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 자유 시장과 복지 국가 사이에서
토니 주트 지음, 김일년 옮김 / 플래닛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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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영국에서 나고 유럽에서 배우고 영국과 미국에서 가르친 토니 주트는 단호한 사회민주주의자이다. 그러나 아마도 미국의 독자들을 염두에 둔 듯, 미국의 반사회주의 정서 때문에 저자는 아주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한다.

주트는 이 책에서 영국과 미국을 주요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전반부에 소개된 시각화된 지표들은 독자들이 미국, 영국 및 유럽 각국을 비교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소득 불평등이 높은 미국과 영국에서 유아 사망률, 기대 수명, 범죄율, 재소자 비율, 정신 질환, 실업, 비만, 영양실조, 10대 임신, 불법 약물 복용, 경제적 불안정, 개인 부채, 불안 등이 더 높게 나타난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과는 다른 자본주의 발전 경로를 밟아온 한국의 경우에는 이 국가들과 직접 비교가 불가능하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로 1980년대 중반에 기본적인 경제성장을 완수한 한국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이와는 다른 분석방법이 필요할 것이다(예컨대 국가간 비교보다는 1960년대 이후 10년 단위로 한국의 변화상을 볼 수 있는 지표들을 분석하는 식으로).

주트는 60년대 유럽과 미국을 휩쓴 혁명적 분위기가 아이러니하게도 전후 안정을 누리던 복지국가에 일격을 가했다고 주장한다.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가 유럽에 퍼지게 된 것은 두 세계대전을 겪고 난 뒤 경제 재건과 사회 통합,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산주의와의 경쟁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었다. 지금과 달리 부자들은 세금을 많이 내는 데 거리낌이 적었고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 속에 유럽 사회는 전례 없는 풍부한 삶의 기회를 누렸다. 그런데 68혁명이 상황을 전도시켰다. 68혁명 세대는 전후에 태어났거나 어린 시절을 보낸 전후 세대였다. 그들은 전전 세대와 많은 면에서 가치관을 달리 했다. 신좌파에게 복지국가는 자비로운 감시자에 불과했다. 이들은 집단주의, 하향식 통제와 조정을 거부하고 지나칠 정도로 개인의 권리를 옹호했다. “네 멋대로 해라.” 이러한 사고는 우파와 너무도 닮았다. 이때부터 10년 남짓한 시간이 지나는 동안 공적 담론 속에서 국가 개입과 공동선 추구는 힘을 잃고 말았다 (이것은 1970년대 이후 미국에서 사회적 자본의 감소를 분석한 퍼트남의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 리뷰 보기: Salad Bowling: Not Bowling Alone But Bowling Each이 나온 시대적 배경이기도 하다).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 영국과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가 정책적으로 실시되었고, 그로부터 10년 뒤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함으로써 그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20세기의 마지막 30년을 장식했던 지적 흐름은 한마디로 민영화에 대한 숭배라고 할 수 있다. 원래 민간부문이 떠맡기 힘든 사업을 국가가 떠맡았던 것인데, 이제는 거꾸로 효율성을 내세우면서 민영화가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 이윤은 민간기업에 보장해주고 손실은 국가가 떠안는 최악의 형태를 취하면서까지 말이다. 이러한 혼합경제는 당연하게도 도덕적 해이를 초래했고, 결국 2008년 경제 위기를 불러왔다.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강조하는 주트는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국가가 케인스주의 경제학으로 복귀한 것에 완전히 만족하지 못한다. 그는 이것이 일시적인 전략적 후퇴에 불과하다며 더 이상 국가와 시장 사이에서 선택하려 하지 말고 두 종류의 국가 사이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트가 제시하는 해법은 매우 근본적이다. 5장은 레닌의 정치 팸플릿을 연상시키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주트는 과격한 방법으로 제도나 체제를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가치나 도덕 같은 보다 근본적인 부분에서의 변화를 요청한다. 예전과 같이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공적 대화의 장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장 시급한 공동의 목표는 단연 불평등의 해소이다. 불평등이 심한 곳에서는 다른 어떤 공동의 목표를 위한 담론이 형성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주 쉬운 언어로 공동체적 삶의 중요성에 대해서, 복지의 필요성에 대해서, 국가의 필요성에 대해서 담담하지만 절절하게 이야기한다. 두꺼운 책이 아니지만, 그 가운데 할말은 다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많은 책들이 있지만 이 책은 현학, 냉소, 독설 같은 것 없이도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리뷰 보기: Proletarians at Risk for Losing Everything As Well As Chains)나 <무너지는 환상>(리뷰 보기: Bonfire of Illusions: The Twin Crises of the Liberal World) 같은 책들과 비교가 된다). 책을 읽다 보면 그렇지, 사람 사는 세상이 이래서는 안 되는 건데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물질 만능주의, 불평등, 차별로 가득찬 현실은 사실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그 부자연스러움이 언제부터인가 당연한 것으로,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져왔다. 부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럽다고 자기 최면을 걸며 살아갈 것인가? 언제까지 자유 시장의 역기능과 사회주의에 대한 과장된 공포 사이에서우물쭈물 할 것인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대개 1980년대 초반 이후에 영미에서 특징지워졌다는 것을 애써 상기하려는 이는 드물다. 1980년대에 당신이 너무 어렸거나 심지어 당신의 부모님이 만나기도 전이었다면, 비교의 대상이 없으므로 현 자본주의(신자유주의) 질서가 사상 유례 없이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만약 당신이 지금 40대 이상이라면 아마도 살아가기에 바빠 현실에 대한 비판과 저항은 젊은이들의 몫으로 넘기려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현실은 매우 부자연스럽고 불편하다. 그러나 거기에 맞서 싸우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와 같은 책이 널리 읽혀야 되는 한가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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