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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세계사 - 우리가 해결해야 할 전 지구적 이슈와 쟁점들 ㅣ 르몽드 세계사 1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지음, 권지현 옮김 / 휴머니스트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르몽드 세계사>는 <Le Monde Diplomatique>를 번역한 책이다. <르몽드 세계사>라는 한글 제목 때문에 세계역사를 다룬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그렇지 않다. 이 책은 통시적으로 세계역사를 고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전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록 과거의 통계자료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현재와 비교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맥락에서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한국어 제목은 World History가 아닌 World Affair의 의미를 지닌 ‘世界事’라고 보면 될 것이다.
책 서문은 지도의 정확성에 대한 과유불급의 교훈을 주는 보르헤스의 소설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더 정교한 지도를 만들다가 결국 지도가 제국만큼이나 커져버렸다는 넌센스를 통해, 현상을 더 잘 관찰할 수 있는 적절한 지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왜 지도 이야기로 시작했을까? 다름이 아니라 이 책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방편으로 수많은 지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통계를 글로 서술하거나 표로 제시하는 대신에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각 국가 위에 다양한 길이의 막대기와 크고 작은 원, 색상 차이 등을 통해 통계를 ‘보여준다’. 여러 가지 다양한 통계가 하나의 커다란 세계지도 안에 다양한 시각적 효과로 구현된 것을 보노라면 지도 제작자의 번득이는 아이디어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러한 방식이 독자에게 주는 효과는 분명해 보인다. 독자들은 우선 통계를 지루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고, 나아가 전세계를 한눈에 고려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브라질은 이렇고, 벨로루시는 저렇다는 것을 말이나 수치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지도로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이 전세계를 한눈에 품을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지구적 이슈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더욱 실감할 수 있게 된다. 가령 아프리카 적도 주변에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띠 모양 바로 밑으로 벌채가 활발한 띠 모양의 지역을 보면서, 독자는 벌채가 끼칠 사막화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수 있다.
물론 이런 효과만이 이 책이 가진 장점의 전부는 아니다. 르몽드가 엄선한 104개의 주제에 대해 76명의 뛰어난 집필진이 글을 썼다. 1인당 1-2편의 글을 쓴 셈이다. 집필진 중에는 촘스키, 데리다, 홉스봄도 있다 하니 반갑다. 수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지금 이 순간 지구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몰랐던 문제들까지 깨달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대륙간 건강불평등을 다룬 챕터를 보면 막연하게 생각하던 건강불평등의 실상이 얼마나 처참하고 처연한지 느낄 수 있다. 특히 아프리카 내륙 국가들은 평균수명이 30-40세에 불과한데, 이곳 출신 의사들이 에이즈, 저임금, 정치적 탄압을 피해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찾아 대거 타국으로 빠져나가버리는 탓에 양질의 질병 치료의 기회는 매우 부족하다. 선진국에서 에이즈 치료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중이지만, 그 혜택이 아프리카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연구는 활발해진 인구 이동 유출입 과정에서 아프리카를 빠져나온 에이즈균에 감염된 부유한 소수의 선진국 국민을 위한 것이지 국가 전체가 죽어가는 아프리카 국민들을 위한 것은 아닐 터이다.
주제가 다양한 만큼 아쉬운 점도 있다. 모든 챕터가 2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는데다가 각 챕터마다 지도가 몇 개씩 들어가기 때문에 챕터별 내용은 사실 매우 짧다. 그 짧은 공간 안에 많은 이야기를 담다 보니 어떨 때는 설명이 필요해 보이는 용어, 사건들이 아무런 설명 없이 지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지도에 간혹 오기나 잘못된 정렬이 눈에 띈다. 교정을 할 때 지도와 표는 본문보다 신경을 덜 쓴 듯하다.
이 책은 오늘날 세계의 쟁점을 확인하기에 적합한 다양성과 적당한 깊이를 가지고 있다. 요즘 사회운동 진영에서 흔히 쓰는 문구 중에 “Think Globally, Act Locally. “가 있는데,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일단 “Think Globally”는 이룰 수 있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