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즈음에 친구에게 <순간을 읊조리다>를 선물하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을 몇 개만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다.
한 달쯤 후에 친구가 몇 개의 문장을 카톡으로 보내왔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건
바로 이 문장이었다.
이은규 시인의 '바람의 지문'이란 시의 일부로
<다정한 호칭>이란 시집에 수록된 시다.
<다정한 호칭>이라면 그 친구도 나도 좋아하는 시집인데,
이렇게 한 부분만 보니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보는 것처럼
새롭다.
전체도 좋지만
부분도 좋다.
책이 오면 제일 먼저
이 부분을 찾아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문장을
만났다.
사랑은 너무나 진부하고 상투적인 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도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기가 주저된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내 사랑이 하찮고 가벼운 것처럼 여겨질까봐.
그런데 이 문장...은, 사랑을
사랑의 그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이 문장 속에 담긴 사랑은 진부하지도 상투적이지도 않으면서
사랑의 순수와 온기를 고스란히 담았다.
누군가에게 빌려줬던 책을 들춰보다
보이지 않는 지문 위에 가만히 뺨을 대어보는 것,
이런 게 사랑이 아닐까?
이 아름다운 문장에
이런 그림이 곁들여진다.
살짝 눈을 감은 남자는
사랑에 경도되어 있다.
아, 좋다.
이런 거.
<순간을 읊조리다>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이렇게 시를 찾아보게 만든다는 것.
한 문장이 환기시킨 감정과 생각들이
시의 원문을 찾아 읽게 한다.
좋다, 이런 거.
참 좋다.
책의 왼쪽 페이지와 오른쪽 페이지처럼
왼쪽 페이지의 문장과
오른쪽 페이지의 그림처럼
나와 친구를 이어준 것도 시다.
시는 이래서 좋다.
책을 들춰보다
가만히, 뺨을 대본다.
아, 좋다.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