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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맨션 1 토성 맨션 1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 오지은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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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뗄 수가 없다. 빨려들어간다.

"살짝 보인 풍경이 잊혀지지 않아. 진짜 하늘과 땅."

"인간은 왜 지상에서 3,500미터밖에 못 떨어졌다고 생각해?


분명, 그보다 더 떨어지긴 아쉬웠던 거야."


"우리가 이 이상 떨어질 수 없었던 하늘과 지상을 한번에 볼 수 있잖아. 상층에서도, 중간층에서도 불가능한 사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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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6일이었던가  7일이었던가, 기다리던 '토성 맨션'을 택배로 받았습니다. 의외로 가벼운 부피에, 약간은 의아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한 며칠, 책에 때가 타는 것이 싫어서 포장조차 뜯지 않고 있다가, 읽고 싶은 책을 바로 눈앞에 두고도 오래 참을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서 마침내 뜯어서 읽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왼손잡이였기 때문이었을까요? 책의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이 트인 제책 방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금은 오른손을 쓰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왼손을 쓰는 것이 편할 때가 정말로 많거든요.

부드러운 듯 까칠한 듯, 독특하고 톡톡한 촉감이 돋보이는 표지에 감싸여, 모노톤으로 표현된 책장 한 장 한 장이 정말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스크린톤, 그것도 검은 계열의 색밖에 쓰지 않은 화면에 그려진 상황이, 어찌 그리도 생생할 수 있었을까요. 내심, 놀라웠습니다.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은 -지구 전체가 환경 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시기의-미래의 지구.

아니, 정확히는 지구 위의 고리형 인공 구조물.

 

마치 지상에서의 사회구조를 그대로 상중하로 형상화해 놓은 듯한 그 링에서 벌어지는 드라마.

 

이 작품을 요약하면, 아마 저런 문구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지상에 발을 딛고, 태양광을 받으며 살고 있는 것-을 감히 누리지 못하게 된, 길가에 피어난 꽃조차도 국가 관리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고 냄새가 물씬 나는 어딘가 안타깝고 어딘가 처절한 이야기.

 

비록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가고는 있지만, 저는 이 작품에서 어쩐지 '처절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하층'에 살고 있는 하층민들의 팍팍한 삶

그리고, 그 '하층민'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자 했던 연구자

아직은 남아 있는 인간미

거주 지역을 막론하고, 이제는 갈 수 없는 땅이 되어 버린 지구를 향한 동경

 

 

형태도, 표현 방식도 다르지만 등장 인물 각자에게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확, 풍겨왔습니다.

일종의 산업 재해로 인해 행방불명된-아마도 불귀의 객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는- 주인공 소년의 아버지와 그 소년의 아버지가 속해 있던 조합 사람들이 무심한 듯 빚어낸, 그리고 그래서 더 절절한 배려와 삶

 

그 삶의 이야기가 주인공 소년의 마음과 겹쳐지면서 '잔잔하고 따뜻하지만 상당히 불편한 성장기'라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이네요.

주인공 소년이, 자기 아버지에 대해 서서히 오해를 풀고 알아가는 과정

또, 자신이 맡게 된 일의 의미를 나름대로 정립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쩌면 지금 이 사회에서도 자행되고 있을 부조리와 불평등을 조용히 대변해 주는 듯해서 그저 소년이 성장해 나가는 것만을 보며 기뻐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치, 어린 날 즐겁게 보았던 애니메이션 '개구리 왕눈이'를 그래도 법적으로 성인이 되고 나서 다시 틀어 보았을 때 상당히 불편했던 것처럼, 그렇게요.

 

담담한 생활 속 에피소드를 그려내고 있긴 하지만, 무심히 지나가는 낱말들 속에서 현재의 인간에게 하는 경고가 묻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불편했던가 봅니다. 작품에서 나오는 '저면역증', '창문닦이' 같은 말들은, 다른 부분을 본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상과 별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본문 속에 꽤나 자주 등장해서, 이들이 현재 '직사광선'을 제대로 받지 못해 문제를 겪고 있고, 또 그 문제라는 것이 특히나 하층에 사는 저소득층(?)에게서 더 자주 발생한다는 점을 인식시켜 주기에, 이 작품이 단순한 판타지 드라마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인간이 지금 자행하고 있는 파괴를 멈추지 않으면, 생활고는 그대로 가지고 지구 위에 올라가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심어 주는 작품입니다.

 

"이 이상 떨어질 수 없었던 지상"

 

작품에서 그려진 지구는 그리도 아름답건만,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지상은 그렇지 못하죠.

시종일관, 지상을 보는 순간 눈을 빼앗길 만큼 아름다운 곳으로 묘사하면서

작가는 조금이라도 더 지구가 깨끗하고 아름다워졌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인상 깊은 장면들이 너무나 많아서 그 장면들을 다 맛보여 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줄거리가 있는 미디어 작품의 경우엔 '네타'를 당하느냐 안 당하느냐에 따라 작품에 대한 관심도가 달라지는 수가 많아서, 또 그 장면들이 중요한 장면들이어서 다 소개해 드리지 못하네요. 다만, 호평을 하면서도 굳이 별을 하나 뺀 이유는 '너무나 해석 위주로 번역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해석이야 직독직해가 중요하지만, 번역의 경우엔 한 나라의 언어를 다른 나라의 언어로 충실하게 옮겨오는 것일진대, 번역판을 읽을 독자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어순이 아닌 원전의 어순을 따르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이 '번역'이 아니라 '해석'을 거쳐 나온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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