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행복한책읽기 작가선집 1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조디 포스터 주연의 <콘택트>라는 영화에 ‘이 거대한 우주에 우리 인간만 존재한다는 것은 공간의 낭비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계가 우주의 극히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만약 외계생명체와 만나게 될 때, 우리는 어떤 식으로 소통할 수 있을까?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어렴풋하게나마 감을 잡을 수 있게 된다. 8편의 중장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표제작의 주인공은 언어학자로 외계에서 접근해 온 칠지생물인 ‘헵타포드’와 의사소통을 해보라는 의뢰를 군으로부터 받게 된다. 외계인들은 궤도 밖에 위치해 세계 각국에 설치된 ‘체경’이라는 기계장치(스크린)를 통해 인류와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었다. 각 체경에는 언어학자와 물리학자가 한 팀으로 구성되어 외계인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 한다.

또 한편으로 주인공은 그녀의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외계인과의 접촉에 대한 이야기와 딸과의 에피소드가 번갈아가며 나오는데, 특이한 것은 딸에게 이야기할 때의 시점이 현재이기도 하고 미래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마치 운명은 결정되어 있고, 그 결정되어있는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외계인과의 접촉에 대한 내용은 순차적인데 비해 딸과의 에피소드는 시간순서에 관계없이 이야기되고 있다. 심지어 이야기속의 딸은 25세 때 죽는 것으로 되어 있다. 죽은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처음에는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인공이 외계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너무나 구체적이라 현역 언어학자도 읽고 난 후 그 정확성에 감탄을 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란다. 그들의 언어는 우리의 것처럼 정확한 품사가 있어 순차적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어의문자(語義文字)로, 실제 발음이 되고 안되고와는 상관없이 어순이 필요 없는, 문자 체계 자체가 하나의 그림이자, ‘읽는다’기 보다는 ‘지각’하고 ‘인지’하게 되는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 언어를 배우고 난 후에는 그것을 토대로 물리학자들의 교류가 시작되면서 페르마의 원리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빛이 공기에서 물 속으로 들어갈 때 물은 공기와는 다른 굴절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방향을 바꾼다. 이 경로는 빛이 가장 짧은 시간에 원하는 목적지까지 도달하기 위해 최단시간을 계산 한 것이라고 봤을 때, 빛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지를 선택하기도 전에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결론이 된다. 굴절률의 차이 때문에 빛이 방향을 바꿨다고 설명한다면 인류의 관점에서 세계를 보고 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고, 빛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한다면 헵타포드의 관점에서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인류가 순차적인 의식 양태를 발전시킨 것이라면 헵타포드는 동시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켰다. 헵타포드의 언어체계를 익히게 된 주인공은 마침내 인생 또한 헵타포드처럼 동시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딸의 탄생에서 성장, 죽음까지도 동시에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해서 과연 그 미래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해서 그것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그 미래는 더 이상 미래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미래를 안다는 경험이 사람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면? 주인공은 외계인의 언어를 배우면서 인식 방법의 변화를 체험하게 된다. 그녀에게 더 이상 현재와 미래의 구분은 없어지고, 그녀는 딸의 존재를 알게 되며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것도 알게 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현재에 충실하고 주의를 집중해 어떤 것도 놓치지 않으려는 삶에 대한 자세를 갖게 된다.

흔히 장르소설이라고도 하는 SF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전혀 새로운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개념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른 소설에 비해 처음 몰입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지만 어느 정도 읽기 시작하면 전혀 새로운 세계의 이야기에 정신을 빼앗기게 된다. 테드 창의 이야기들은 잘 짜인 직물과 같아 가까이서 보면 그 섬세함과 견고함에 놀라지만, 멀리서 보면 전체가 이루는 조화의 아름다움과 정교함에 감탄하게 된다. 순서라고 말하기는 뭣하지만, 추리소설을 셜록홈즈로 시작하듯이 SF에서도 아시모프나 클라크로 시작해서 이런저런 작가들을 거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테드 창의 소설은 그 경로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지 않을까?

국내에는 그의 책이 아직 이 한 권밖에 번역이 되지 않아 아쉽다. 그의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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