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히는 반전, 정의란 무엇인가

법정유희
이가라시 리쓰토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4년 3월

한동안 추리 소설을 읽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술술 잘 읽히는 책을 읽고 싶어서 결국 추리 소설을 몇 번 더 읽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매번 비슷한 살인 사건과 탐정의 등장에 다시 한 번 지루함을 느끼던 때에 ‘법정유희’를 읽어볼 기회가 주어졌다.
법정유희는 로스쿨을 배경으로 하는 1부와 주인공이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2부로 구성되어있다. 주인공 구가 기요요시가 재학하고 있는 호토대학교 법학과는 독특한 학생들만의 문화가 있다. 그것은 바로 ‘무고 게임’이다. 무고게임은 일종의 모의법정으로, 억울한 일이 있거나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학생들끼리 판결을 내리고 처벌하는 것이다. 이때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은 유키 가오루로, 그도 호토대학교 법학과 소속의 학생이다. 가오루는 굉장히 뛰어난 학생으로, 모든 교수님들이 그가 호토대학교 법학과에 왜 왔는지 의아해할 정도이다. 그는 과묵하지만 매우 똑똑하고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 그는 자원해서 무고 게임의 심판자가 되었고 다른 학생들도 가오루가 심판자가 되는 것에 이견이 없었다.
무고 게임은 심판자와 고소인, 방관인이 함께 진행한다. 구가는 늘 방관인의 위치에서 무고 게임을 보던 입장이었으나 어느날 누군가가 그의 열람실 자리에 그의 과거 보육원 시절의 사진을 올려두고 ‘과거 저지른 죄를 가지고 법조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메시지를 남겨둔다. 결국 구가는 무고 게임에서 범인을 밝히는데 성공하지만, 이상한 일은 계속된다. 그와 보육원을 함께 나온 오리모토 미레이의 집에 누가 송곳을 끼워두거나 우편함에 협박장을 넣어두는 일이 발생한다. 결국 구가는 가오루의 도움을 받아 아랫집 사람이 그녀를 도청하면서 이런 짓들을 했음을 알아낸다. 떨떠름하지만 그래도 사건들이 해결되었다는 것에 안도할 즈음, 가오루는 더 이상 무고게임의 심판자로서 역할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결국 그 이후 한 번도 무고게임은 다시 열리지 않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변호사가 된 구가는 가오루의 메일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무고 게임을 한 번 더 열테니 와달라는 메일이었다. 그래서 모교의 모의 법정실을 찾아갔던 구가는 칼에 찔려 죽은 가오루와 칼을 손에 쥔 채 피범벅이 된 미레이를 발견한다. 미레이는 구가에게 자신의 변호사가 되어 자신의 무죄를 밝혀달라고 부탁하고 결국 일단 체포된다. 구가는 오랜 시간을 들여 최선을 다해 증거를 찾지만 미레이가 확실한 범인이라고 가리키는 증거들만 가득하다. 게다가 미레이는 당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당장 해줄 수 없다며 입을 닫는다. 결국 구가는 나름의 방식으로 진실에 다가가며, 어릴 때 미레이와 함께 성추행 당했다는 누명을 씌워 합의금을 뜯어내는 짓을 하다가 당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경찰관의 아들이 가오루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구가와 미레이가 로스쿨 시절 당했던 모든 일들이 가오루의 복수 계획의 일환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가오루는 그가 직접 그들을 심판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아버지가 겪은 부당한 일을 드러내고 아버지가 무죄임을 밝히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구가는 가오루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게 되면서 과거 저지른 죄를 반성하고 이에 대한 처벌을 받기로 결심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는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궁금했던 것 같다. 다양한 메시지를 작가님이 담고 싶어하셨다는 것이 느껴져서 법에 대해 관심이 많은 나도 생각이 많아졌다. 요즈음 어려운 책, 무거운 책을 읽는 게 힘들고 지쳤는데 오랜만에 책장이 너무 잘 넘어가는 재미있는 소설이어서 금방 읽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