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레닌과 트로츠키를 잇는 국제사회주의 운동을 대변한다. 그는 구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한다. 1990년대 중반 책갈피에서 그의 책이 처음 번역되어 나왔을 때,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실의에 빠진 한국 좌파들에게 ‘몰락한 건 소련 국가자본주의이지 사회주의운동 그 자체가 아니’라는 위안을 주었다. 그의 저서들 중 비교적 초기에 번역된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은 대학가에서 새로운 필독서로 부상했다.
이 책은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시작된 경제 위기의 원인과 세계 경제 전망에 관해 밝힌 책이다. 물론 고전 맑시스트의 명성에 걸맞게 경제 위기를 맑시즘의 관점에 서서 근본부터 파고든다. 이번 경제 위기에 많은 사람들이 moral hazard라는 잣대를 들이댄다. 그러나 미국 금융 위기가 moral hazard 탓이라는 주장은 기실 ‘구조’의 문제를 ‘개인’에게 돌리는 우파적 관점이다. 즉 moral hazard를 말하는 자들의 논점은, 금융위기가 자본주의 체제가 가진 구조적 모순이 아니라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자들의 부도덕함 탓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캘리니코스는 미국 및 전세계 경제 위기를 둘러싼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을 맑시즘의 시각에서 분석한다(저자가 맑스주의 경제학의 개념을 별다른 설명 없이 사용하기 때문에, 여기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다소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많은 이론가와 정책가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그들의 의견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매우 시사적인 현상들에 관한 상충하는 의견들과 그 이론적 배경을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전반부는 미국 금융위기를 미시적으로 다루고, 후반부는 좀 더 거시적이고 세계적이고 이론적인 차원에서 자본주의의 문제를 지적한다. 책의 내용이 다소 산만하고, 강조점이 명확하게 부각되지 못했지만 이 책을 통해 주장하는 캘리니코스의 핵심은 이번 위기가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주요 주장과 흥미로운 부분을 요약, 재구성하고 거기에 내 의견를 덧붙여 정리하는 것으로 리뷰를 대신하고자 한다.
1부에서는 미국 금융위기를 다룬다. 무분별한 ‘파생상품’ 판매가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일지언정 그 근저에는 이러한 위기까지 이끈 자본의 과잉 축적과 이윤율 저하의 문제가 깔려 있다는 것이 캘리니코스의 기본 입장이다.
흔히 힐퍼딩의 금융자본론은 1980, 90년대 대학가 좌파 운동권 사이에서 종종 읽혔던 책인데, 자본주의 후기에 이르러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지배하게 된다는 금융자본론의 입장과는 반대로 미국에서는 1945년 이후 그러한 경향이 오히려 줄어들었고 최근에는 채권과 양도성예금증서 발행 따위의 방식으로 산업자본이 스스로 자본을 조달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미국 금융자본은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서 가난한 가계에 모기지 대출을 남발하기에 이르렀고, 이것이 결국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이어졌다. 그러고보면 ‘신용’이라는 것이 신용카드나 모기지 같은 형태로 개별 소비자들까지 주어지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말이 좋아 ‘신용사회’지 그 내막을 보면 이렇듯 불안정하고 불순한(?)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날 자본주의 하에서는 각종 신용 상품들, 혹은 신용 파생상품들의 이름을 걸고 A의 신용위험을 분산해서 a1, a2라는 상품으로 B와 C에게 팔고 이들은 똑같은 방식으로 D, E, F, G에게 팔고… 하는 방식을 통해 위험을 완벽하게 분산시켰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이것은 위험을 단순히 분산시킨 것이 아니라 동일한 정도의 위험을 더욱 많은 경제주체들이 떠안는 것을 의미했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의 정도가 더욱 커진 것을 의미했다.
파생상품의 핵심적, 보편적 특징은 모든 자산을 ‘해체’하고 ‘분해’해서 그 구성 요소들로 쪼개고, 자산 자체를 거래하지 않으면서도 그 구성 요소를 거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생상품은 다양한 종류의 ‘특수한’ 자본을 결합하고 혼합하는 독특한 구실을 하는 메타 자본의 성격 때문에 1971년 미국이 금환본위제를 포기한 이후 국제통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고정 장치 구실을 할 수 있었다. 파생상품은 개별 자본들이 마치 안정돼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계 금융 시스템 속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해준다. 하비의 표현을 빌리면 파생상품은 “교환을 매끄럽게 하고 비용도 들지 않고 즉시 조정할 수 있는 화폐”의 구실을 했다. 2008년 중반 장외 거래 파생상품 미결제 계약의 개념적 가치 총액은 683조 7,000억 달러로 세계 총생산보다 11배 많았다. (pp. 57, p. 58 & p. 77)
(헤지펀드, 사모펀드, 구조화투자회사 같은) 그림자 금융 시스템이 오랫동안 숨어서 전혀 규제 받지 않은 채 마술처럼 신비하게 서브프라임 대출을 해준 다음 그 대출들을 묶어서 월스트리트의 마법사들만이 설명할 수 있는 세 글자짜리 온갖 전달 상품으로 만들어서 판매했다. (pp. 51-52)
그러나 캘리니코스는 세계 경제위기의 원인이 금융권에서 시작되었을지언정 금융권만이 원인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의 위기가 자본축적 과정 전체에서 작동하는 심각한 모순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위기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 세 가지 차원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1) 장기적인 과잉 축적과 수익성의 위기, (2) 만성적으로 불안정하고 구조적으로 불균형한 세계 금융 시스템, (3)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위한 신용 거품 의존 증대.
(1) 미국에서는 수익성(이윤율) 위기를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산업 재편, 노동운동 탄압, 노동자에 대한 착취 증가를 통해 극복하려 했다. 노동생산성이 증가된 것에 비해 실질임금이 동결되어 노동력의 가치는 꾸준히 떨어졌고, 생산성 증가의 결과물은 자본에게 돌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후 미국 자본의 이윤율은 오늘날까지 꾸준한 하락세를 보였다.
(2) 미국은 금 태환이 되지 않는 달러를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을 이용해서 만성적 국제수지 적자를 메울 수 있었다. 미국은 꽤 낮은 금리로 얼마든지 자국 통화를 빌릴 수 있었다. 연방준비위원회는 세계 전역의 잉여 저축과 잉여 재화 및 서비스를 일정한 실질 환율로 흡수해서 미국 경제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세계 경제의 균형도 유지하는 정책을 자유롭게 추진했다. 그러나 심지어 세계 최빈국에 속하는 나라에서 유입되는 자금에 의존해야 하는 미국의 헤게모니는 사실 취약한 것이었다.
(3) 1998년 러시아의 디폴트 선언 이후 미국의 주요 헤지펀드인 Long Term Capital Management(LTCM)가 파산하자 그린스펀은 구제금융과 금리 인하를 통해서 지속적인 주가 상승을 유도함으로써 국내 소비와 투자를 계속 부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IT 산업에 대한 과잉 투자를 불러왔고 2000년 닷컴 거품이 꺼지면서 다시 불황이 닥쳤다. 이에 그린스펀은 강조점을 바꾸어 모기지 금리를 낮추고 주택 가격을 올리면서 가계 차입과 소비 지출을 늘리는 길로 나아갔다. 그러나 주택 가격이 56% 상승한 5년이 지난 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발하자 이러한 조처도 효과가 다했다.
별로 안전하지 않은 채무자들에게 내준 대출, 예컨대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특히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위험도가 높을수록 이자와 수수료도 높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용평가기관들은 자신들에게 수수료를 지급하는 은행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으므로 많은 CDO를 트리플A, 즉 디폴트 위험이 거의 없는 안전한 투자 등급으로 분류하고 보증해 줬다. (p. 107)
그러나 2006-2007년에 모기지 디폴트가 급증하자 은행들과 그림자 금융권의 은행 파트너들이 세운 투기성 사상누각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금융 시스템은 한쪽 끝만 잡아당기면 전체가 줄줄 풀리고 마는 뜨개질한 목도리 같은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p. 116)
최근의 경제위기는 무엇보다 금융위기와 연결된 불황이며 전세계적인 불황이다. 이 점이 이번 경제위기의 회복을 더디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 엄청난 손실에 직면한 금융기관이 대출을 줄이고, 대출이 어려워진 기업은 생산을 줄이고 가계는 저축을 늘린다. 이것은 다시 금융권을 압박하고 금융기관은 대출을 더욱 줄이게 된다. 이른바 디레버리징(Deleveraging)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오늘날의 경제 및 금융위기가 훨씬 더 깊고 장기적인 과잉 축적과 수익성 위기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노동 착취율을 높이고 자본의 가치를 크게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는 그다지 큰 효과가 없었고, 후자는 국가의 구제금융 때문에 실현이 저해되었다. 구제금융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최악의 조합, 즉 손실은 사회화하고 이득은 사유화하자는 것이었다. 수익성 없는 기업들이 파산하도록 내버려 두면 자본의 가치가 크게 떨어질 것이고 그러면 이윤율이 다시 충분히 상승해서 새로운 축적이 시작될 수 있겠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려면 1930년대 대공황만큼이나 장기적이고 심각한 불황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구조적 딜레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주요 국가들이 시장에서 비효율적인 자본들이 일소되도록 자유방임한다면 그 결과는 장기 불황일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나서서 자본의 대대적 가치 저하를 막는다면 과잉 축적과 수익성의 장기적 위기가 지속될 것이다. 이것은 세계 자본주의가 수십 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근본적 모순이 여지없이 드러난 것이다. (pp. 128-132)
2부에서는 흥미로운 이론화가 눈에 띤다. 세계화 이후에 약화된 것으로 믿어 왔던 국민국가의 재등장, 경제 통합을 가로막는 지역경제들간의 갈등, 그리고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는 미국 헤게모니 등을 다룬다.
우선 미국 바깥으로 눈을 돌려보면 국민국가의 재강화를 목도하게 된다. 즉 세계화된 경제는 있어도 세계 정부는 존재하지 않으며 2008년 경제 위기를 즈음하여 오히려 각 국가 수준에서 경제에 개입하려는 시도는 더욱 강화되었다. 오랫동안 경제연합을 추진해 온 유럽에서조차 그렇다.
또한 석유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러시아와 걸프 국가들이 막대한 수입을 올렸고, 아시아 지역은 제조업과 일부 서비스업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이는 세계 경제의 경제력이 이동했고 서방 자유 자본주의가 세계로 확산되는 데 제동이 걸린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중국, 러시아, 걸프 국가 등 신흥 경제들은 자유 자본주의가 아닌 국가자본주의 모델을 따른다. 방대한 에너지원을 보유한 중동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현지 민중의 저항에 직면하여 지지부진해졌고, 이라크 전쟁에 대한 유럽의 협력은 석유와 가스 공급을 쥐고 있는 러시아의 방해로 약화되었다.
미국은 자국 경제를 살리려는 노력 속에 대외 채무가 늘었는데 특히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채무가 늘었다. 그 중에서도 중국은 2008년에 중국 GDP의 10%가 넘는 4,000억 달러 이상을 미국에 빌려 주었다. 그러나 미국은 달러 평가절하를 통해 부채 부담을 덜려고 했고, 이는 채권국들과의 갈등을 낳았다. 이에 미국 국가정보위원회에서 나온 보고서조차 미국의 세계 지배력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즉 신흥 강대국들의 부상, 세계화하는 경제, 서쪽에서 동쪽으로 상대적 부와 경제력의 이동, 비국가 행위자들의 영향력 증대 때문에 2025년쯤이면 세계 체제는 다극 체제로 바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동안에 어떠한 갈등과 대결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다극 체제라고 해서 미국이 여러 다극 중 하나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세계 경제에서 미국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은 수출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고 내수시장이 너무 작다. 생산성 향상보다는 저임금에 기초하여 수출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산시설에 대한 과잉투자로 유휴설비가 크게 늘기 시작했다.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경제들 대부분이 저축은 높은 반면 소비가 적다는 불만이 이번 경제 위기를 계기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다른 신흥 경제의 부상은 그들 사이에서 갈등과 긴장을 낳게 될 것이고, 미국이 이것을 이용해서 이른바 분할 지배 전략을 구사하기가 수월해질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에 경제는 국민국가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고, 때문에 처음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재앙을 낳았지만 종전 이후에는 ‘착근된(embedded: 배태된)’ 자유주의라는 형태의 타협을 이루었다. 즉 국제 수준에서는 자유화를 보장하지만 국민국가 수준에서는 국가의 개입을 강화(공공부문 확대, 복지 확대, 케인스주의 수요관리 정책으로의 전환)하는 형태가 결합된 것이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등장으로 경제는 다시 1930년대 이전처럼 사회에서 분리된 형태로 돌아갔지만,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다시 ‘착근된’ 자유주의로의 복귀가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오늘날이 달라진 것이 있다. 경제의 세계화가 많이 진전된 탓에 국민국가가 경제를 규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제적 규제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련의 위기와 변환은 특정 정책 레짐(regime)과 특정 자본주의 형태가 실패해서 다른 형태들로 진화되는 과정인가? 캘리니코스는 이것이 본질적으로 자본주의를 괴롭혀 온 훨씬 더 뿌리 깊고 오래된 위기, 즉 과잉 축적 위기와 이윤율 저하 위기가 다른 형태로 전이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이번 경제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위기를 보여준다.
대안은? 결론에서 캘리니코스가 주장하는 내용은 그가 기본적으로 항상 품고 있는 생각이겠지만, 본론에서 나온 미국과 세계 경제 위기와 논리적으로 연결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는 민주적 계획경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볼리비아의 가스, 석유산업 국유화는 고무적이기는 하지만 한계가 있다. 경제적 우선순위들이 경쟁이 아닌 민주적으로 결정되는 경제질서를 향한 결정적 한걸음을 내디뎌야 할 것이다. 그 과정의 하나로 ‘전국민 기본소득제’를 주장한다(이 부분은 글의 전개상 꼭 필요하지는 않았겠지만 저자가 한 번은 언급하고 싶었나 보다). 모든 국민이 기본소득을 보장 받으면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노동을 팔아야 할 이유가 없어지므로 노자관계가 역전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가능한가? 국내 반대세력이 가만히 있을까? 국제적인 반대 세력들은? 그리고 볼리비아처럼 이미 한 발을 내디딘 국가 말고 아직 시작도 못한 국가들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이쯤 읽다 보면 캘리니코스가 혁명론자가 아닌 개혁주의자였나 하는 착각마저 든다.
그러나 결론의 후반부로 가면 자본에 맞서는 세계적 수준에서 벌어지는 아래로부터의 투쟁의 필요성과 가능성이 언급된다(그런데 이러한 결론은 1, 2부의 주장을 통해 논리적으로 도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일성을 저해한다. 그저 그의 평소의 자기 주장을 다시 한 번 반복하고 따름이다). 자본의 세계화는 저항의 세계화를 낳았다는 논지인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본문과 비교해 볼 때 결론이 너무 거창한 듯하다.
[덧붙임] 다음 오타들은 수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간혹 두 칸씩 띄어쓴 곳도 수정해야 한다.
균형를 -> 균형을 (p. 67), 다름과 같이 -> 다음과 같이 (p. 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