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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 시화선집
도종환 지음, 송필용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6월
평점 :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원래 이 시는
1994년에
발간된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에 실렸었는데, 그 때 이 시집의 해설을 쓴 작가 김훈은 “도종환의 시는 그가 살아온 삶만큼의 언어라는
점에서 순결하다. 그의 언어는 권력이나 초월의 집안의 언어가 아니고, 그 양쪽 집안을 능숙하게 넘나드는 유격의 언어도 아니다. 언어에 관한 한 그는 그 자신이
작은 캠프를 스스로 건설한, 외로운 추장인 셈이다”라고
평가했다.
도종환의 시가 갖는 힘은 소박하고 진솔한 언어들이 가지는 울림인데,
그 순하고 순결한 언어들은 바로 그의 삶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정결한 삶에서
길어올린 담백한 시어들은 인간의 깊은 내면을 흔들고, 에두르지 않고 인간의 본성에 직접적으로
다가간다. “너는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자연에 대한 조용한
관조는 인간과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로 이어진다. 그래서 그의 시는 수묵화처럼 정적이지만 그 어떤 웅변보다
강한 힘을 갖는다. 때론 조용하게 위로하고 때론 힘있게 독려한다.
“지금 많이 흔들리지? 바람과 비에 젖고 있지? 삶이라는
게, 사랑이라는 게 원래 그래. 하지만 저 들의 꽃을
봐. 흔들리면서도 꽃을 피우지? 바람과 비에 젖으면서도 꽃잎을
피우지? 너도 그렇게 될 거야. 네 삶도, 네 사랑도 그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울 거야.”
이런 게 바로 ‘어른’의 위로이고 격려이다. 포프 프란치스코가 방한했을
때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사람들이 깊이 감동하고 위로받았듯이, 마음을 담은 말은 진정성 있게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3반 박예슬 양의 생전 작품들을 전시한 <예슬이의 꿈> 전시회 개막 행사 때 도종환 시인은 아이의 시선으로 쓴 ‘엄마’라는 시를
낭송했다. (이 시의 전문을 보고
싶으면 http://blog.naver.com/boaz1974/220109826584 를 클릭하세요.)
시인은 무엇이고 시는
또 무엇인가?
유효기간이 다 지난 것 같은 이 질문에 도종환 시인은 온 몸으로 그 답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나는 운명이라는 말 앞에 경건해지곤 합니다.
인생이라는 말에 숙연해지곤 합니다. 시를 쓰는 일이 운명을 사랑하는 일이기를
바랍니다. 시를 통해 내 인생을 진지하게 통과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시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시는 이미 내
운명입니다. 그러나 내 시가 너무 무겁지 않기를 바랍니다. 너무
고통스러운 언어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암호이기는 더더욱 반대합니다. 편안하기를 바랍니다. 할 수 있다면 고요하기를 바랍니다. 매화처럼 희고 고요하고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인의 말’이다.
시란 이런
것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진지하게 통과한 것,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인 것, 그러나 지나치게 무겁거나 고통스러운 언어가 아닌
것. 들판의 꽃처럼 소박하지만 순결한 것, 그것이
시이다. 그 자체로 권력을 가지고 성을 쌓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들며나며 두루두루 오고갈 수 있는 작은
오솔길을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의 아픔과 고통을 기억하고 함께 하는 것이다. 사회와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하며 같이 울어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다.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오래 전 좋아했던 이
시를 이 시집에서 다시 발견하고 매우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이젠 더
이상 이런 시를 읊조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이성과 지성이,
그리고 진보에 대한 열망과 믿음이, 우리의 선배들의 희생으로 일군 이 나라에서
유지되고 지속될 줄 알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견고한 벽을 목도하고
있다.
광화문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경찰 버스의 벽은 그 벽의 견고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경찰
차벽의 안과 밖으로 명백하게 나뉜 한국사회의 현실을 목도해야 하는 것은 매우 참담하다. 그러나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직시해야 한다.
누군가
‘절망의 벽’ 혹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부르는 그 벽을 담쟁이는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름이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그 담쟁이가 세월호
유가족들의 눈물을, 생활고로
자살한 송파 세모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장애인들과 같이 소외된 사회적 소수자들을 모두 품고 함께
갈 것이다.
나는 그게 바로 시인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 하는 마음.
『타인의 고통』에서 수전 손택은 이렇게 말한다.
연민은 쉽사리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우리가 저지른 일이 아니다—까지 증명해 주는 알리바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그런 고통을 쳐다볼 수
있는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나 잔혹한 이미지를 보고 가지게 된 두려움을 극복해 우리의 무감각함을 떨쳐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우리는 모두 흔들리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나약함으로 인한 무감각함과 무력감을 극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악랄하고 폭압적인 사회에서 절망을
딛고 모두 함께 꽃을 피우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과제라고 시인은 그의
소박하지만 힘 있는 언어를 통해 지속적으로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