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 여기서 글라스-스티걸법을 폐기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부가 해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유와 경쟁이 해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경쟁과 자유를 통해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안정화를 이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미국 경제가 성장일로를 치닫던 1999년 11월 11일, 대공황 때 제정된 낡은 법을 폐기하면서 어느 공화당 상원의원이 축하하며 한 말이다. 이외에도 각종 ‘현대화법’이 제정되어 금융시장의 무한한 성장을 조장했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경제 성장’은 거품에 불과했고 따라서 ‘안정화’는 결코 이루지 못했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가 터져나온 지 몇 년이 지났건만 아직 경제가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며칠 전 열린 다보스 포럼도 세계경제를 회복시킬 뚜렷한 해답을 못 찾은 채 우울하게 막을 내렸다.
무엇이 문제인가? 저자는 신자유주의가 이데올로기로서, 경제 모델로서 수명을 다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지금이 위기이면서 기회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세계가 1929년 대공황에서 교훈을 얻었듯이 2008년 경제위기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고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폴 메이슨은 1부에서 2008년 경제위기와 그에 따른 미국와 유럽의 대응을 아주 상세하게 시간 순서대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2부에서는 경제위기가 발생하기까지 지난 10년간 금융시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마지막 3부에서는 신자유주의의 문제점과 불균등한 세계경제 구조를 지적하면서 시장을 제어할 민중과 국가의 의지를 요청한다.
저자는 BBC 뉴스나이트 경제 담당 에디터다. 책의 앞부분은 2008년 경제위기의 실시간 취재기 비슷한 내용이지만, 이내 꽤나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내용으로 이어진다. 학자가 아니기 때문인지 책의 내용은 덜 딱딱하고, 어떤 부분은 자못 문학서 같기까지 하다.
원서의 부제는 ‘탐욕의 종말’(The End of the Age of Greed)이다. 그리고 이 제목을 그대로 번역서의 제목으로 차용했다. 이 제목만 보자면 이 책이 구조주의적 설명보다는 인간성에 대한 설명에 가까울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그러나 저자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역사적으로 비판함으로써 구조-본성 간의 균형적인 접근법을 취할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오용이나 남용이 아닌 신자유주의 그 자체의 실패에 대해서 주장한다. 저자의 기본적인 입장은 탐욕스러운 신자유주의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2008년 경제위기가 발발했을 때 워싱턴에서 내놓은 해결책은 가진 자들의 여전한 탐욕을 보여주었다. 1930년대 대공황의 경험에 비추어 미국 정부는 투매된 대출채권들을 최저 가격에 사들여 파산한 주택융자업체들을 살리고 채권들을 나중에 높은 가격에 되파는 윈윈 전략을 추구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월가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미 재무부는 월가의 부실채권들을 조건 없이 최고 가격으로 사들였고, 이는 결국 미국 경제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하고 말았다. 부자들에게 조금도 손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미봉책이 결국 국민 전체에게 부담으로 전가된 셈이다.
월가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분노는 구제금융 법안에 대한 반대로 나타났다. 구제금융 법안 제정과 관련하여 2009년 9월 말 처음 실시된 미 하원투표에서 법안이 부결되었다. 하원의원들은 한 달 남짓 남은 하원선거를 의식해 유권자들의 반대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국 국민들 사이에서 구제금융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대개 그와 같았다. 미국에서 국민들이 투표 이외에 일상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한가지 방법은 법안이 상정되었을 때 지역구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찬반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다. 의원 사무실에서는 그런 전화를 응대하는 직원이 상주하면서 수집된 찬반 수를 기록해 민심의 지표로 삼는다. 거대한 도덕적 해이를 목격한 직후 경제위기 원흉 기업의 총수들을 정죄하기는커녕 그들의 이권을 온전히 보장해주면서 국민들이 낸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는 구제금융에 찬성할 국민은 좌우를 막론하고 거의 없었다. 그러니 하원투표에서 구제금융안이 부결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는 책의 여러 부분에서 국가의 시장 개입을 주장한다. 그러나 사정이 위와 같다면 국가가 개입하려 한들 어떻게 가시적인 해결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인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점이다.
책의 본문에 나타난 분석과 비판의 정도에 비해 So what?에 대한 해답은 다소 모호하다. 저자의 해답은 주로 간접적으로 나타나며 ‘~을 해야 한다’보다는 ‘~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많다.
결국은 금융자본주의 자체가 문제라는 게 내 생각이다. 실재하지 않는 것에 부여된 가치를 사고파는 행위를 통해 그 가치가 증폭되는 시스템에서는 고급 정보, 권력, 인력, 기술 등을 동원할 수 있는 자들이 가치를 얼마든지 부풀려서 이득을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이른바 도덕적 해이가 문제가 되곤 하는데, 그런 문제는 이미 시스템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투자은행들은 1980년대 신자유주의 금융정책을 특징지은 금융 규제 완화, 정보기술의 혁신적인 발달, 80-90년대를 휩쓴 민영화의 물결, 세계화로 인한 외환시장의 성장 등에 힘입어 몸집을 부풀릴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은 실물경제의 가치를 교묘하게 부풀릴 수 있는 조작기술을 갖추었고 이런저런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온갖 파생상품을 무한정 만들어대도 언제든지 팔아치울 수 있는 고객들이 있었다.
사실 주식이란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종이쪼가리다. 주식에는 교환가치만 존재하며, 실제적 가치보다는 잠재적 가치에 따라 교환되기로 ‘약속’되어 있다. 예컨대 어떤 기업이 신기술을 개발하면 주식 한 주당 더 많은 이윤을 낼 것이 예상된다. 그리고 그 ‘교환’이라는 것도 필요에 따른 당사자들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증권시장이라는 (자본가들을 위한) 돈놀이 시장에서 인위적으로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없는 가치가 있는 것처럼 조작되고 있는 위험은 없는 것처럼 조작된다. 헛소문 한마디를 퍼뜨려서 치고빠지는 것쯤은 정보와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는 식은죽 먹기이다. 가진 자들은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최소화하고 어떤 상황에서건 가능한 한 많은 이득을 취하려 한다. 따라서 금융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들은 작업장에서만 착취당하는 것이 아니라 주식시장에서도 착취당한다. 여름 내내 열심히 일한 개미투자자들에게 따뜻한 겨울은 보장되지 않는다. 겨울맞이를 하고 있던 개미들의 집에 찾아온 베짱이는 육식곤충이었던 것이다.
이런 자본주의는 썩은 자본주의다. 비생산적, 아니 반생산적인 자본주의이다. 멸망이 예정되어 있는 자본주의이다. 이번 기회에 탐욕스런 신자유주의를 대대적으로 손보지 않는 한 자본주의는 머지 않아 대규모 파국의 상황에 직면하여 극소수의 타락하고 배부른 자들에 대한 대다수의 분노하고 굶주린 자들의 반란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맑스가 예견했던 자본주의의 전면적인 붕괴는 세계화된 썩어 빠진 신자유주의의 조건 속에서 더욱 현실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