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창.통 - 당신은 이 셋을 가졌는가?
이지훈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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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읽고나서 많이 실망했다. 여느 자기계발서와 다름이 없는 내용이었다. 특히 '혼'에 관한 내용에 동감할 수 없었다. '혼'의 내용은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달려간다고 해서 모두가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가슴을 울리는 목표조차 꿈꿀 수 조차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반대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가슴을 울리는 목표를 끝까지 밀고나가 성공한 예시를 보여주곤 한다. 슈퍼스타K2의 허각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허각과같이 비슷한 사람이 지금의 허각과 같이 유명한 가수가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마 복권에 당첨될 확률과 비슷할 것이다. 즉, 허각과 같은 사람이 존재하긴 하지만 누구나 허각과 가이 열심히 노력만 한다고 자신의 꿈을 이룰순 없을 거라는 얘기이다. 그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어렸을때부터 집안이 너무 어려워서 나도 취업전선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놓여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럼 그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을까? 

나는 어렸을때부터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교때 연극을 두번이나 했었고 그때마다 주연을 맡았었다. 무대에 설때마다 무척이나 떨리기도 했지만 그만큼 마치고 나면 희열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때 꿈이 자연스럽게 배우였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이 순간까지 공부를 해 왔다.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배우라는 직업이 매우 불안정해 보였기에 내가 공부를 해서 안정된 직업을 가지길 바랬던 것일 거다. 이런 현실적인 상황에 부딪혔을때 나는 배우의 꿈을 포기했다. 배우를 하면 자기만족은 되지만 그 길로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공부를 해서 성공할 수 있는 확률보다 너무나도 작기 때문이다.

사람들 모두 자신의 가슴을 뛰게하는 꿈을 향해 달려갈 수 맀지 않다. 더군다나 현실적인 문제가 개입되면 더욱 그렇다. 이 말에 이렇게 되물을 수도 있겠다. 내가 정말 하고싶은 일이라면 현실적인 문제쯤은 이겨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이 논리는 지금 반값등록금을 위해 시위하는 학생들에게 "너네가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타면되지 왜 시위를 하니? 시위할 시간에 가서 공부를 하렴."이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장학금을 받고 공부하고 싶다. 하지만 누구나 장학금을 받을 수는 없다. 모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대학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되면 장학금을 받기위해 아르바이트도 하나 안하고 앉아서 공부만 해야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도 큰 도박이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지만 안타깝게 장학금을 못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갑자기 400만원이라는 큰 돈을 대체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마찬가지로 내가 그냥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아빠가 많이 편찮으셔서 당장 내가 취업전선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우리집 전세값도 못 갚을 상황이라면, 그래도 마음편히 공부할 수 있을까?

모두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가 열심히 노력한 만큼 성과를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이상적인 사회일까? 그렇다면 내가 지금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똑같이 10시간을 노력해도 좋은 환경에서 10시간을 노력하는 것과 열악한 환경에서 10시간 노력하는 것의 결과가 완전히 다를 것이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일 것이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를 적어놓은 것 같다. 그래서 기업CEO들을 위한 자기계발서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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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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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Social Network Service)가 발달한 오늘날 외국인과 친구가 되는 일, 나아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교통수단이 발달하여 하루에 세계 일주를 할 수 있는 요즘,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보는 것도 더 이상 놀랄 일도 아니다. 이렇게 세계화가 되어가면서 외국인들과의 왕래가 점점 잦아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의 사고방식들도 점점 섞이고 있는 것 같다. 책에서 언급했던 서양적 사고의 산물인 '개인주의'와 '개인의 자유존중'등이 이미 우리나라에 자리를 잡고 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화되고 있는 모습이라던지, 아니면 조금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개인주의'가 심화되어 옆집에 살고 있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줄도 모른다던지. 마찬가지로 서양에서도 동양의 종교인 '불교'에 매력을 느끼고 스님이 되기 위해 동양의 나라로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 동양의 심신수련법인 '명상'에 흥미를 느끼고 서양에서도 명상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렇게 두 문화가 서로 섞이는 상황에서 서양의 사고방식과 동양의 사고방식에 대한 범주화가 굳이 필요할까?

흔히 우리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지만 그 경계는 정확히 어디일까? 어디까지가 동양이고 어디부터가 서양일까? 그 경계조차 사실 명확하지 않다. 터키는 동양일까 서양일까? 중동은 동양일까 서양일까? 러시아는 동양일까 서양일까? 이런 질문들을 던지다보면 동양과 서양이라는 말 자체가 명확하지 않은 말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동양, 서양의 의미로 이 책을 이해한다고 해도 이 책의 작가가 범주화시킨 '동양'의 특징을 잡아내기 위해 예로든 나라들은 동양을 다 대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책의 작가는 동양이라는 나라들이 모두 '중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중국이 일본과 한국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만큼이나 동양에 큰 영향을 끼친 나라가 있다. 바로 인도다. 중국에서 4대문명 중 하나가 일어난 것처럼 인도에서도 4대문명 중 하나가 일어났다. 또, 인도는 동양의 종교인 '불교'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인도는 동양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책에는 인도에 관한 언급자체가 없다.

그렇다면 작가가 언급한 동양은 동양적 특성을 지니고 있을까? 나는 이 점에서도 의구심이 들었다. 작가는 책에서 동양인들이 모순과 논쟁을 회피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붕당정치나 중국의 제자백가만 봐도 그 말이 나는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붕당정치는 서로 논쟁을 통해서 더 나은 방식으로 나라를 이끌어 가자는데 목적이 있었다. 또, 제자백가는 논쟁을 통해 학문을 더 깊이 알아가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 이것만 보아도 동양 사람들이 논쟁을 회피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또, 작가는 동양이 인간의 관계 속에서 조화를 추구한다고 했다. 하지만 동양은 왕따 문화가 예전부터 존재해 왔다. 일본의 이지메문화는 유명하니 더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고 우리나라도 왕따 문화가 예전에도 있었다. 정말 동양인들이 인간의 관계 속에서 조화를 추구한다면 왕따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어야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흔히 쓰는 동양과 서양, 이 말부터 매우 모호한 말이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동양이고 어디부터가 서양이란 말인가? 세계지도를 갖다 주고 선으로 나눠보라면 나눌 수 있을까? 게다가 점점 세계화가 되어가고 있는 요즘 이렇게 나누는 것이 더 이상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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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문지아이들 80
이윤학 지음, 전종문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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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란 무엇일까?
누구나 한번쯤은 정들었던 사람과 이별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사를 가거나 전학을 가거나, 아니면 새로운 곳에 입학을 하면서 말이다. 이 책은 정든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아이의 이야기다.
이 책의 주인공은 나와 닮은 점이 있다. 나도 어렸을 적부터 전학을 무척 많이 다녔다. 그러다보니 사교성이 매우 좋아졌다. 하지만 여기 주인공은 반대다. 처음 전학 갈 때 정든 친구와 헤어질 때, 그 슬픔이 두려워서 다시는 친구를 사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아이들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얼굴에 미소띄울 날이 없다. 그런데도 엄마는 요즘 힘드냐는 말 한마디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괌으로 출장을 가게되어 다시 전학을 가게 되고, 거기에서 일명 짱인 짱가에게 찍혀버려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낸다. 집에서는 엄마와 오빠가 둘다 바빠서 주인공인 미나의 말을 들어줄 시간이 없다.
하지만 미나는 학교 뒷편 언덕에 사는 할머니와 마음이 통해서 그 할머니에게만 마음을 털어 놓난다. 결국은 짱가는 미나를 괴롭히는게 선생님에게 들키게 되고, 혼나는 과정에서 미나가 짱가의 편을 들어 모두 잘 지내게 된다. 하지만 미나가 마음을 털어놓은 그 할머니는 멀리 떠나게 된다. 나는 전학을 계속 다니는데에 대한 미나의 처우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물론 미나도 나중에 그것을 깨닫는다. 사람은 언젠가는 이별을 하게 된다. 그것이 두려워서 피하면 안된다. 나는 마지막에 할머니가 미나를 떠난게 오히려 미나에겐 잘된 일인 것 같다. 할머니가 떠나면서 미나는 이별을 배운 것 같다. 정든 사람과 이별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만은 안된다는 걸.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장가와 미나가 화해를 하게 된 계기를 선생님이 만들어줬다는 점이다. 이 일을 그냥 미나와 짱가 스스로 해결을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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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김호영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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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쩌면 한명도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이런면에서 난 까이유가 부럽다

 

비록 얼굴이 시도때도없이 빨개지지만 그것을 다 이해해줄수 있는 친구가 있으니 말이다

 

몇일전에 친한친구랑 싸웠던일이 후회된다

 

좀더 잘 지냈더라면 정말 서로를 잘 알아주는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친구였는데

 

이런 친구한명이라면 몇백명의 친구를 대신 할거다.

 

친구야 다시 원래대로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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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S. E. 힌턴 지음, 신소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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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그대로 이 내용은 아웃사이더들에 관한 내용이다.

아웃사이더(outsider)를 풀이해 보면 바깥사람들이란 뜻이다.

즉, 소외된 사람들이란 뜻이다.

여기나온 애들은 정밀로 소외된 애들이다.

사회에서 소외된 애들부터 집에서까지 쇠외된 애들도 있다.

가정에서 소외된 애들은 부모로 부터 쇠외된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의 부모는 애들이 밖에서 다치고 와도 모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관심이 없다.

이런 아이들은 자신들을 그리저라고 부른다.

이런아이들과 상반되게 상류층아이들이 나온다.

그리저들은 이들을 소셜이라고 부른다.

이런 소셜이 상류층이라고 해서 문제를 안일으키는건 아니다.

문제를 일으켜도 당한자가 그리저일땐 암암리에 뭍혀버린다.

정작 그리저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대단한 일인것처럼 난리를 치면서 말이다.

이렇게 두 분류는 차이가 없다.

사춘기의 청소년들이라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고 느끼는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두 분류는 서로를 매우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유는 어른들이 그어놓은 선 때문이다.

소셜은 돈많은 집에 깨끗한 옷차림을 하고다니는 아이들이라 정의하며 이런 운좋은 아이들을 감싸돌고,

그리저는 긴 염색머리에 건들거리는 걸음거리와 집에 돈이없는 운나쁜 어린이라 정의하며 무시한다.

이렇게 어른들이 그어놓은 선때문에 서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셜들의 콧대는 더욱 높아진다.

어른들이 그어놓은 선에 의하면 그들은 아주 보잘것없고 친구라고 여길 가치도 없는 인간 쓰레기이다.

소셜들은 그래서 그리저들을 보기만 하면 무작정 죽이려고 덤벼든다.

이런 소셜들을 보고 그리저들은 '원래 저런 족속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서로 담을 쌓아가다가 우연히 소셜과 그리저들이 만남을 갖게될 상황을 맞이한다.

이 상황에서 그리저중 어린 한 아이가 놀란 나머지 자신의 친구를 괴롭힌 소셜을 죽인다.

그래서 두 그리저는 도망을 가게된다.

그런데 거기에서 불난집에서 아이들을 구해내고 영웅이 된다.

이 행동을 보고 그제야 소셜들은 그리저가 단순히 인간 쓰레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낸다.

그리고 나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아무리 서로를 이해해도 어른들에겐 언제까지나 그리저는 그리저이고 소셜은 소셜이겠지만

아이들의 기준은 변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소셜과 그리저는 상상에 불과한 것을 안다.

난 이 책을 읽고 느꼈다.

그리저들중에서도 이런 쿨한 아이들이 있구나 하는 것을

그리저들의 눈물겹도록 진한 우정, 자신들에게 비난만 하던 다수를 위한 희생.

가진것은 없지만 베풀줄 아는 아이들이 정말로 멋진 아이들이 아닐까?

소외된 아이들에대한 고정관념을 명쾌하게 깨뜨려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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