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 1998 제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문학과지성 시인선 220
황지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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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의 진짜 문제 


1

어미니를 묻고 산을 내려와 뒤돌아보니

나주 전역에 만발한 배꽃들이

땅 위에서 가장 건사한 잔치, 베풀어놓았다


봉분이 나오자 일꾼들은 삽 들고 내려가고 

예순 넘은 장형, 스님 체면 아랑곳하지 않고

땅바닥에 굴러 어머니, 아부지를 목놓아 부르는데

아우와 나는 각기 다른 하늘 보며

망연히 서 있었다; 생이 이렇게 왔다 가는 

지점에 함께 있었던 시간만큼

슬픔 또한 크리라


집에 돌아와 빈방에 혼자 누웠다

나는 내가 비로서 큰 짐을 부려놓은 듯

홀가분했고 이제 우주의 내 배꼽이

뚝 떨어진 듯했다; 한차례 경련이 

지나가고 나는 어머니께 말했다

당신은 제가 가장 사랑한 여자였어요

나는 곧 잠이 들었다


2

죽는다는 건 잠자는 거; 잠이 들면,

그렇지, 꿈을 꾸겠지?

아직 발 디뎌보지 못한 나라를 떠돌아다니는

꿈; 아, 죽음 뒤에도 무엇인가가 있다면

어떡허지? 이거 정말 큰 문제야


죽는다는 건 캄캄한 어둠에 드는 거;

그림도 소리도 없는 절대 암흑, 한번 죽으면

텅 빈 거도 아닌, 완전히 없어져버리는 거

그 사람 인격도 성깔도 목소리도 표정도 마음도 

죄악도 깜끔하게 지워져버리는 거;

아, 죽음 뒤에 정말로 아무것도 없다면

어떡허지?  이거야말로 진짜 큰 문제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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