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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비친 유럽 유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1
조셉 폰타나 지음, 김원중 옮김 / 새물결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에는 진실이 존재하는가. 역사를 이끌어 가는 주체―존재하는가 자체를 의문으로 삼을 수도 있겠지만―는 누구인가.

<거울에 비친 유럽>은 이런 난감한 질문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그리스(아테네)의 민주주의와 빛나는 문화유산이 로마제국을 거쳐 기독교와 봉건제가 지배하는 암흑의 중세에는 침묵하다가 르네상스를 거치며 부활, 찬란한 근대의 시작을 알렸고, 이후 유럽사회는 산업혁명 등을 겪으며 근대화에 성공, 팽창하여 세계사의 중심자적인 역할을 해 나갔다' 정도로 요약이 가능한, 우리가 알고 있는 지극히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알고 있었던 서양사 전반이 바로 의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폰타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의) 역사가 진실이 아니라 유럽인들이 일그러진 거울에 자신과 타자를 비춰 보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써 온 역사라고 주장한다.

전통적 유럽역사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논리는 유럽의 '자기합리화'이다. 사실 자기합리화가 전혀 없는 역사서술은 존재하기 힘들 것이다. 똑같은 과거의 사건에 대해서도 이데올로기, 사회의 역사·문화적 배경, 출신계층(혹은 계급)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달라지는데,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개인을 규제하는 각종 기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채 역사를 본다는 것은 힘들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중국의 중화주의, 별다른 생각없이 사용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이라는 말에도 일정 정도는 '거울에 비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지배 계층이 내부적으로 적을 규정하고 민중의 역사를 왜곡한 것도 본질적으로는 어느 사회의 지배층이나 가지고 있는 속성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역사가 의미를 갖는 것은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왜곡된 진실이 어떠하든 간에 최근 수세기 동안 유럽은 세계역사의 중심자로서 역할했고 그렇게 각인되어 왔으며, 세계 역사 속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조차 무의식중에 각인된 왜곡된 유럽중심주의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폰타나의 저작은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유럽중심주의가 가져온 근대 이후의 병폐들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를 유럽 내부로부터 시작한 것이다. 폰타나 역시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일그러진 거울로 이루어진 유령의 집'을 뛰쳐나오지 않는 한 자멸의 길을 갈 것이라는 경고는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유럽의 역사가들의 '새로운 유럽읽기' 시도가 그들의 말대로 자멸의 길을 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현재의 세계상황이 새로운 유럽, 즉, 유럽이 근대 이후에 행해왔던 세계사의 주역을 미국이 대신하고 있다는 위기감에서 온 것이라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반성을 통해 패자논리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바로잡는 것은 바람직하겠지만, 여기에서 한발 나아가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속에서 세계가 재편되고, 자본의 논리 속에서 세계사가 쓰여지고 세계체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위기감과 우려가 더해져 또다른 형태의 유럽중심주의가 생겨나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거울에 비친 유럽>은 서양사를 보는 참신한 시각을 제공해 준다. 아마 책을 다 읽고 나면 기존에 알고 있었던 역사에 대한 배신감이 들지도 모른다. 그만큼 '확 깨는' 무언가를 주는 책인 건 분명하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줄 만큼...

하나 단점이 있다면, 생소한 역사적 사건이 충분한 배경 설명없이 툭툭 던지듯 나오니, 그런 걸 못참는 사람이라면 서양사 개설서 한 권쯤은 옆에 놓고 읽어야 할거라는 것 정도...? 물론 그만큼 공들일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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