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철학을 인터뷰하다
하버드 철학 리뷰 편집부 엮음, 강유원.최봉실 옮김 / 돌베개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하버드, 철학을 인터뷰하다>(이하 ‘하버드’) 1991년부터 1년에 한 번씩 하버드에서 발간되는 <The Harvard Review of Philosophy>의 편집인들이 2002년에 출간한 책이다. 그후로도 두 권의 책을 더 출간했다. 이 저널의 편집인들은 대개가 똑똑하고 야심에 찬 젊은 하버드대 철학과 학부생들이다. 저널이 미국 학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어떠한지는 모르겠으나, 학부생들이 위주가 되어 대학의 이름을 걸고 연간지를 낸다니 학생들의 저력을 알 수 있겠다.

<하버드> 1991-2001년간 진행된 ‘철학자’ 14인과의 인터뷰를 엮었다. 각 인터뷰 앞에는 2-5페이지 분량으로 철학에 대해서 간략한 소개가 나온다. 움베르토 에코를 제외한 13인은 모두 미국에 기반을 둔 학자들이며, 그 중 대부분은 하버드에서 가르쳤거나 가르치고 있다. 사실 <The Harvard Review of Philosophy>와 비슷한 이런 류의 저널들은 학교와 학과의 명성(점수)을 높이고, 학생과 교수들에게 좀더 쉽게 글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전공자들끼리 정보를 공유할 목적이 크다. 근본부터가 대중적인 저널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된 학자들은 대부분 한국 독자들에게 낯설다. ‘현대’ ‘미국’ ‘철학자’들인 탓이다“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1:46)”는 성경 구절처럼 철학에 관한 한 항상 유럽에 뒤쳐져 있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미국에, 그것도 현대 미국에 무슨 철학자가 날 수 있을까? 유럽과 미국은 매우 다른 역사적, 철학적 전통 위에 서 있다. 미 대륙에 발을 디딘 이후 드넓은 광야를 개척해야 했던 미국의 초기 이주자들에게는 골치 아픈 사색보다는 실제 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철학(프래그머티즘)이 가장 절실했다. 예컨대 미국 심리학, 상담학, 정신의학 계통에서는 프로이트나 라깡 같이 문제의 근원을 캐는 이론보다는 치료할 수 있는 영역에 한해서 실제 치료의 근거를 제공해주는 이론이 인정을 받는다. 그런 쪽에서 일하는 미국 전문가라는 사람들 중에 라깡이라는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이 절대 다수이다.

이 책이 한국에 출간된 시점이 절묘하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에서 출간되고 불과 몇 개월 뒤에 이 책이 번역 출간되었다. 샌델은 같은 하버드대학의 원로교수 존 롤스의 정의론을 뒤집으면서 유명해졌고, 그의 정의론 강좌는 해마다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책 <하버드>에는 롤스와 샌델의 인터뷰가 모두 실려 있다.

인터뷰 형식이기 때문에 학자들의 이론을 깊이 있게 분석해서 제공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신변잡기적인 것도 아니다. 편집인들은 인터뷰 형식을 통해 책 내용을 더 쉽게 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미국 학자들에 낯선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오히려 짧고 간단한 인터뷰 형식이 그 학자에 대한 이해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인터뷰어가 질문에서 낯선 개념이나 용어들을 툭툭 던지기 때문에, 해당 학자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독자는 인터뷰에서 소외감마저 느낄 수 있다. 용어에 대한 주석이 좀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인터뷰 앞에 2-3페이지 정도 분량으로 학자를 소개하지만, 이 또한 너무 간략해서 큰 도움은 안 된다. 학부생으로 구성된 인터뷰어들에게는 미국 내에서 이름 있는 학자들을 만났다는 게 자부심이 되겠지만, 이 책은 그 이상은 없다.

<하버드>를 한국에서 번역해서 출간한 것은 대단한 모험으로 보인다. 하버드대학의 이름값 덕을 보기 위해서인지 한글 제목에 ‘하버드’가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기꺼이 읽어 볼 한국 독자층이 극히 얇아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라면 하버드 동문들도 많이 있을 테고, 하다 못해 일반인 중에서도 언론에서 몇 번 들어본 학자들이 등장하니까 약간의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일단 장르가 철학이라는 비대중적인 장르인데다가, 등장하는 학자들이 낯선 미국의 당대 학자들이다.

더욱이 번역이 썩 훌륭하지 않은 탓에 본문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커진다. 원서 자체가 하버드 철학과에서 쓰이는 전문어(jargon)와 딱딱한 말투로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번역문이 매우 딱딱하고 종종 부자연스럽다. 영문과 병기된 소제목을 보면 오역도 눈에 많이 띈다. 예컨대 Philosophical Faith in Action(p. 49)은 ‘in action’이 ‘행동 중에 있는’이라는 뜻이므로 ‘행동하는 철학() 신념’ 정도로 번역해야 하는데 ‘행위에 대한 철학적 신념’이라고 오역했다. 그리고 Reflection on a Life of Philosophy(p.75)는 ‘철학의 삶(철학적인 삶, 철학하는 삶)에 대한 성찰’이라고 해야 하는데, ‘생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라고 어색하게 번역했다. Perspectives on Logic, Science, and Philosophy(p. 279)에서 ‘perspectives’는 ‘전망’보다는 ‘견해’라고 번역하는 게 나을 듯하다. What time is it on the sun?(p.303)은 지구에서는 태양을 기준으로 시각을 측정하지만 과연 태양에서는 어떻게 시각을 측정할 것인가 하는 질문(생각과 관점의 한계에 관한 비트겐슈타인의 전제)이므로 ‘태양은 지금 몇 시인가?’라고 그대로 번역해야 하는데 ‘해는 몇 시에 뜨는가?’라고 오역했다. 이 책에 실린 많은 철학자들이 비트겐슈타인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비트겐슈타인의 핵심질문을 이처럼 오역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P.134의 ‘방문학자’는 visiting scholar를 번역한 듯한데, 대개 ‘방문교수’라고 번역한다. Peter Unger의 성 Unger  ‘웅어’가 아니라 ‘언거’라고 발음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번역상의 문제가 역자들의 단어 선택의 취향이나 사소한 오류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문장 하나를 예로 들어 보자.

“그는 사람들이 이러한 입장에서 한두 가지 평균적으로 낮은 수준의 희생이 있더라도 자유와 부라는, 기회와 권력에서는 최소극대화되는 위험성이 낮은 전략을 선택할 것이라 주장한다. (p. 135)

이 문장을 보면 구조상 ‘자유와 부’는 곧 ‘전략’을 가리켜야 한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이 둘은 동일할 수는 없으므로 ‘자유와 부를 선택하는 것’이 ‘전략’이 되어야 옳다. 뭔가 오역이다 싶어서 어렵사리 원문을 찾아 봤다.

He argues that in this position people would choose a low-risk strategy in which liberties and the highest minimum levels of wealth, opportunity, and power are promoted even at the expense of lowering average levels of one or another.

완전한 오역이다. 이 문장 말미에서‘one’은 ‘wealth, opportunity, and power’ 중 어느 하나, another’는 그것을 제외한 다른 하나를 가리킨다. 이 점을 고려하는 한편 다른 오역을 수정해서 다시 번역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사람들이 이러한 입장에 처했을 때 부, 기회, 권력 중 어느 하나의 평균 수준을 낮추더라도 그 최저한도 상한선과 자유를 향상시키는 저위험 전략을 선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one’이 ‘liberties’를, another’는 ‘the highest minimum levels’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이 이 둘 중 하나를 희생하더라도 두 가지(의 합)를 증진시키는 쪽을 택하리라는 주장이다. 이 경우는 다음과 같이 번역하면 된다.

“그는 사람들이 이러한 입장에 처했을 때 부, 기회, 권력의 자유와 그 최저한도 상한선 중에서 어느 한 쪽의 평균 수준을 낮추는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이 두 가지를 향상시키는 저위험 전략을 선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돌베개는 내가 학부 때부터 호감을 가졌던 출판사인데, 이번 책은 다소 실망스럽다. 이 책이 어떤 독자들을 예상하고, 어떤 계기로 한국에서 출판됐는지 모르겠고, 어떻게 해서 미국철학 전공자도 아니고 영문학 전공자도 아닌 역자들이 책을 번역하게 됐을까도 의문이고출판사에서 좀더 꼼꼼한 교정을 통해 오타, 오역, 잘못된 문장을 잡아내지 못한 점도 아쉽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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