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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에 반대한다 - 인간, 생태, 지구를 생각하는 세계 지성 55인의 반성과 통찰
존 저잔 지음, 정승현.김상우 옮김 / 와이즈북 / 2009년 5월
평점 :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거나 정치적 음모설에 빠져있거나 빈부격차나 제3세계의 인권문제에 할말이 있거나 또는 밀양송전탑이나 원자력 발전소, 사대강의 보나 댐, 이런 것들이 환경을 해친다는 이유로 촛불을 들거나 행진에 나서거나 댓 글을 단다거나 토론에 참여한다거나 해본 적은 없지만 그런 일에 평생을 바쳐 일하거나 작은 범위의 적극성이라도 보이는 삶들은 존중 받을만하다고 생각된다. 사회는 언젠가부터 그런 사람들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흐름으로 번져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생각으로만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것도 술이라도 한잔 들어가야 핏대를 세울 수 있는 소시민이지만 이 책의 각 주제에 대하여 자기 주장을 편 사람들은 그런 환경문제나 사회의 불평등문제, 국가간이 불균등 문제 등에 한정하지 않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그런 모든 문제의 근원은 인간이 문명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며 지금은 그런 통제의 범위를 벗어나 인간이 문명의 발아래 종속되는가 아닌가를 논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문명이란 것이 이기(利器)라고만 배워온 나에게는 이들의 주장에서 새로운 느낌을 받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문명자체를 없애자는 극단주의자로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고 이규태 주간(主幹)이 ‘우리의 집 이야기’에서 그렸던 풍경 정도의 문명. 그런 정도에서 멈추면 안될까 하는 생각이 크다. 그는 책에서 과거 레비스트로스 Claude Levi Strauss가 1970년대에 내한하여 우리네 시골풍경을 보았을 때 자기네 문명과는 다르게 우리의 집에 굴뚝이 없는 것을 의아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면서 전기(前記)한대로 종선, 횡선의 이미지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 글에서 저자는 우리의 예전 풍경을 낮은 처마에 가려져 있는, 그것도 집의 북쪽에 소담하게 자리잡은 굴뚝으로 연기가 피어 오르면 그 연기마저도 하늘로 곧장 오르지 않고 집의 처마를 감싸고 지상으로 은은히 퍼져나가게 했다는 지상지향적 굴뚝문화로 말하고 있다. 그 풍경은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에 나오는 풍경 같기도 하다. 요즘 우리 주변에도 도심을 떠나 귀농이라던가 귀향을 하여 문명의 제도를 벗어나려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미디어에 소개되고는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비록 피켓을 들거나 촛불을 들고, 또는 과감하고 극단적인 모습으로 폭탄을 들고 댐을 폭파하려는 사람들과 같이 동참하지는 못하더라도, 위로 더 위로, 크게 더 크게를 외치는 문명에 길들여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신선함을 주는 일탈로 비쳐지지 않고, 미래의 문명이 인간을 지배하는 일에 제동을 걸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선구자로 비쳐지길 바란다.
슬픈 일이지만, 무능하거나 주저하며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예컨대, 1933년에서 1945년까지 독일의 히틀러에 대한 저항운동가들 역시 모두가 알고 있는 무분별함을 드러낸다. …… 이런 무분별함은 용기 부족이 아니라 잘못된 도덕관념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예를 들면 칼 괴르델러 Karl Goerdeler (히틀러 정부시절 물가통제위원으로 반 히틀러 운동을 주도했다. 히틀러 암살계획에도 가담하지만 실패하고 1945년 5월 처형당했다.)는 품격 있는 새 정부를 수립하는 일에 헌신했지만 히틀러의 암살에는 완고히 반대했다. 둘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만 히틀러가 자신의 말을 들어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이러한 무분별함에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진정한 희망과 거짓 희망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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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에 반대한다. `와이즈북 2009 행동은 말보다 강하다. 데릭 젠슨(미국 환경운동가 겸 무정부-원시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