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찾은 고조선
이종호 지음 / 글로연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과학으로 찾은 고조선

이종호

글로연 424

 

민족의 뿌리나 시원을 찾는 과정은 개인이 자신의 조상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역사학의 기능이나 효용을 따지기에 앞서 너무나 자연스런 현상이라 하겠다. 그런점에서 우리역사의 근원을 밝히는 일은 학문적 가치를 넘어서는 의무라고 볼 수 있다. 그간 역사학도로서 우리역사의 시작점인 단군조선에 관한 제연구와 여러 가지 민간학설들을 보면서 느낀점은 황당무계(荒唐無稽) 그 자체였다. 고고학상의 청동기시대를 훌쩍 뛰어넘은 시기에 국가를 그것도 대영역의 판도를 자랑하는 거대문화권이라니. 그러나 고조선과 단군에 관한 기록을 꾸준히 보아오면서 그간의 관점에 자연스레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잘못 알고있는 것은 아닐까. 일제시기의 왜곡된 역사관에 너무 젖어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속칭 환빠는 아니지만 단군조선 즉 고조선의 실체에 대해 어느정도 인정할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기존의 내 생각에 크게 수정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이책은 시중에 많은 여느 고조선에 대한 책이 그렇듯 정통 역사가에 의한 것이 아닌 아마추어 역사가의 저작이다. 그러니 신빙성에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마추어이긴 하지만 그동안의 단군관련 사료와 함께 최근의 고고학 연구성과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내용까지 함께 서술된 꽤 볼만한 저작으로 평가한다. 우리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던 고조선의 실체를 역으로 중국측 자료를 내세워 반증한 치밀한 구성이 눈에 띈다. 저자인 이종호는 전혀 모르던 사람이다. 이종호라는 이름이 너무 흔해 이사람이 그사람인가 혼동되기도 한다. 내가 아는 이종호교수부터 조선시대를 다룬 이종호도 있고 고대를 다룬 이종호도 있는데 책의 소개에 의하면 이 이종호씨는 프랑스에서 공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박사고 현재 카이스트 초빙과학자로 있다고 한다.

 

고조선에 대한 사료는 너무 빈약하고 그나마 삼국유사에 있는 서술은 고조선 건국으로부터 치면 무려 삼천년도 더 뒤에 쓰인 후대의 기록이다. 비단 고조선 뿐만 아니라 우리 고대사 자료가 거의 대부분 중국측 사료에 있는 내용이다. 역사가들은 일단 중국측 사료를 믿을 만 하다고 보고 그에 의거해 우리 고대사를 서술해오고 있다. 이를 보조할수 있는 방법이 고고학인데 고고학자들은 역사학자와 달리 유물 유적으로만 시대를 구성하기 때문에 개연성이나 상상력으로 역사를 복원하지 않는다. 바로 그게 가장 큰 문제점이다. 고고학은 역사학의 보조학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고고학이 고대사의 원류처럼 자리잡고 있고 그 고고학은 일제때부터 내려온 학문적 전통과 사승관계가 뿌리깊게 박혀있다.

 

사실 국가의 기원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비정치적이고 비민족적일수는 없다. 어떤 학문이든 마찬가지다. 학문에 국경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에 가깝다. 그러나 21세기에 우리나라가 2천년의 역사를 가졌든 5천년의 역사를 가졌든 그리 크게 의미가 있는 일도 아니다. 어차피 중일 사이에 낀 약소국이고 근대학문이 시작되면서 일본과 중국으로부터 너무 큰 영향력아래 있어왔기 때문에 민족적 자존심은 있을지언정 민족적 자존감은 매우 미미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5천년의 문화전통과 방대한 영역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런 사실이 현재의 정치사회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 어떻단 말인가. 일본이나 중국을 뛰어넘을수 있다는 말인가. 세상살이에 쓸데없는 학문으로 취급받는 인문학이라 취직도 안되는 마당에 단군이 5천년전 사람이든 일만년전 사람이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학자의 본분은 진실과 사실의 규명이고 특히나 역사학은 근원을 복원하는데 의미를 두고있기 때문에 실생활에 대한 효용여부를 따지는 천박한 분위기가 지나면 언젠가는 지나간 역사를 중시하는 시대가 오리라 믿는다. 보석이라는게 생활에 요긴해서 가치가 있는게 아니듯, 사랑이 내 몸값을 높여주기 때문에 의미있는게 아니듯, 인간은 배부른 돼지 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이기에.

 

현재 우리나라의 역사 또는 역사학은 정치권에서 좌우의 투쟁에 이용되고 그 투쟁에 별 도움이 안되는 고대사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그러다가 중일의 고대사 협공에 직면해서 정부는 동북아역사재단이라는 단체를 출범시켰는데 이 구성원이 문제되고 있는 얘기를 들었다. 제대로된 상황이라면 국사편찬위원회와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적극적으로 고대사를 해결해야한다. 학계가 누구누구의 제자로 연결된 도제시스템에 꽉 막혀있는 상태에서 아마추어 역사애호가들이 나서서 될 문제가 아니다. 실리이만이 트로이 유적을 발견하기 전까지 트로이전쟁은 오랫동안 신화에 불과했다. 우리 고고학계와 역사학계도 열린 마음으로 연구를 수행할 날이 곧 오기를 바란다.

 

 

책의 내용은 중국의 동북공정 소개로부터 시작한다. 고대사가 단순히 학자들의 책상앞 연구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런데 있다. 어쨌든 동북공정은 우리나라 역사를 빼앗아 간다는 뜻이 아니고 중국이 현재의 중국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현재 중국 영토에 있는 지역의 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로 해석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를위해 중국은 기존에 가져왔던 중국역사의 시조로 황제(黃帝)뿐만 아니라 치우까지 추가했고 중국학자들이 중원의 역사전개가 아니라 동북지역 부족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본 상(:)나라 역사도 중국의 조상이고 역사라 했다. 또 중국 청동기문명의 출발지인 중원 앙소문화 외에 최근에 발견된 내몽골 홍산 우하량문화 역시 중원의 문화와 연결시키고 우리와 관계 깊은 하가점 하층문화 역시 중원의 역사로 편입시켰다. 그래서 현재 중국은 중국인의 시조로 황제 염제 치우 세사람을 들어 이를 삼조라하고 삼조묘를 건립하여 전설을 역사로 만들고 그야말로 새역사를 쓰고 있다. 자기네 조상은 황제고 치우는 오랑캐족이라고 하던 주장을 단숨에 바꿔 이제는 자기조상이라고 하니 옛말에 환부역조(換父易祖)가 바로 이 경우다.

우리역사에서 청동기시대는 기존에 기원전 10세기부터라고 했는데 현재 국사교과서에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 시작되었다고 써있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이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최근에 발견되는 고대유물유적에서 연이어 기원전 1500년에서 2000년의 흔적이 나타나도 여전하다. 아직 본격화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고고학자들의 신중한 견해가 한편 수긍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다. 예를들면 지금부터 1만년후 핵전쟁이나 지구적 재앙으로 인류가 멸망단계를 거치고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가정할 때 고고학자라면, ‘한국인은 서기 2015년 당시까지도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남아있는 컴퓨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흔적들을 조합해 누가, ‘당시 한국인은 높은 수준의 ICT기술을 갖고있었다고 발표하면, ‘전혀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한국에는 2015년 무렵 초보적인 컴퓨터기술을 갖고있었거나 미국이나 일본에서 가져온 장치였을 것이다.’ 라고 주장할 것이다. 뭐 이해는 간다. 그러고보면 역사가는 경찰이나 검사같고 고고학자는 판사같기도 하다.

 

하여튼 근년에 내몽골 홍산 조양,적봉에서 유물과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연대측정 결과 기원전 7000년경까지 올라가는 신석기유적으로 밝혀졌다. 이곳은 요하지역으로 이를 요하문화 또는 홍산문화라 부른다. 여기서 동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하가점이 있는데 이곳에서 청동기유물이 발견되었다. 시기적 구분이 있어 하층문화와 상층문화로 나뉘는데 동북아시아 최초의 청동기유적이라는 하가점하층문화의 연대는 기원전 2200년으로 나온다. 요동요서를 포함한 요하지역은 전통적으로 중국에서 오랑캐로 부르던 곳이고 우리역사 특히 단군조선과 관계 깊은 곳이다. 홍산지역에서 발견된 제단과 신석기유물은 연대가 기원전 3500년 이상으로 나오는데 곰형태의 용과 여신상, 옥기 그리고 적석총, 빗살무늬토기, 곰조형물이 발견되었다. 곰이야 동북아지역의 대표적인 토템이라고 하지만 빗살무늬토기와 적석묘제는 중국과 관계없는 한국형 유물이다. 이를 고조선과 관계없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제단유적이 기원전 4000년까지 올라가지만 저자는 이것이 단군조선은 아니라고 한다. 인근의 하가점하층문화가 청동기시대로 우리 고조선과 관련있다고 한다. 어째서?

 

국사교과서를 보면 우리 고대문화의 특징으로 빗살무늬토기, 고인돌, 비파형 동검을 드는데 평남성천군백원리 고인돌유적에서 발견된 세형동검의 연대측정 결과는 3400년전 즉 BC 14세기라고 한다. 기존 학자들의 주장으로는 비파형동검문화가 우리나라에 건너온 것이 BC 12세기정도라 한국의 청동기문화는 절대 BC 10세기 이상으로 올라갈수 없다는 것인데 비파형동검보다 후기에 제작된 세형동검의 연대가 그보다 훨씬 상회한 것이다. 다른곳에서 발견된 비파형동검의 연대는 훨씬 높이 올라간다. 한국식 동검은 중국식과 달리 일체형이 아니라 조립형이고 구리 주석 납의 비율이 일정하다고 한다. 하가점하층유적에서는 적석총과 제단과 함께 성터가 발굴되었는데 고구려산성의 독특한 특징인 치(돌출석축)가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청동기 역시 기원전 1500년경의 유물이라 한다.

 

요녕의 고대문화가 곧 우리조상이며 단군조선의 시원이라 말할수 있는 직접증거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이 중국과 관계없는 민족이고 문화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우리가 이제껏 단군을 신화로만 주장한 탓에 지금은 중국이 이들 동이족의 문화가 동북아최초이며 나아가 동이족 역시 중국사의 일원이라고 못박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하상주단대공정, 중화고대문명탐원공정이다.

우리 고대문화의 특징인 빗살무늬토기와 고인돌,적석묘,비파형동검문화가 겹치는 곳이라면 우리문화라고 보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더구나 고조선이 있었다고 생각되던 곳에 고고학적 연대가 일치하는 유물유적이 있다면 이를 고조선과 연결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역사연구과정일 것이다. 이 책의 문제제기는 너무나 당연하다. 저자는 소개한 내용 이외에도 중국이 제시한 증거를 역으로 활용하여 동북지역의 고대문명을 조명하고 고조선과의 동일성을 유추하고 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연구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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