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가 이 책을 들기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주 희생적인 엄마의 모습이 나올 것이고, 그 엄마를 잃어버려 찾아나선다는 그런 내용일게 뻔했다.
난 엄마가 된 지금도, 난 과연 내가 완전한 엄마인지 의구심이 든다.  
난 나의 정체성 보다도 더 큰 무게로 다가오는 엄마라는 이름이 아직은 너무나 버겁다.

결국엔 내가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것은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연재되는 신경숙의 소설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라는 소설을
하루에 한편씩(그것도 토요일 일요일은 올라오지 않는다) 읽는 감질나는 맛을 견디다 못해서였다.
이렇게 가슴 절절이 내 마음에 와닿는 문구를 더 많이 접하고 싶다는 욕구가 치밀었다.
책을 들자마자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게눈 감추듯이...

엄마...
다들 나의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라는 존재로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엄마에게도 어린시절이 있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엄마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들을 때면,
지구가 아닌, 어디 먼 우주 어딘가에서나 엄마의 어린 시절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엄마가 딸인 나에게 고마움을 느끼라는 식으로 이야기 하실 때면,
엄마는 다 그런건데, 우리 엄마만 유난히 생색내신다고 생각했다.
말 안해도 고마운거 다 아는데... 하면서. 
 
지금 나는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되어 난 나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했다.
명목상으로는 내가 선택한 길이었지만,
어떤 길을 선택하든 결국은 이 길을 걷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난 엄마처럼 내 아이에게 나의 그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쳐도 내가 엄마만큼 하고 있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엄마만큼도 못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엄마는 내가 생각해도 감당 못할 일들을 견뎌왔고,
나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해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제 내가 엄마가 되어서 느낀 것은,
자식 앞에서는 무한히 약해지는 존재이지만,
그래도 나 자신에 대한 정체성은
엄마라는 후천적으로 습득된 새로운 본성과
내 안에서 무한히도 싸움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묵묵히 엄마라는 존재를 감내해왔던 엄마의 세대와는 다르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엄마들 보다도 극성스러운 요즘 세대의 엄마들.
하지만 어느순간 고개드는 나의 정체성을 포기하지도 못하고,
그러면서도 사회적으로 강요되다시피 하는 모성으로인해 최선을 다하고도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습은,
시대를 막론한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들의 공통분모를 차지하고 있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엄마를 부탁해라는 신경숙의 소설은
엄마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만, 이 땅의 여자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들을 한 사람으로 보아달라는.
엄마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았던 모습들을 보아달라고. 
자식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스스럼 없이 주고,
이제는 잃어버리고 잊혀진 존재가 된 나의 엄마에게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라도 더 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엄마의 삶이 다름아닌 나, 나의 엄마, 나의 아내, 나의 누이의 삶이고,
결국 나와 관계되는 엄마로 사는 이시대의 모든 여자들의 아픔이기 때문에. 

엄마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한 사람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결국엔 나와 가장 가까운 엄마라는 존재와의 관계 단절이
이 시대의 큰 아픔이자, 허무함과 상실감의 원천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