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변의 창 - 피의 노래
박성신 지음 / 북오션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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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다. 우리가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흔히 먼저 작동하는 감각은 시각이고, 이 시각이 제일 먼저 향하는 것은 타인의 얼굴이다. 얼굴 생김새에 따라 호감과 비호감의 편견적 인상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작용한다는 것은 세상의 야비한 진실이다.

() 역시 마찬가지다. 배려 깊은 사고에 기대어 나오는 한 마디 말이 타인을 흔드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의 넘치는 수다는 본의든 본의 아니든 상처를 주기도 한다. 한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 입을 통하여 나오는 것이 말이기에 이 말 역시도 그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 주는 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여기 날 때부터 정체성을 상실한 불행한 아이가 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얼굴에 자기 목소리 대신 흉내의 모성으로만 인정받는 아이인데, 사실 그 인정이란 것도 황선 본인이 아닌 황선이 흉내내는 대상을 향한 것이다(사람들은 황선이 흉내내는 소녀의 목소리에 홀리어 사냥꾼에게 죽임당하고 들짐승은 황선이 아닌 포식자 짐승의 목소리에 도망을 친다). 정체성을 상실한 아이니만큼 그가 세상으로부터 받는 것은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이 아닌 차가운 미움과 괴롭힘이다. 살고자 태어난 생명이 죽어야만 갈 수 있는 지옥을 현실에서 맞닥뜨리게 된다.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그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저주를 안은 채 세상에 태어난 아이이기 때문이다. 저주를 짊어진 아이에게 가하는 세상의 폭력은 무자비하다. 친할머니는 어린 황선을 사냥꾼에게 넘기고, 사냥꾼은 실컷 부려먹고 굶기고, 남사당패와 마을사람들은 집단으로 괴롭히고, 아이의 운명을 알고있던 대사는 아이를 구제하는 대신 동반자살을 꾀하고, 유일하게 아이를 구제할 선의 희망으로 보였던 이수는 결정적인 순간 아이를 버리고 한양으로 간다. 이 하나하나를 디테일하게 묘사하면 그 가혹함에 책장을 덮을 지경이겠지만 박성신 작가는 영리하게 폭력의 순간을 최소화하고 대신 몬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복수극을 완성해낸다. 지독한 불운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억압당한 잠재력을 발산한 후 입지를 다져 하나하나 복수를 완성하는 스토리야말로 소설이 줄 수 있는 카타르시스의 백미가 아니겠는가. 황선의 억압된 잠재력은 추한 얼굴을 대신할 초능력처럼 일반 사람들의 능력을 초월한다.

이를테면 황선은 남들처럼 정상적인 이목구비를 갖추지 못했지만 목소리의 떨림과 심장박동으로 거짓과 참을 가려내고(77), 귀로 정확히 듣고 소리를 내니 어느새 동물들을 부릴 줄 알게 되는 신비한 재주를(83) 자랑한다. 그는 이 청각과 소리의 능력으로 국왕에게까지 접근할 위치를 점유하며 세상을 향한 복수를 이뤄나간다.

 

하지만 소설이 주는 분위기는 내내 어둡고 불길하다. 웰메이드한 작품으로 완성되었음에도 컬트무비같은 인상을 주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악밖에 남은 것이 없는 어느 악한의 인정사정없는 투쟁기.

 

여인의 얼굴을 난자하는 동일범적 가해방식은 유명한 잭 더 리퍼를 연상시킨다. 내가 이 흥미로운 소재를 소설로 썼더라면 나는 확실하게 그 방법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왕의 남자>의 추억마저 상기시키는 황선과 이수의 애증관계는 흥미롭다. 이수를 향한 황선의 모습에선 거의 동성애적인 감정마저 느껴지는데 이 같은 심리를 조금 더 살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악밖에 남지 않은 인간에게서 진창 속의 한 송이 꽃 같은 면모를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불행한 삶에 끼어들어 처음으로 이름과 관심을 한꺼번에 준 남자에게 품은 연정을 그 남자의 연인인 연홍과의 삼각관계 서스펜스로 살렸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운명을 거부한 징벌로 황선이 살았던 환경이 지옥이었듯, 구박과 폭력과 어둠과 따돌림과 속임수에서 살아온 밑바닥 존재가 유일하게 기댔던 우정마저 배신당했음을 깨달을 때 세상에 더 이상 아름다운 시선을 갖지 못함은 당연한다. 자신이 당한 것처럼 폭력과 죽음, 무자비로 응수할 뿐이다. 그것이 천국 따윈 없는 지옥에서 살아나가는 최선의 방식이리라.

 

책에 관한 정보가 없었을 때 내가 예상했던 <살변의 창>은 여성적 성향을 타고 태어난 남성이 성전환에 실패한 나머지 아름다운 여성들을 질투로 살해하는 연쇄 살인마 스토리였다. 얼굴만 난도질했다는 작은 힌트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고, 다리오 아르젠토(Dario Argento) 감독의 7,80년대 지알로 무비를 워낙 좋아하기에 그런 그림을 그려봤는지도 모르겠다(한국 고전미 넘치는 건축 양식 아래 검은 가죽장갑 대신 검은 끈으로 칭칭 감은 살인마의 손이 수시로 보여 지는 그런 장면! 오 마이 갓!).

하지만 직접 읽은 <살변의 창>은 그보다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있고 사건의 한 순간이 아닌 일대기에 가까운 기인의 광행(狂行)을 다룬다. 뚜껑을 열어보니 추한 얼굴보다 더 추한 현실이 그려진다. 거침없이 나아가고 해치워야 할 때 주저하지 않는다. 동정이 없고 연민은 파괴당한 추남 황선(남학)의 얼굴에 남은 건 오직 복수와 파멸의 의욕뿐이다. 외모가 정상이었다면 그의 미래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살변의 창>은 유려하고 파격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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