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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 - 허기를 달래주는 아련한 추억의 맛
박완서 외 지음 / 한길사 / 2024년 4월
평점 :
음식은 우리에게 그저 먹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가끔은 빠르게 끼니를
때우기도 하고 바쁜 일 때문에 식사를 거르기도 하지만 우리는 대체로 음식을 먹으며 살아간다. 우리에게
음식은 여유일 때도 있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되기도 한다. 가끔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고 어머니의 사랑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마다 모두 음식에 부여하는 가치와
의미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음식이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한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다양한 사람들의 밥 한 그릇 이야기를 담았다. 오랜 시간
다양한 음식을 먹어온 우리이지만, 잊을 수 없는 한 끼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는 소설가 박완서부터 요리사 박찬일까지 다채로운 직업을 가지고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과 그 밥에 얽힌 이야기들을 담아내었다.
책을 읽다보면 글쓴이마다 기억에 남는 음식은 모두 다르지만 대다수의 글쓴이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그래도 ‘어머니가 해주신 밥’이
최고라는 것이다. 비싼 고급 재료만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지만 어머니가 차려주신 식사, 소위 ‘엄마
밥’은 뭔가 분명히 다르다. 물론 오랫동안 먹어와서 내 입맛에
익숙하기에 어머니께서 해주신 밥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도 맞는 말이다. 햐지만
그냥 많이 먹어서 익숙해진 것이라고 말하기엔 그 안에 담긴 것들이 너무 많다. 자식을 아끼는 마음, 건강하게 잘 챙겨먹기를 바라는 마음, 밥 먹을 때만이라도 얼굴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 그 마음과 정성이 있기에 우리는 아무리 산해진미를 맛보고, 비싼 식당에서 고급 음식을 먹더라도 결국 돌고돌아 집밥을 찾게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은 참 많다. 그 중에서도 두 가지 정도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엄마의 김치찌개이다. 사실 김치찌개는 참 평범한 음식이다. 들어가는 재료도 집마다 거의 비슷하고 국물을 내는 방식도 거기서 거기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서울에서만 머물다가 본가로 돌아갔을 때 나는 가장 먼저 엄마의 김치찌개를 찾게 된다. 서울에도
김치찌개는 많다. 심지어 엄마가 해준 김치찌개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고 맛있는 김치찌개도 많다. 그러나 나에게는 엄마의 김치찌개가 최고인 것 같다. 나트륨이 많아
짠 국물은 적게 주고 딸이 좋아하는 돼지고기 건더기와 김치를 가득 담아 내어주는 한 그릇. 그 안에
엄마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다 담겨있어서 나는 그저 꼭꼭 씹어 삼켜서 엄마의 따뜻한 마음을 내 몸 속 곳곳으로 전하면 된다. 가끔 본가로 내려갈 시간이 없지만 엄마의 김치찌개가 그리울 때 엄마에게 전화를 걸면, 그날 엄마가 미리 한솥 끓여둔 김치찌개를 1인분씩 포장에서 꽝꽝
얼려서 그 다음날 택배로 부쳐주신다. 엄마의 사랑이 가득 담긴 김치찌개를 서울에서 맛보는 기쁨이란, 엄마와 같이 먹는 것만은 못해도 힘든 서울살이를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
두 번째는 마라탕이다. 나는 마라탕 메이트가 있다. 나에게 마라탕을 고등학교 때 전수해준 스승님인데 같이 상경을 하게 되어 마라탕이 먹고 싶은 날에는 늘 서로를
찾는다. 나에게 마라탕은 신선함이면서도 학창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음식이다. 고등학교 내신 시험이 끝나고 나의 마라탕 메이트와 다른 친구들 몇이 모여서 몰래 마라탕을 시켜먹기로 했었다. 당시 우리 학교는 배달 음식을 금지했기에 우리는 학생들이 다 떠난 교실 중에서도 선생님들이 절대 방문하지 않으실
것 같은 곳을 찾아서 마라탕을 먹기로 했다. 무사히 마라탕을 받고 뚜껑을 열고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학주 선생님이 벌컥 교실 문을 열었다. 우리는 순간 얼음이 되었고, 그
이후 선생님의 폭풍 잔소리가 이어졌다. 물론 혼나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때 규율을 어겨가며
시켜먹은 마라탕은 답답했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의 작은 일탈로서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어주었고 그때의
그 해방감을 잊지 못해 나는 아직까지도 마라탕을 좋아하고 있다.
모두에게도
나처럼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서 자신만의 밥 한 그릇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예전 추억들도 새록새록 생각나서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이 더 많아질 수 있도록, 좋은 사람들과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더욱 행복한 삶을 가꾸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