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법하는 고양이와 부처가 된 로봇 - 선불교를 철학하다
이진경 지음 / 모과나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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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들이 주의해야 할 점

 

불교에서는 화두에 대한 해설을 금기시 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화선 수행은 화두에 대한 의심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이 책에서 화두를 해설 하고 있다. 이 책의 앞부분 내용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 책의 저자는 불교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간화선 수행을 해본 적은 없는 사람인 것 같다. 간화선 수행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있다면 이러한 책은 절대로 나올 수가 없다.

 

원오극근 선사는 설두송고에 수시, 착어, 평창을 붙였다. 수시는 본칙 곧 화두를 끌어 내는 말이니 각 화두의 맨 앞에 붙여서 관심을 유도하려는 것이다. 착어는 낱말이나 문장의 풀이로 본칙과 송에 나오는 단어나 어구를 풀이해 주는 것이다. 평창은 본칙과 송 전체에 대한 총평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수시, 착어, 평창은 본칙인 화두보다 더 알수 없는 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왜 그런가? 그건 바로 화두에 대한 의심을 일으키기 위함이다. 본칙 화두를 읽는 수행자들의 간절한 의심을 촉발시켜 화두를 바르게 참구하도록 친절하게 이끌어 주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화두를 자기 마음대로 해설함으로 인해서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향후 간화선에 관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수행 해볼려고 했을 때, 이 책에서 본 화두에 대한 해설들의 기억의 잔상, 편린 등에 의해서 간화선 수행을 하지 못하거나, 하는 데 매우 큰 방해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화두에 대한 해설 + 다른 책들에서 볼 수 있는 지식의 나열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 뿐만 아니라 벽암록에 대한 다른 저자의 책도 마찬가지이다. 

단지 구입해볼 가치도 없어서 마이리뷰를 쓰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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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리뷰를 보시고 출판사, 저자 분께서 동의 하시 다면

정중히 책의 폐간, 현재 서점에 있는 이 책의 수거를 권해드립니다.


저자께서 이 책을 낸 이유에 대해서는 모르나

저나 저자 분께서나 불교를 좋아한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봅니다.


책에서 어떤 스님으로 부터 노파심에 이르는 편지를 받으셨다고

하셨는 데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른 책에서 볼수 있는 지식의 나열 + 화두 해설 이라면

굳이 출판하실 필요가 있으셨는 지요??


화두를 해설한다고 해서 거기에서 열역학법칙 같은 어떠한 지식이 나오던가요?? 화두를 해설함으로써 남는 것은 부처가 되는 길을

끊어 버리고 불교가 다 타고 남은 재가 되는 것 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자분의 노마디즘 책은 전에 재미 있게 읽어보았습니다. 그래서 불교에 대해서 내놓으신 책을 구입해 보았는 데 이번 것은 너무 지나치신 것 같습니다. 벽암록에 대해서 해설하는 다른 저자분의 책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 책은 대충 훌터만 봤고 구입해 보지 않아서 마이리뷰를 쓸수 없어서 이 책에만 쓰게 되었습니다. 




화두해설하는 책


 

원오극근 선사가 벽암록 만들었는 데

 

그의 제자 였던 대혜종고선사가 책 태워버림

 

고봉화상선요

 

대분심

대의심

대신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퍼옴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8268

 

  

구두선(口頭禪)


당나라에서는 인쇄 매체가 발달하지 않아서 대부분 서적이 필사본의 형태로 유통되었다. 송나라에 들어서면서 목판인쇄가 발전되어 대량으로 서적들이 판매가 되고, 수집하여 보관이 가능하였다. 이런 문화적인 변화는 선가(禪家)에도 영향을 미쳐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이나 벽암록(碧巖錄)과 같은 어록들이 제작되었다.

스승과 제자의 문답을 공안(公案)이라고 부른다. 공안이란 공공의 문서란 의미로서 선문답의 사례를 말하고, 그것을 모아 집성한 것을 공안집(公案集)이라고 한다. 송나라에서는 다양한 공안집이 출현하였다. 당나라 시대에는 공안, 선문답이 기억에 의존하여 구전되거나 기록된다고 하여도 개인적인 필사본의 수준이었다. 그러나 송나라에서는 대량으로 인쇄가 되어서 유통이 되고, 지식인들은 이들을 구입하여 읽고 서로 토론하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었다.

이런 토론 문화 속에서 선문답의 공안에 대한 논평과 평가를 담는 평창(評唱)격절(擊節)과 같은 저술이 등장하였다. 예를 들면, 설두중현(雪竇重顯: 980~1052)경덕전등록에 나타난 1080여 개의 공안에서 대표적으로 100개를 취사선택하여 백칙 공안집을 만들었다. 그러자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 여기에 평창을 더해서 만든 것이 바로 벽암록이다.

선문답이 문자로 기록되고 인쇄가 되어서 대량으로 생산되자, 공안집은 대중적인 관심과 함께 지식인들의 중요한 필수품이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참선 수행이 옛 조사의 기이한 행적을 흉내 내고, 과거 시험의 과목처럼 암송하기도 하고, 토론하면서도 실제로는 참선 수행을 하지 않는 폐단도 생기게 되었다. 바로 입으로는 선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참선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니, 바로 구두선이다.

그러자 남송 시대에 들어와 원오극근의 제자인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가 스승의 저술인 벽암록을 불태웠다. 실제로 수행을 하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참선을 논의하는 폐단을 통렬하게 비판한 것이다. 대혜종고는 이러한 종류의 참선을 문자선, 구두선, 공안선이라고 배척하면서, 새로운 선 수행법으로 간화선(看話禪)’을 창안하였다. 간화선은 고려 후기에 보조국사(普照國師: 1158-1210)에 의해서 도입된 이후로 조선시대를 거쳐서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전통적인 참선법이다.

 

극근은스스로 황벽산을 나와 당시의 이름난 선사들을 역방한 뒤 마침내 경장주의권유로 태평의 오조법연을 참방한 뒤 그의 법을 잇게 된다. 하루는 스승 법연의 동향인 진씨가 태평산에 들러 법연에게 선의 심요가 무엇인지 청했는데 소염시(小艶詩)를 들어 설명했다.자주 소옥이를 부르지만/ 소옥에겐 일이 없네/ 다만 낭군에게 알리는 소리일 뿐(頻呼小玉元無事 只要檀卽認得聲)위 시는 안록산과 양귀비의 고사에서 온 것이다. 양귀비가 몸종인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정부인 안록산을 부르는 암호였다. 선의 심요도 말로써 설명하는 것은 마치 소옥을 부르는 소리와 같이 참이 아니고 언어의 밖에 있음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씨는 이 뜻을 깨닫지 못했다. 오히려극근이 그 진의를 깨닫고 법열을 느꼈다. 법연은 극근의 대오가 임박했음을알고 갑자기 소리높여 말했다.“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인가. 뜰 앞의 잣나무니라.”극근은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통쾌함을 느꼈다. 때마침 문밖에서 수탉이날개를 치며 울었다.“, 이것이다. 바로 이소리다.”극근은 시공을 초월한 대오를 얻었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원오극근 선사를 모셨던 보조스님은 벽암록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노파심어린 경고를 한 바 있다

 

만약 언어구절에 빠져 진창이 되고 문장에 얽매인다면 부처의 종족을 말살하는 우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뒤에 오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문장이나 풀이하고 해석하며 뜻으로 헤아려보고 알아 맞히려고나 하면서 화두를 바르게 의심해 나가지 않는다면 그 가운데서 깨달은 사람이 나올리 없다. 따라서 벽암록을 읽고 이 화두 저 화두 해석하고 풀이한다면 그것은 부처집안의 씨를 말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이라는 경책이다.


 

화두에 대해 해설하면 독자로 하여금 화두에 대해 의심이 일어나지 않게 만들어 버린다화두를 해설한 다는 것은 더 이상 화두를 들지 못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일이다.

 

몽산스님은 몽산법어에서 크게 의심하면 큰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라고 했는 데 화두에 대해 의심이 일어나지 않게 해 버리는 것은 곧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종자를 송두리째 썩혀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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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普照)의 서

 

지극한 성인의 명맥, 역대 조사들의 대기, 뼈를 바꾸어놓는 신령한 처방,

정신[]을 기르는 오묘한 술법이여!

저 설두선사께서 종지와 격식을 뛰어넘는 뚜렷한 안목을 갖추시어

바른 법령을 이끌어내면서도 모습을 겉으로 드러내시지 않으시며,

부처를 단련하고 조사를 담금질하는 집게와 망치를 손에 들고

선승이 자기 초월[向上]에 필요한 요점을 말해주셨다.

은산 철벽이니 뉘라서 감히 이를 뚫을 수 있으리요.

몸뚱이가 쇠로된 소를 무는 모기와 같아 입질을 할 수 없다.

대종장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깊고 미묘한 이치를 어떻게 다 할 수 있겠는가?

 

이에 불과 원오(佛果圜悟)스님께서 벽암(碧巖)에 계실 때

수행하는 이들이 잘 몰라 이 미혹을 깨우쳐 주실 것을 청하니,

노장께서 이를 어여삐 여기셔서 자비를 베풀어 저 깊은 밑바닥을 파헤쳐 주시고

깊은 이치를 드러내어 명백하게 딱 가르쳐주셨으니,

이것이 어찌 알음알이를 가지고 한 것이겠는가?

백 칙의 공안을 첫머리부터 하나로 꿰어

수많은 조사스님네들을 차례차례 점검했다.

 

화씨(和氏)의 구슬에는 본래 티 하나 없었지만

인상여(藺相如)가 진나라 임금을 속였듯이,

지극한 도는 실로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종사께서 자비를 베풀어 말로써 잘못을 고쳐주셨다는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렇게 이해해야만 원오스님의 사무치는 노파심을 알게 된다.

그러나 만약 말이나 문장에 얽매인다면

부처의 종족을 말살하는 짓을 면치 못할 것이다.

 

나 보조는 다행히도 원오스님을 곁에서 모시어

이제껏 듣지 못했던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도반들이 스님의 말씀을 모아서 책을 엮고 못난 내가 그 내력을 적는다.

 

때는 건염(建炎) 무신(戊申, 1128) 늦은 봄 그믐날,

제자 보조(普照)는 삼가 서문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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