을 잘 아는 머리 좋은 기사, 제국측의 네마리용과 혼자 싸워도 이길 수 있는 능력있는 용기사, 아내를 매우 생각해 그녀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모든 걸 버리고 싸우는 곧은 마음, 피후견인인 테오도르를 걱정해주는 다정함, 테오도르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을 설명해주는데서 보여지는 예리함과 비판적 사고 등이 모두 멋지죠. 그렇지만 한편으로 그는 복수에 매몰된 인물이며 구시대의 인간입니다.
 
공인 테오도르는 처음엔 죽은 아내에 대한 수의 마음에 폭발해 최초로 그와 동침하고 후회하며 그를 받아주는 수에게 매달려 관계를 이어나가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는 검술에 조예가 깊으면서도 어렸을때 가족이 전쟁중에 장창에 꿰뚫린 시체로 전시된 것을 본 트라우마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하고 용기사인 미하일의 종기사로 지위 또한 낮은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는 성실하고 곧은 마음도 가지고 있고 미래를 살아갈 사람이죠.
 
초반에는 어린 아이일때의 모습이 간간이 나오던 테오도르가 전쟁을 거치며 성장하고 좌절도 하고 흑화도 했다가 결국엔 자신의 신념을 갖고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가 구시대의 신념을 가졌던 미하일이 시대에 상처입고 그가 가진 것들을 잃으며 과거의 잔재를 허물고 누그러지는 이야기와 교차해서 펼쳐집니다.
 
어떤 시대의 개인의 삶이 자신의 의지로 포장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시대상황에 따라 급변하고,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성장하는 가운데 한 시대가 가고 다른 시대가 오는 것을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용의 시대가 가고 사람과 과학의 시대가 오는 것을 압축해서 구경한 느낌입니다. 전쟁을 치르고 나라가 격변하고 둘이 평화로이 살아가는 외전까지의 한정된 시간에서 펼쳐지는 영리한 구성으로요. 세대의 변화에 따라 앞선 세대들이 천천히 사라지고 뒷 세대들이 올라오며 상처입고 회복하고 행복을 찾지만, 한편으로는 그 가운데 피치 못하게 희생된 많은 이들이 안타깝기도 했어요. 에르체베트, 에반제린, 그리고 그외 각기 각자의 고민을 가지고 죽어간 많은 이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결국 함께하는 두 사람이 영원히 평안하기를.
 
날아다니며 행복해하는 검은 용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소설이었어요. 잘 읽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