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선택한 완벽한 삶
카밀 파간 지음, 공민희 옮김 / 달의시간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 어디에 암이 있는지는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죽어가고 있다는 거다. 이 말을 폴에게 한다면, 폴은 우리는 모두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겠지. 하지만 내가 말했듯, 난 아직 폴에게 핵폭탄급 선언을 할 준비가 되지 않았고 그건 그의 정신적인 안녕뿐 아니라 나의 안녕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리기 전에 척박한 사막과도 같은 내 정신을 가다듬을 며칠이 필요하다. ”

“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문제는 존엄성이에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항암 치료를 하면서 낭비하는 대신 자연의 순리대로 흐를 수 있도록 내 권리를 위해 싸우는 중이라고요 .”

“ 난 비행기 사고와 하이킹을 갔을 때 트럭에 치일 뻔한 일을 떠올렸다. 암을 제외하고 이것들이 내가 짧고 특별하지 않은 삶을 살 팔자라는 걸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

" 죽음 " 이라는 다소 불운한 두 자에 제목이 들어가는 바람에 깜빡 속을 뻔 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소재로 한 무겁고도 진지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재치넘치고 매우 재미있는 이 책은 동시에 인생에 대한 통렬한 가르침을 일깨워준다. 암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도 이렇게 재미있고 신선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스토리를 간략 정리하자면, 한 여성이 그녀의 인생에서 최악의 하루를 겪게 된다. 의사에게서 사형 선고를 받게 되고 ( 치료가 어려운 말기암 선고 6개월의 시한부 인생 ) 그래서 불안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남편에게 위안을 얻고자 집으로 달려갔더니, 사랑하는 남편이 자신에게 폭탄선언을 한다.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다시 발견했다고, 즉 남편은 게이였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생애 최악의 소식을 들은 여성이 겪어내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다소 슬프거나 무겁거나 아니면 우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완전 반대였다. 주인공 리비는 자신에게 주어진 얼마 남지 않은 삶 ( 6개월 시한부 인생 ) 때문에 좌절하고 지난 날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삶을 사는 대신에 그녀는 암 치료를 하느라 남은 나날을 흘려보내기 보다는 우아하게 나머지 삶을 보내기도 한다.

그녀는 모든 것을 참고 수용하기만 한 지난날의 자신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서, 악독한 상사와 스트레스가 기다리고 있는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에게 폭탄선언을 한 남편에게 이별선언을 하고, 집을 판뒤, 따뜻한 태양의 나라 푸에르토 리코로 홀로 긴 여행을 가게 된다. 6개월 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녀가, 치료를 받지 않고 이런 무모한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그녀가 아이였을 때 그녀 어머니가 암 치료를 받으며 말라 죽어가는 것을 지켜봤었기 때문이었다. ( 화학치료를 받거나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 머리가 빠지거나 심한 두통 그리고 탈모 현상이 생긴다 ) 얼마 남지 않은 생을 고생하면서 보내는 것은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한 주인공. 나도 역시 그녀와 같은 입장에 처하면 ( 다른 가족들 때문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 남은 나날들을 즐겁게 보내는 것을 택할 것 같다.

그녀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질병으로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 건강 상태에 대해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푸에르토 리코에서 만난 몇몇 낯선 사람들에게만 암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조차 심각하지 않고 조금 코믹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비록 얼마 남지 않은 짧은 기간이긴 하나 훈훈한 남자와 가볍지만 뜨거운 연애까지 할 수 있으니,,, 짧은 삶치고는 괜찮은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밀 파간이 창조한 캐릭터들은 각각 독특하고, 재치넘치고 호감이 간다. 그녀는 매우 유머러스하고 재치있게 글을 잘 써서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박장대소를 했고 또 읽다가 자주 킥킥대기도 했다. 사실 그녀가 암에 걸려있고 치명적인 상태라서 때때로 어두운 면이 있는 소설이긴 하나 그래도 여전히 재미있고 사람을 웃겨주는 소설이다. 예를 들자면 휴가지에서 기절한 그녀 앞에 티팬티만 입은 할아버지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다든지 하는 그런 에피소드가 허다하다. 엄마에 대한 회상 등으로 진지하게 끌고 가다가도 갑자기 엉뚱한 상황으로 이끄는? 그런 엉뚱한 소설이다.

이 책은 어둡거나 음침한 내용이라기 보다는 재치 넘치고 유머가 가득하지만 가슴 아픈 사연이 또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어른이 되어서 처음으로 암으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신 엄마의 묘지를 찾는다. 그리고 자신의 상태를 전혀 모르고 있던 아버지에게 자신의 위중한 병을 알리는데, 이 두 장면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슬펐고 가슴도 찡했던 부분이었던 것 같다. 독자들의 여러 감정의 단추 – 즐거움, 슬픔, 분노, 희망 – 등등을 적시적소에 잘 눌러주는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이 암환자가 많나? 싶을 정도로 좌충우돌의 휴가를 보내는 리비.... 과연 리비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질병 이야기가 결코 어둡거나 불운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명쾌하게 보여준 소설 [ 죽음 앞에서 선택한 완벽한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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