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읽는 방법 - 텍스트를 어떻게 읽고 해석할 것인가
퀜틴 스키너 지음, 황정아.김용수 옮김 / 돌베개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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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읽는 방법

Visions of Politics Volume 1. Regarding Method

켄틴 스키너 / 돌베개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을수 없다. 나는 한국사를 전공했지만 역사이론에도 관심많아서

역사철학, 지성사, 서양사상 등에도 많은 양은 아니지만 꾸준히 독서를 해왔다그런데

이 책 <역사를 읽는 방법>은 내게는 벅찬 책이었다. 내용이 딱히 어렵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이해할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는 저작이라 본다. 서양근현대사에 약간의 지식이 있거나 서양철학에 어느정도의 소양이 있다면 도전할만 하다. 애초 역사에 관한 내용인줄 알고

달려들었지만 역사라기 보다는 소개글 그대로 텍스트 읽기와 해석에 관한책이다.

더불어 이 책을 수월하게 이해하려면 철학적, 언어학적 지식이 필요할 듯 하고 무엇보다

비트겐슈타인과 데리다를 알고 있다면 편하게 읽을수 있겠다.

 

그래서 서평을 쓰고 싶었지만   이건 독후감도 못되는 글이 되고 말았다 

가장 난해했던 점은 문장의 서술에 대한 것이다. 이책의 번역자가 허투루 번역을 했다든가

번역자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문번역자와 전공자 사이에서 이책은 누구에게

맡겼으면 더 쉬운 번역이 될수 있을까 한참을 생각했다.

 

예를들면

이 시도는, 익숙하기 때문에 역사가에게는 본질적으로 과거에 적용될수 없다는 점이

은폐되는 패러다임들의 무의식적인 적용이 윤리적,정치적,종교적,혹은 그 외의 유사한

사유방식에 대한 현재의 역사적 연구를 어디까지 오염시키고 있는지 밝히는 과정이 될 것이다.”

 

행위자의 행동에 대한 납득할만한 설명이 행위자에게는 가능하지 않았던 묘사와 분류기준의

이용에 의존한다는 것이 드러나고도 게속해서 납득할만한 것으로 성립할 가능성은 배제한다.”

 

이렇게 중문과 복문이 섞인 문장이 많은데 조금만 흐름을 놓쳐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분석과

정리를 통하지 않고는 이해가 어려웠다. 그래서 집중을 못하고 끙끙대고 있노라 쉽사리

책속으로 빠져들지 못했다. 아무튼 내가 대강 이해한 내용으로 독후감을 써본다면:

 

 

이 책은 세권으로 이루어진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들> 시리즈중 첫 번째인 <Regrding Method><역사를 읽는 방법>으로 번역한 것이다. 책의 구성은 서문과 10개의 장으로 되었으며 몇몇

장은 처음 출판된 것이지만 대개는 이미 발표된 논고들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는 방법을 논하는데 기존의 관점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관점을 주장하고 있다. 저자가

서문에 밝힌 대로라면 텍스트를 지적인 맥락과 담론의 틀 속에 위치시켜 저자가 실제로 어떤

일을 행한 것인지알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스키너는 화행, 통약불가능, 발화수반

행위등등 언어학적 개념들을 주로 사용한다. 개별 챕터에서는 동서고금이 아닌 서양 근현대의

주요 저작들과 인물을 동원해서 역사해석이나 텍스트 독해의 오류를 하나하나 집어낸다.

1장에서는 전체적인 논지와 각각의 장에 나오는 개념들을 소개한다.

 

역사학의 기본적 개념이자 명제인 사실(facts)의 개념과 실제성의 여부논쟁은 우리에게도 너무

익숙한 실증사학의 태두 랑케를 연상시킨다. 우리는 실증주의와 실증사학을 혼동하고 있지만

철학으로서의 실증주의는 조금 다르다. 그런데 여기서 사실을 지시하는 것은 언어이므로 언어에 있어서, 의미가 아닌 주장의 진실성을 찾자는 학파도 있다. 여기서 스키너가 강조하는 것이

화행(speech act)이다. 언어를 사용할때는 항상 무엇인가 행동한다는 뜻이라고 한다따라서

언술은 곧 행동이라 말하면서 비트겐슈타인을 중시하고 장기지속의 개념을 사용한다. 뒤에가면

이 책에서 개념에 대한 개념을 논하므로 함부로 개념이란 용어를 쓰기도 꺼려지지만 어쨌든

장기지속이란 프랑스 아날학파의 이론이므로 스키너의 주장을 알려면 광범한 기본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수 없다.

 

그는 영국의 저명한 역사가 제프리 엘턴의 경우를 예로들어 역사가와 사실(객관적 사실)

관계를 밝힌다.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현실적이고 유용한 질문으로 생각되는 역사에 대한

지식이 어떻게 세계에 도움을 줄수 있는가에 대해 엘턴은 어떤 답변을 했을까. 답은

 그런식의 열망을 완전히 버리고 포기하라.”. 내 생각에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대개

정형화되어있다. 우리나라라면 당연히, 역사학은 현재를 위해 복무한다. 역사를 보면 현재와

미래를 알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류의 미래예측이나 역사적 결정론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 정점이다. 그런데 엘턴이 추구하는 역사의 답은 과거는 현재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정도 이다. 스키너가 보기에 역사학자들은 대개 같은 생각을 하고있나보다.

우리만 다른가?

 

스키너는 해석의 문제를 중시한다. 마키아벨리 <로마사논고>의 예를 들면서 공화정의 자유와

왕정 하의 자유를 동시에 말하는 모순된 논지에 대해 다수학자들은 마키아벨리가 혼란에

빠졌다고 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스키너에 따르면 repubblica라는 어휘는 법이 공익을

보장한다는 뜻으로 군주정하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국정운영의 사례라고 한다. 그러므로

로마 초기 왕정에서 repubblica의 사례가 틀림없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역사해석의 문제인가? 이건 사학도가 제일 먼저 배우는 사료비판의 기본 아닌가?

라틴어의 용례나 어원만 조사해도 알수 있는 사실이 아닐까?

 

관념사 이해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일어난다. 대부분 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고전텍스트에 대해서는 그 논의에 초점을 두고 영속적인 사안이 가리키는 바를 조사하는게

핵심이다. 만일 그것이 나온 사회적 조건이나 지적 맥락을 살펴보는 곁길로 빠진다면 고전이

가진 지혜를 놓치고 가치를 잃게될 것이다.”

대체 말이되는 주장인가? 혹시 고전에 대한 독서와 연구는 달라야한다는 주장일까? 무엇이 되었든 논지를 헤아릴때는 조건과 맥락을 따지는게 당연한 순서 아닌가. 이건 비단 스키너의 비판을

기다리지 않고도 사학도 차원에서 반박할수 있는 사안으로 보인다.

 

잉글랜드 관습법이 때로 성문법보다 우위에 있다는 에드워드 쿡의 보넘판결에 대한 견해에서

근대 미국의 연구자들은 (몇백년후에나 등장하는)위헌법률심사권의 원칙이 여기서 나온다고

보았고 전문가들도 크게 반대하지는 않는 분위기라고 한다. 이걸 텍스트 방법론의 문제로 보아야 하는지. 이건 연구자의 수준이나 오독에 관한 내용이라해야 더 적절하게 보인다. 아니면 신념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일관성의 신화라는 부분에서,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읽고 또 읽어

홉스는 이런 일관성이 있다는, 자신이 찾는 견해를 발견해내는 학자들의 예를 들었는데 이런

경우가 우리나라에도 없지 않다.

고전의 저자에 대해 자신이 찾는 주제나 개념을 덧씌워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이

발견된다. 나는 언젠가 이사야 벌린의 책을 신청하는 인터넷 댓글에서 이사야 벌린을 신자유주의의 대부라고 쓴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마치 율곡 이이가 실학의 대부라고 한것과 똑같다. 이는

다시 이책에서 스키너가 비판하는 플라톤을 전체주의자로 보는 학자들과 같은 것이다.

 

스키너는 이렇게말한다. “텍스트를 이해하려면 말해진 것의 의미에 대한 설명만이 아니라 해당

저자가 그런 말을 함으로써 담아낸 의미에 대한 설명도 제시할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홉스와

벨의 텍스트는 이해했다고 믿을수 있을때까지 거듭거듭 읽는다고 해서 절대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제시한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즉 사람들이 말하는 것 뿐 아니라 그렇게 말함으로써 행하는 것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 그들이 말한 것의 의미를 파악할뿐 아니라 그렇게 말함으로써

의도한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이렇게 정리되어 표현된다.

따라서 그런 텍스트를 연구할 때 직면해야할 문제는 특정 독자를 염두에 두고 그것을 쓸 당시에 저자가 그와 같은 발언들을 내놓음으로써 실제로 어떤 것을 전달하려고 의도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건 마치 <조의제문>이나 <춘추>를 들어 말하는 듯 하다. 조의제문은 김종직이 정말 의제를

조문하려 쓴글이겠는가. 춘추필법은 예컨대 이런식으로 쓴다. “ 전두환과 최규하는 1979,1980

사이에 많은 사람을 죽였다.”  최규하를 포함시키는 것이 춘추필법의 의미다.  이 역시 사학도

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연구태도 아닐까?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텍스트의 정확한 해석이고 이를 위해서는 말의 의미뿐 아니라 말속에

담긴 행동 즉 화행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이는 또 발화수반과 의도의 발견으로 나타난다.

사례를 통해보면, 겨울 연못에서 스케이트타는 사람에게 경찰관이  그쪽의 얼음은 매우

얇습니다라고 말했다면 우리는 이 단어들의 의미는 물론 말하면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를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그 화행은 얼음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경고다. 발화결과로 나타난

경찰관의 의도는 무엇인가? 바로 이점이 스키너가 공들여 써내려간 책의 주제다.

의도를 알기위해 텍스트의 맥락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10장에서는 개념의 변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개념은 계속 변해왔으므로 동일한 대상을

말하는 두사람이라도 변화된 개념을 일치시키지 않으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나무만 보느라 숲은 볼 생각도 못했다. 나무도 제대로 못봤는데 어찌 숲을 보았을까.

다만 스키너의 이런 주장이 내게는 새롭게 다가오지 않고 평이하게 들릴 뿐이다. 어쩌면 이책이

역사가 아니라 정치사상에 대한 것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잘 모르는 내용을 억지로 읽어나간

기분이다.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책일텐데. 맥락을 찾고 저자의 의도를 알면

보물단지일수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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