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적 고려사 - 몽골 세계제국에도 당당히 맞선 고려의 오백 년 역사
이윤섭 지음 / 필맥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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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 고려사
이윤섭 / 필맥 / 622

 

이른바 대중독자를 위한 한국사, 그중에서도  단대사의 경우에는 전공자에 의한 저술보다 비전공자에 의한 저술이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고려사는 고대사와 조선사 사이에 끼어 크게 인기가 없던 시대로 알고있는데 이 분야도 마찬가지로 비전공 아마추어 역사가의 저작이 많다.  그래도 지금은 박종기 박용운 등 대가들의 저서가 있지만 그 인기는 모르겠다.  고려사에 대한 저작을 찾다가 이윤섭의 고려사를 접하게 되었다.  별 생각없이 읽어내려갔는데 이 책이 꽤 마음에 들었다.

 

보통 한국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만 논하는데 이 책은 특이하게 중원과 북방의 정세를 매우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아마도 고려사는 독자적으로 전개되었다기 보다는 중국, 발해, 거란(요), 여진(금) 등과의 교류와 갈등을 통해 500년의 역사가 전개되었기 때문이리라. 이처럼 국제관계 속에서 고려사를 파악하는 관점이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여타 역사서는 고려의 입장에서 타국과의 관계를  서술한 점이 차이라 하겠다. 이점이 이 책의 장점이자 특징이다.

 

고려는 천하중심국이라는 세계관과 자신감을 가지고 군주의 호칭을 천자나 황제라고 불렀다. 태조때 군주의 정령은 황제의 용어인 조詔, 제制라 하고 복식도 천자의 색인 자황색으로 했고 고려사 악지에는 “해동천자이신 지금의 황제께서는...”이란 노래가사도 나온다. 여진의 금또한 고려를 황제로 인식했다. 그러나 송과 요에 대해서는 왕을 칭했다. 이들도 고려가 내부적으로 황제를 칭함을 알면서도 간섭하지 않고 인정했다.  그러나 중국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 중화주의가 득세하고 특히 뒤를 이은 조선조에서 고려사를 편찬할 때 칭제가 사대의 예에 어긋난다하여 많은 수정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고려시대 여성의 지위는 현재와 비슷한 듯. 재산은 남녀를 차별하지 않고 균등하게 상속되었고 차서도 나이순을 따라 남녀의 차별을 두지 않았다. 제사는 자녀가 돌아가며 주관하였다. 아이들은 외가살이가 일반적이고 이혼과 재혼이 자유로왔으며 이로인해 차별받지 않았다. 재혼후 왕비가 된 경우까지 있다.

 

중국에 대한 서술중 후주의 절도사 조광윤이 거란을 치려고 군사를 일으켜 나갔다가 부하들의 추대를 받아 하루만에 말머리를 돌려 후주를 무너뜨리고 송나라를 건국한 내용이 있다. 마치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모양이 비슷해보인다. 그런데 이때 쿠데타에 동의한 조광윤이 세가지 조건을 내건다. 후주의 왕족을 해치지 말 것, 관료들을 모욕하지 말 것, 정시靖市하지 말 것. 정시란 수도를 약탈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 오대십국의 혼란기에 반란이 일어나면 그 도읍을 삼일동안 약탈하는 것이 일반적 관례로서 군인들은 오히려 약탈을 원했다고 한다.

 

백암 박은식은 여진족의 金나라가 한국사에 속한다고 했다. <몽배금태조>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이는 여진족이 한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여진은 조상이 신라에서 왔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 때문에 저자는, 중국은 자국 영토에 있다는 이유로 관계없는 역사도 중국사에 포함시키고 고구려 발해도 자기역사에 넣는데 우리도 여진의 역사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충분히 맞는 말이다.  여진, 말갈은 고구려때부터 우리와 역사를 함께 했고 고려도 전쟁시에 여진의 군사를 데리고 싸웠다. 부여에는 여진의 유적이 함께 있다고 한다.

 

책에는 매우 중요한, 강역관계 서술도 나오는데 저자가 이를 꼭 꼬집어 주장하지는 않는다. 소개만 하고 있다. 고려의 경계는 어디인가? 천리장성의 위치는 어디인가? 윤관의 9성은 어디인가? 사실 세가지가 모두 하나로 통한다. 고려의 경계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사료를 인용하여 고려의 동북경계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지금의 북간도 지역임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책의 목적이 강역고증이 아닌 고려사의 전개이므로 저자는 다만 문제제기 정도에 그치고 있다고 보인다. 송의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 보이는 고려의 국경은 참 이상하다.  학자들이 이 문제를 심도있게 연구했으면 좋겠다. 무조건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허황된 뻥튀기로 몰지말고 공론화해서 연구해보면 좋겠는데...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문제제기를 하는게 가장 합리적이다.

 

삼별초의 난과 대몽항쟁에 대한 시각도 전환을 요한다. 저자는 삼별초의 군사행동이 항쟁이 아닌 반란임을 분명히 한다. 당시 고려왕실과 무인정권의 무대책을 비판하고 원의 요구에 응해 화친하는 것이 국가와 백성의 보전에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그런데 무인정권의 사리사욕으로 백성들이 오랜 시간 고통을 받고 무인정권의 기반인 삼별초가 끝내 반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 문제는 당시 원나라의 상황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를 필요로 하는데 이 책은 충분히  몽골의 동향을 설명하고 있다. 게다가 몽골이 고려에 대해 가지는 친근한 또는 경계하는 감정은 좀더 깊은 연구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서정록이 쓴 <마음을 잡는자...>에 보면 칭기즈칸의 두 번째 부인은 고려인이라고 한다. 게다가 몽골과 고구려는 건국신화도 너무 비슷하다. 그래서 몽골인들은 고려를 어머니의 나라라고 부른다고 한다. 혹은 우리민족의 출자가 바이칼호 인근이니 몽골의 한 조상인 바이칼 코리족이 우리나라의 조상일수도 있다고 서정록은 주장한다. 어쨌든 몽골 원은 고려의 끈질긴 항쟁을 높이 평가했고 중원인은 무시했지만 고려 자체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 고려의 풍습이 유행했고 고려의 여자를 아내로 맞기를 원했다.

 

공민왕의 피살은 조선 사가의 기록만 보지말고 당시 강국으로 부상하는 명과 북원 사이에서 외교방향을 잡지못한데서 오는 관료측의 불만이 큰 원인이었을 것으로 본다. 주원장의 최초 사절은 고려와 사대관계가 아닌 우호관계 수립이 목적이었는데 오히려 처음부터 명에 저자세로 사대를 택한 공민왕에 대한 실망으로 북원과 연합하여 시해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같은 논리로 충자 돌림왕들에 대한 평가도 다르다. 충선왕은 호평이다. 대부분의 고려사 저작에서 패륜무도로 묘사하는 충혜왕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조선조 사가들의 기록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지 말 것을 주장한다. 이 저자의 참고문헌이 상당히 방대한 것으로 보아 역사공부의 온축이 상당함을 짐작케 하는데 사료에 대한 이해도는 대단하다. 지난번에 본 남경태의 사이비성 무자격 역사서술과 너무 비교된다.

 

이성계의 가계에 상당부분을 할애했다. 이성계는 무신정변 실력자 이의방의 아우 이린의 자손이라고 한다. 이성계를 야심을 가진 인물이자 처세의 달인으로 보고 이성계가 개혁세력이 될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반면에 최영은 매우 우호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한편 발전사관과 유물사관을 강력히 비판하는데 특별한 근거는 없다.

명의 철령위 설치에서 다시 철령의 위치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온다. 이미 백여년 전에도 철령의 위치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일인학자 지내굉은 압록강 연안의 황성皇城을 철령으로 보았고 같은 일인 화전청은 현재의 철령인 강원북부를 철령으로 보았다.  저자는 위치를 확정짓지 않았지만 역사적 맥락으로 볼때 철령은 압록강 이북지역이 타당하다. 주원장의 명은 철령의 이동 이북 이서가 모두 요동도위에 속한다는 것. 강원도의 철령이면 이동 이서가 말이 안된다. 현재의 지명으로 보아도 지금 심양의 위쪽에 철령이란 곳이 있다. 차라리 이곳이 훨씬 더 합리적이지 않은가?  또한 우왕대의 요동정벌 미수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았다. 사실 참 한심하다. 조선이 스스로 명의 속국으로 전락한 매국적 사건이다. 이를 이성계의 야욕탓으로 해석한다.

 

전반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럽지만 군데군데 서술이 일관성을 조금 잃고 있다. 즉 매끄럽지 못하고 고어체를 쓰는 부분이 있다. 이런 부분은 저자의 서술로 바꾸지 못하고 옛 사료를 그대로 인용하듯 썼기 때문이다. 인용도 아니고 서술도 아닌 뒤죽박죽이 여러번 나온다. 게다가 경제관계, 사회문화 관련 서술은 없다시피 한다. 비단 이 책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큰 단점이 아닐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색깔을 입힌 점이나 주변 나라와의 관계 서술, 흐름을 위주로한 서술 등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싶다. 재미있게 읽었다. 고려사를 제대로 알고싶은 사람은 첫 사서로 이 책을 선택하면 도움이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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