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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 생태적 대안운동을 찾아서 ㅣ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8
구도완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평점 :
이 책은 민간 싱크탱크 희망제작소에서 진행하는 ‘우리시대 희망찾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주로 현장의 실제 사례 분석을 통해 아래로부터 희망의 단서를 찾기 위해 노력해온 프로젝트의 여덟 번째 출판물인 이 책은 (다소 포괄적인) ‘생태적 대안운동’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저자는 기존 사회운동은 권리 담론을 바탕으로 국가와 시장을 비판하면서도 국가와 시장의 문제 틀 안에 있지만, 생태적 대안운동은 성찰 담론을 바탕으로 삶의 공동체를 통해 국가와 시장을 넘어서려는 시도라고 말한다(p. 333). 즉 생태적 대안운동은 과학적 이론에 근거하기보다는 그 자체로 삶의 방식이다. 이때의 ‘생태’적 원리란 과거 환경운동이 대상으로 삼던 자연이나 환경 같은 좁은 의미의 ‘생태’를 넘어서 사회적 호혜와 연대, 자율적 지배, 내적 성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다(p. 338). 즉 생태의 원리를 삶 속에서 실천한다는 의미이다.
책에서는 ‘생태적 대안운동’을 하고 있는 24명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구술자들의 활동분야는 크게 마을 공동체, 대안 경제(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농촌(농사)공동체, 대안교육, 소수자운동 등으로 나뉠 수 있다.
· 마을공동체: 서울 성미산마을, 부산 반송 희망세상, 부산 물만골공동체, 경남 산청 안솔기마을
· 협동조합: 서울 한살림, 서울 신나는조합, 원주 협동조합협의회, 원주 밝음신협, 인천 평화의료생협
· 사회적기업: 아낙과사람들, 노리단, 페어트레이드코리아, 키친아트, 애자일 컨설팅
· 농촌(농사)공동체: 전북 부안 시민발전소, 경기 시흥 연두농장, 경기 안산 텃밭공동체, 전북 남원 한생명, 전북 진안군 마을만들기팀
· 대안교육: 도서출판 민들레, 경남 산청 간디학교
· 소수자운동: 서울 여성의전화, 서울 이주노동자센터, 이랜드 일반노조
저자의 원래 의도는 구술자들의 삶을 주제별로 나누어 분석하는 것이었다고 한다(2부). 그러나 그러다보니 각 구술자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통 알 수 없게 되어 버려서 구술자별로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부분(1부)이 더해졌다.
독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부록처럼 추가된 1부가 훨씬 흥미롭고 재미있다. 구술자들이 어떻게 해서 ‘생태적 대안운동’을 하게 되었고, 무엇을 이루었고,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생생하게 서술되어 있다. 심층 인터뷰이기 때문에 남의 삶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을 뿐 아니라 새로이 등장하는 사회운동의 일면을 경험할 수 있었다. 1부에서 다루고 있는 사례들 중에서는 1) 마을이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그것도 가장 빠르게 변한다는 대도시 서울에서 뜻맞는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만들어서’ 공동육아를 하는 성미산 마을, 2) 철거 위기를 극복하고 마을주민이 공동으로 땅을 매입하여 생태마을로 거듭난 부산 물만골 공동체, 3) 핵폐기장 반대운동의 성과를 넘어 에너지 자립을 실현해가는 부안 시민발전소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그밖에 여러 농촌(농사) 공동체 이야기 등도 흥미롭다. 물론 다른 사례들도 모두 유의미하지만, 이 사례들은 환경 및 에너지 문제와 관련하여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 가능성이 의심을 받는 이 시대에 느리게 살고, 적게 소비하고, 적게 움직이며, 덜 가지고 사는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좀더 가치를 두고 싶다. 각 사례들에 대해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해 자세히 다루었으면 좋았을텐데 책에서는 인터뷰 내용을 대폭 축소하고 부분적으로 인용하여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 점은 아쉽다.
아마도 이것은 저자가 2부에 더 많은 애착을 가졌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저자가 원래 의도한 핵심 부분인 2부는 오히려 저자가 인터뷰를 임의적으로 편집하고 자기 의견을 덧대어서 조금 답답하고 지루하다. 그래서인지 딱히 어려운 개념이나 표현이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더디게 읽혔다. ‘책머리에’에서 연구방법론에 관한 설명이 다소 장황하게 소개되는데, 오히려 그 방법론에 대한 집착이 이 책의 발목을 잡은 것 같다. 사례분석에 기초한 연구방법론에는 크게 법칙정립적(nomothetic) 방법과 개별기술적(idiosyncratic) 방법이 있다. 법칙정립적 방법은 사례들로부터 보편적 법칙을 탐색하는 반면, 개별기술적 방법은 개별 사례들의 특수성을 강조한다. 물론 사례연구라고 해서 항상 이 둘 중 한가지 방법론만을 고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디에 해당할까?
내가 보기에 이 책의 정체성은 모호하다. 저자의 원래 의도는 법칙정립적 방법에 가까웠던 것 같다. 법칙을 정립해야 한다는 것은 사회과학자의 강박 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구술을 단순히 기술하는 것만으로는 책의 가치가 (아니, 엄밀히 말해 저자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저자는 ‘구술자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1부를 추가했는데, 여기서도 구술자들의 의견을 종합하고 이론적 살을 덧붙여서 자신의 주장을 덧붙이는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대놓고 법칙정립적 방법을 활용하는 듯한 2부에서는 주제별로 구술자들을 끌어들인다. 저자가 (구술에 바탕해서) 설정한 주제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거기에 맞춰서 구술을 인용한다. 그런데 이런 식의 시도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오류가 여기서도 발견된다. 바로 저자가 증명한 법칙이 과연 얼마나 일반적인가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해 법칙을 과연 정립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물음에서 비롯된다. 24명의 인터뷰를 통해서 법칙을 정립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그 24명은 과연 ‘생태적 대안운동’을 대표하는가? 첫 번째 질문은 연구자에 따라 논란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일단 ‘그렇다’라고 해두자. 그러나 여전히 두 번째 물음은 유효하다.
구술을 논거로 삼아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구술자들에게 권위도 대표성도 없다. 여기서 권위나 대표성이란 구술자들의 파워나 영향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샘플의 대표성을 말하는 것이다. 샘플링에 대한 타당성이 증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술을 주장의 논거로 삼는 것은 매우 조잡하고 설득력 없는 글쓰기 방식이다. 아닌 게 아니라 2부와 (특히) 맺음말에서는 구술과 주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따로 논다. 구술과 주장이 연결될 때조차도 그 방식이 느슨하고 모호하다. 예컨대 본문에서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관한 질문에 대한 구술자들의 ‘답안’을 죽 정리했는데 맺음말에서는 구술자들의 활동이 사회문제에 대한 인과분석에 입각하지는 않는다거나 구술자들이 속한 활동 영역에 따라 사회문제 책임론이 다르게 나타났다는 식으로 저자가 짤막하게 정리하는 식이다. 이건 일반화도 아니고 개별기술도 아니다. 어중간하다. 현장에서 희망을 찾는 게 목적이었다면 1부와 같은 포맷만으로 책을 저술하거나 1부를 더 늘리는 게 어땠을까 싶다.
프로젝트의 제목을 ‘우리시대 희망찾기’라고 했다. 누구를 위해서 희망을 찾으려는 걸까? 활동가들을 위해서? 일반인들을 위해서? 이런 책의 포맷은 활동가들에게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진지하게 자신의 삶에서 생태적이 대안을 실천하고자 하는, 혹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볼까 하는 일반인들에게는 이런 포맷이 불편하기만 할 것같다. 그런 점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책이다. 최근에 읽은 책 중 읽으면서 갈무리를 가장 많이 한 책인데 그걸 서평에서 다 다루면 분량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많이 언급하지 않았다. 궁금하면 책을 읽어 보길 바란다. (500원 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