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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세기 - 20세기는 왜 피로 물들었는가
니얼 퍼거슨 지음, 이현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평점 :
이 책은 시기적으로 주로 1914년부터 1945년까지를, 소재로는 인종 학살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20세기 전반기에 전세계를 휩쓴 폭력의 배경으로 19세기 말 유럽 제국의 붕괴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말까지 유럽의 주요 국가들의 지배층은 복잡한 친족관계로 서로 얽히고 섥혀 있었다. 그래서 이들 사이에 주요 가족모임이라도 있게 되면 흡사 유럽의 정상회담이라도 열리는 듯했다. 왕족의 혈연관계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유럽 제국은 지금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자본과 노동이 ‘세계화’ 되어 있었다. 그러나 1914년 1차 세계대전과 함께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1차 세계대전은 특히 동유럽에서 다인종 제국과 다인종 사회 집단으로 구성된 구체제를 해체시켜 버렸다. “서로 부딪칠 줄 알면서도 맹렬한 기세로 달리는 기관사들처럼, 유럽 제국들은 1914년 대열차 충돌을 일으켰다. 그 결과 네 왕조가 막을 내리고 열 개의 민족 국가가 탄생(p. 287)”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전역에서는 민족 국가라는 이상과 다민족 사회라는 현실이 충돌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오래된 왕조 제국의 느슨한 구조에 의해 다양성이 조정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절은 가 버렸다(p. 263).” 왕가의 느슨한 연결관계에 생긴 균열을 비집고 민족국가가 출현했다.
1차 대전 직후 국가간 경계선이 확정되고 강화되어 감에 따라, 이전까지는 별다른 생각 없이 유럽 각지에 흩어져 살던 소수민족들은 새 국가에 복속할 것인지 떠날 것인지 선택을 강요 받았다. 당연하게도 전범국 국민인 독일인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패전국 독일은 “두 개의 제국을 잃고, 이제는 일곱 개가 넘는 나라들에 이주민들이 흩어진 데다가 두 공화국으로 나뉘기까지(p. 288)” 했다. 일부 독일인들은 새로 정해진 독일 국경선 안으로 되돌아갔지만 대다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프랑스 국민, 폴란드 국민, 루마니아 국민, 체코슬로바키아 국민 등이 될 것을 강요 받았다. 그러한 강요는 폭력과 학살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빈번하게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독일인에게만 국한 된 것은 아니었다. 모국을 떠나 있던 우크라이나인, 헝가리인 등도 새 국경 속에 갇혔고, 무엇보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고 싶어하듯이 특히 유대인이 그러했다.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그리스인 등의 소수인종에게는 이러한 현상이 더 극단적인 형태로, 즉 인종청소의 형태로 나타났다. 여러 민족이 뒤섞여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오던 유럽, 특히 동유럽은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에 민족간 혐오에 휩싸이게 되었다. 유대계 독일 작가 알프레드 되블린이 말했듯이, “오늘날의 국가는 민족의 무덤(p. 289)”이 되었다.
구(舊)제국의 몰락한 자리를 메웠던 민족국가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제국에 휩쓸렸다. 러시아에서는 구(舊)제국을 몰아낸 사회주의혁명이 더 거대한 제국을 형성했다. 독일은 감당할 수 없는 1차 대전 배상금 때문에라도 다시 제국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독일과 더불어 일본과 이탈리아는 경제적 요구 때문에 제국으로 나아갈 소지가 다분했다. “국내에서 얻을 수 있는 식량이나 원료가 한정된 상태에 인구 밀도까지 높”았기 때문이다(pp. 400-401). 아직 구(舊)제국의 공백은 다른 것으로 완전히 메워진 것이 아니었다. 잠재된 갈등을 잠재우기엔 아직 더 많은 피가 필요했다. 인종 학살이 재개되었고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될 때까지 전보다 더 큰 규모로 학살이 자행되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인 인종간 폭력은 구(舊)제국의 붕괴 및 민족국가의 출현과 함께 시작되었다. 모든 것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저자는 일반화나 인과관계를 구성하는 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지만, 적어도 대량 학살의 시작을 민족의 발흥에서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날의 유럽 지도가 그려지기 위해서 지난 세기 초반의 유럽사는 민족간 갈등과 폭력으로 점철되었다. 현대 민족국가의 탄생기에 국경선 내 정치적, 인종적 동일성을 위해서 소수민족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폭력이 이루어졌다. 구(舊)제국의 몰락에서부터 오늘날의 크고 작은 민족국가가 자리잡기까지 말이다. 에릭 홉스봄이 1914-1919년을 ‘극단의 시대’라고 부른 것을 염두에 둔 듯, 저자는 여기서 주로 다루는 1914- 1945년을 ‘증오의 세기’(history’s age of hatred, 직역하자면 ‘증오의 역사시대’)라고 부른다. 후에 다른 책에서 퍼거슨은 이러한 증오를 인간의 본성이라고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이 용어는 부제로까지 붙어 있지만, 본문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니얼 퍼거슨은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유럽의 어디에서 어떤 이유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를 설명한다. 20세기 전반기 내내 여기저기에서 학살이 꾸준히 이어진 탓에 만약 이 책을 영화로 구현한다면 스크린은 내내 피칠갑을 할 것이다. 저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붙잡는 것은 인종 학살이라는 소재이다. 그러나 ‘증오’와 그로 인한 학살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저자의 태도는 모호하다. 그의 접근법은 휴머니즘도 아니고, 역사변동론도 아니고, 사회사(social history)도 아니며, 정치경제학도 아니고, 민중사관은 더더욱 아니다. 저자의 강조점은 자본주의의 출현도 아니고, 민족국가의 탄생도 아니며, 세계대전 그 자체도 아니다. 홉스봄과 달리 저자는 구조변동에 관심이 없으며, 아마도 역사학자라는 출신적 한계(?) 때문인지 인과관계의 구성이나 일반화에 대한 욕심도 없어 보이며, 본인의 정치적 입장 때문인 듯 아래로부터의 역사는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때문에 원서의 부제이자 번역본의 큰제목인 ‘증오의 세기’라는 거창한 일반화는 공허해 보이기까지 하다. 저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인종 학살을 다루고 있을 뿐인데 이것은 지나친 소재주의로 보인다.
그렇다면 구(舊)제국의 몰락과 민족국가의 출현, 인종간 충돌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니얼 퍼거슨은 이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신흥 부르주아지, 노동자, 농민에 대한 언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식의 접근법도 가능하지 않을까? 부르주아지가 성장하면서 기존의 왕족을 대체할 정치권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들이 좀더 쉽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민족)국가라는 틀 안에서 정치력을 동원하다 보니 배제와 폭력이 발생한 것으로 말이다. 그 속에서 노동자, 농민 등은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현혹되어 쉽사리 폭력에 동원되었다고 부르주아지는 민족국가의 틀이 어느 정도 확립되자 자신들의 세력을 더 확장하기 위해 제국으로 나아가는 무리수를 둔 것으로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저자는 인종간 갈등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인종의 밈(race meme)이라는 개념을 갖다 썼는데, 이러한 추상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개념을 전제로 삼는 것은 논지의 뼈대 전체를 취약하게 만든다. 서론에서 저자는 인종의 밈이 경제 활성화와 제국적 야망과 결합되면서 인종적 차이가 정치화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본문 전체를 관통하지 못한다. 1차 대전 이후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제국으로 나아간 이유를 설명할 때에만 약간의 유효성을 지닐 뿐이다. 또한 이것이 누구의 ‘경제 활성화와 제국적 야망’인가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자본가? 국가 관료? 아니면 이름없는 대중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떤 이해관계에 따라 인종 폭력에 연루되게 된 것일까? 이 책에서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결여되어 있다. 경제 활성화라는 변수와 인종 갈등이라는 변수가 그저 병렬적으로 나열되고 있을 따름이다. 오히려 본문을 읽다 보면 민족국가의 대폭발을 인종 학살의 직접적인 계기로 보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그렇지만 민족국가의 어떤 측면이 왜 그러한 학살을 가져왔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니얼 퍼거슨의 주장이 좀더 설득력을 가지려면 자본가의 성장, 구(舊)체제의 모순, 민중의 각성, 민족(인종) 의식의 성장, 민족 이데올로기, 경제적 경쟁, 전쟁으로 인한 정치적 공백과 대중의 불안심리, 국가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의 변수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인종의 밈 같은 증명될 수 없는 요소를 주요 변수로 삼는 것은 설득력도 떨어질 뿐더러 위험부담도 크다.
[덧붙임]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H.G. Wells의 The War of the Worlds(1898)에서 따왔다. 다만 이 책에서 World에 복수형(s)이 붙지 않는 것은, Wells의 책에서는 우주인과 지구인의 두 세계가 싸웠지만 퍼거슨의 책에서는 유럽이라는 하나의 세계가 자신들끼리 싸웠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 인종간 갈등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이 베어 있는 작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