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가 곧 고갈된다는 주장, 이라크전쟁의 이면에는 석유 확보를 위한 추악한 음모가 있었다는 주장, 지구온난화가 지속된다면 지구의 많은 종들이 멸종되고 대재앙이 올 거라는 주장, 석유 소비를 줄이고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운송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 대체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 이런 주장들은 너무 많이 들어서 이미 식상해졌다. 문제는 ‘어떻게’이다. 인간이 탐욕을 줄이고 조금 불편해도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생활방식을 채택할 수 있다면 석유 소비를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은 변덕스러운 인간 양심에 기대를 건다는 유동성도 있거니와 근본적으로 석유가 유한하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좀 더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현대사회는 인터넷 초고속망 덕에 누구나 정보를 생산하고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누구나 집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에너지 초고속망을 통해서 전달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어떤가? 에너지에 대한 기본 상식은 거대한 자본이 투자된 기반시설을 통해서 생산, 분배, 운영된다는 점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그러나 이 책에서 리프킨은 누구나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바로 재생 가능 에너지가 답이다. 가정집에서도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태양열 에너지 말이다. 그렇다면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은 어떡하나? 볕이 좋을 때 축적해둔 태양열을 수소 에너지 형태로 저장해두면 된다. 그렇게 하면 햇볕이 좋은 지역에서는 에너지가 부족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용하고 남는 에너지는 누구나 판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시대가 리프킨이 말하는 3차 산업혁명 시대이다.
2008년 경제위기
리프킨은 2008년 경제위기의 본질은 도덕적 해이도 고삐 풀린 금융시장의 폐단도 아닌 석유시대의 위기라고 본다. 다시 말해 2008년의 사건은 화석연료와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 시스템이 이룰 수 있는 경제성장의 한계치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석유는 유한한 자원이다. 지난 40년간 많은 이들이 세계 석유 생산이 허버트 종형 곡선의 정점에 달하는 ‘글로벌 피크 오일 생산’이 언제인가 하는 점을 두고 논쟁을 벌여 왔다. 가장 비관적인 견해는 이미 2006년에 도달했다는 주장이다.
미국은 1980년대에 저렴한 석유와 자동차 덕에 한동안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소비자본주의는 생명 연장을 위해 꾸준히 소비를 부추겼고 이는 석유 수요를 끌어올렸다. 이로 인해 국제유가가 상승하였고, 모든 상품의 가격이 상승하였는데 이것은 소비자들의 구매력 저하를 초래하여 소비자본주의는 회생불가능 상태에 이르렀다. 이것이 2008년 리프킨이 분석한 경제위기의 본질이다.
산업혁명
19세기 1차 산업혁명 때는 인쇄술의 발달로 글을 읽는 노동인구가 탄생하여 증기기관과 공장 경제가 활성화되었다. 20세기 2차 산업혁명 때는 전기 커뮤니케이션이 석유 동력 내연기관과 만나 공장이 전기화되면서 대량생산 시대를 열었다. 리프킨은 이제 인류는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재생 가능 에너지가 결합하여 3차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있다고 본다.
지금 우리(적어도 당대를 살아가는 인류)가 사는 세계는 2차 산업혁명을 거쳐 석유에 기반한 경제체제다. 따지고 보면 인류의 석유 사용의 역사는 매우 짧다. (어쩌다) 석유라는 걸 발견하게 된 인류는 그것을 개발하기 위해서 대규모로 조직화된 자본과 국가권력을 이용해서 현 경제를 구축했다. 화석연료 기반 경제체제는 중앙집중적이다. 원유를 채굴, 가공, 수송하고 철도와 도로를 건설,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관료제 조직이 필요했다. 석유 문화에서 탄생한 다른 주요 산업, 즉 현대 금융, 자동차, 전력 및 공익사업, 통신, 상업 건축 등도 규모의 경제를 유지해야 했다.
그러나 다가오는 3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각 빌딩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분산형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 기존 전력망에 정보기술을 접목하여 전력 공급자와 소비자가 양방향으로 실시간 정보를 교환하여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하는 차세대 지능형 전력망)를 통해서 공유하는 체제로 전환되기 때문에 중앙집중형 조직은 무의미해진다. 이런 체제에서는 전기회사는 더 이상 전기공급자가 아니라 관리자와 카운슬러의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리프킨은 이를 분산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리프킨은 3차 산업혁명이 완수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요소가 동시에 구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환: 태양광, 수력, 풍력, 지열, 바이오매스(폐기물 따위)
(2) 건물들을 미니 발전소로 변형: 빌딩과 주택에 집열판 설치
(3) 수소 및 여타 저장 기술 보급: 남는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서
(4) 에너지 공유 인터그리드로 전환: 인터넷과 동일한 원리로 작동
(5) 전원 연결 및 연료전지 차량으로의 전환과 스마트 동력 그리드를 통한 전기 매매
이들 다섯 가지 요소들 중에서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전기차에 대해서 살펴 보자. 몇몇 전기차 모델이 이미 시중에서 판매중이다. 미국에서는 쉐보레 볼트, 닛산 리프, 토요타 프리우스 플러그인 등의 하이브리드 전기차들이 나와 있다. 이들은 휘발류 1갤런 당 마일리지가 90-100mpg를 넘는다. 혼다 시빅이나 토요타 코롤라가 30mpg 남짓 나오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효율이 아닐 수 없다. 고유가 시대를 맞아 미국 각급 정부는 이런 전기차 이용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어 구매를 유도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경우는 2인 이상 탑승 차량만 이용할 수 있는 HOV 레인(High-Occupancy Vehicle Lane, 일명 카풀 레인)을 전기차는 항상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전기차의 가격이 만만치 않아 많은 소비자들이 구입하기는 어렵다.[i]
다른 요소들은 좀 더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리프킨은 EU 차원에서, 그리고 유럽의 몇몇 국가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3차 산업혁명으로의 이행 노력에 관해 상세하게 소개한다. 리프킨 자신이 유럽의 정치인들 및 주요 기업 대표들과 많은 의견 교환을 거치면서 3차 산업혁명 플랜을 마련해온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사례도 몇가지 제시하지만, 아직 미국은 유럽에 비하면 한참 뒤쳐져 있다. 오히려 오바마는 미국의 노후한 기계식 전력 그리드를 디지털 스마트 그리드로 교체하고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새로운 송전선을 설치하자고 주장했다. 3차 산업혁명에 걸맞는 분산형 전력 그리드에 대한 아이디어가 아직 미국 정치권에는 부족하다.
그런데 왜 재생 가능 에너지인가? 원자력은 안 될까? 리프킨은 원자력이 대안 에너지가 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현재 전세계에는 442개의 원자로가 세계 에너지 생산의 6% 정도를 담당하고 있다. 원자력이 기후변화에 최소한의 영향이라도 미치려면 세계 에너지 생산의 20%는 담당해야 하는데, 이 말은 수명이 다한 기존 원자로를 교체하는 한편 1,000개의 원자력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 위험성은 차치하고 이만한 규모의 건설에 들어갈 비용을 고려할 때 원자력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 효과
리프킨은 3차 산업혁명이 엄청난 고용 효과를 가져올 거라고 말한다. 2040년이나 2050년이면 유년기 단계의 3차 산업혁명 인프라가 완전히 구축될 것이고 그때까지 고용 증대를 가져올 거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후로는 3차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많은 노동력이 자동화에 밀려 일자리를 잃게 될 거라는 점을 리프킨은 인정한다. 자동화로 인한 ‘고용 없는 성장’은 3차 산업혁명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리프킨의 시민사회에서 해답을 찾는다. 시민사회는 시장과 정부에 투자할 사회적 자본을 생성하는 곳으로 종교, 문화, 교육, 연구, 의료, 사회복지, 스포츠, 환경, 오락 등을 담당한다. 어느 연구에 따르면 조사대상국들에서 시민사회는 이미 전기, 가스, 수도 등 공익사업 분야, 건설 부문, 금융서비스 분야, 운송, 저장, 통신 분야의 GDP를 능가했거나 따라잡고 있다. 시장 자본 창출은 지능형 기술에 의존하더라도 사회적 자본 창출은 인간 상호 관계에 의존하기 때문에, 21세기 중엽이면 시민사회가 시장 못지않은 중요 고용원이 될 것이라고 리프킨은 말한다. 3차 산업혁명을 통해 기계에서 해방된 인간은 ‘심오한 놀이’(deep play), 즉 서로 보편성을 추구하는 공감적 접촉을 할 수 있게 된다.
리프킨은 1, 2차 산업혁명에서 소외되었던 극빈국들도 앞으로 다가올 분산 자본주의 하에서는 도약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2차 산업혁명의 구조에 매여 있지 않다는 점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 세계화를 넘어 각 대륙이 스마트 그리드로 연결되어 대륙화가 진행될 텐데, 아프리카의 여러 빈국들은 태양열 에너지의 무한한 공급지가 될 수 있다.[ii] 3차 산업혁명은 비단 극빈국들뿐 아니라 단순 노역과 고된 노동을 하고 있는 인류의 40%를 그 족쇄에서 해방시키고 자유로이 사회적 자본을 추구하면서 심오한 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대가 가능할 것이라고 리프킨은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생물권 의식
3차 산업혁명으로의 이행은 단순히 에너지의 문제만이 아니다. 리프킨은 마지막 챕터에서 철학적, 인식론적, 존재론적 가치관의 변화에 대해서 논의한다. 그동안 인류가 자연을 정복하고 활용하면서 얼마나 자연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켜왔는지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질문한다. 나아가 자연과 인간이 하나의 생물권에 속한다는 의식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노동에 대한 개념, 소유권 개념, 행복과 ‘훌륭한 삶’에 대한 개념 등을 새롭게 하고 공감 능력에 기반한 생명애 동질감(biophilia connection)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리프킨은 에드워드 윌슨을 인용한다(에드워드 윌슨의 '바이오필리아'가 궁금한 사람은 다음 리뷰를 참조하기 바란다. Biophilia). 윌슨은 인간에게 자연과 교류하려는 선천적 욕구가 있다고 보고 그것을 생명애(biophilia)라고 부른다. 지금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의 대다수가 사실상 자연과 동떨어진 채 인공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다. 그 결과 생명애 동질감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인간의 신체적, 정서적, 정신적 행복이 위태로워지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이라는 종의 인지 발달이 방해받을 것이다. 3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이러한 생물권 의식이 회복될 수 있는 시대이다. 위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 핵심요소는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공유하는 공동 생물권이 지닌 상호 의존적 특성을 깨닫는 방향으로 우리 삶을 재조직하도록 도와준다.
나가는 말
지금껏 출간된 제러미 리프킨의 책들은 큰 담론을 화려한 글솜씨로 그럴 듯하게 포장해서 뭔가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결국은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주장들이 다분했다. 그러나 이 책은 조금 다르다. 이 책에서 리프킨은 확실한 대안을 분석적으로 제시하고 그것을 강력하게 옹호할 뿐 아니라 자신이 지금껏 어떤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리프킨의 주장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게 아닌가 하는 점은 여전히 의문이다. 인터넷이 가져온 수평적, 협업적 관계를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보는데, 과연 그것이 어떻게 3차 산업혁명을 가져올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이다. 정보혁명이 가져온 새 지평이 물론 새 시대를 위한 매우 중요한 기반이 되기는 하겠지만 그것만으로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지배-피지배 관계가 정말 지양될까?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생태식민주의를 피하면서 평등한 대륙화를 이룰 것인가? 여전히 대답해야 할 문제들은 산적해 있다.
[i] 김대중 정부 시기 저가의 국민형 컴퓨터를 대량 보급함으로써 정보화를 앞당긴 것처럼, 전기차의 대중화나 보급를 위해서는 정부가 대규모 예산을 책정하여 소비자가 전기차를 구입할 때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법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11월 25일자 한겨레 신문에는 <전기차 공유로 주차난 줄인 파리의 ‘교통혁명’>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되었다. 내용을 요약해보면 오래된 도시인 파리의 고질적인 교통난과 주차난을 해소하기 위해 전기차를 공유하는 제도를 만들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이 책에서 제러미 리프킨도 동일하게 주장하는 내용이다. 이제 차는 더이상 소유의 개념이 아닌 공유의 개념이 될 것이라는 주장인데 이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562279.html)
[ii] Thanksgiving day를 전후로 아마존에서 태양열 집열판 키트를 60% 이상 할인해서 $60 정도에 팔았다. 리뷰를 보니 주로 건전지나 캠프카를 충전하는 데 쓴다고 해서 그다지 필요성을 못 느껴 구입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전기가 귀한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는 태양열 집열판은 필수다. 이 책에서는 <뉴욕 타임스>에 나온 사례를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다. 케냐의 시골 마을에 사는 어느 여성은 일주일에 한 번씩 3-4시간씩 걷거나 차를 타고 시내로 가서 30센트를 내고 자신의 휴대폰을 충전했다. 그러다 가축을 팔아서 $80짜리 태양관 발전 패널을 설치한 뒤로는 휴대폰을 충전하는 건 물론이고 전등도 네 개나 켤 수 있게 되었다. 1, 2차 산업혁명에 뒤쳐졌던 저개발 국가들이 3차 산업혁명에서는 속도를 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