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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브레인 - 수전 그린필드가 들려주는 뇌과학의 신비 ㅣ 사이언스 마스터스 6
수전 그린필드 지음, 박경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11월
평점 :
기억이나 운동에 각각 하나의 실행 중추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골상학의 머리뼈 융기와 대동소이하다. 또 정신과학이나 도덕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최상위의 초자아 개념에 상응하는 형이하학적 구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작동을 지시하는 소형 슈퍼 뇌는 뇌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휴먼 브레인. 1장 뇌 안의 뇌/32)
어제인가 “미국의 MIT연구진들이 주의 뇌에 가짜 기억을 심는 실험에 성공했다” 밝혔다는 뉴스가 있었다. 마치 대단한 SF영화의 시나리오를 예고하는 듯한 반응들을 기대한듯한 뉘앙스를 엿보인다. 하지만 엊그제 읽은 책에 비슷한 내용이 있었던 것이 내 기억에 있다. 외과의사인 펜필드Wilder Penfield는 1900년대 중반에 캐나다에서 뇌의 표면이 드러난 상태에서 환자의 여러 피질 부위를 전기로 자극한 후 환자가 무엇을 경험했는지 말하게 하는 기억의 저장에 관해 조사했다
“기억이 단순히 저장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하는 펜필드Wilder Penfield의 임상 실험 결과도 레슐리Karl Lashley의 동물 실험 결과를 뒷받침한다. 즉 기억은 뇌에 직접 쌓이지 않는다. 펜필드의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기억이란 일련의 몽롱한 꿈에 가깝다. 따라서 기억 자체는 비디오 테이프에 저장된 고도로 정확한 기억이 아니며, 컴퓨터 메모리와는 전혀 다르다는 문제 에 봉착하게 된다. 또 다른 문제는 펜필드가 동일 부위를 자극해도 매번 다른 기억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 펜필드의 실험 결과로 미루어, 기억은 중복된 신경회로들과 어떤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신경세포가 서로 다른 수많은 신경회로의 일원일 수 있다. 즉 신경회로 사이의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신경세포의 구체적인 조합일 것이다. 각 회로마다 한 가지 기악 현상에 기여하기 때문에 한 신경세포나 한 가지 목적을 가진 신경세포 집단만이 기억의 전체과정을 담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억은 분산되어 있다. (5장 마음의 주춧돌/ 204~205) –
이렇게 보면 MIT의 실험결과는 비록 쥐에 대한 실험이기에 펜필드가 실험한 인체와의 결과와 비교하거나 진전이 있는 것이다라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전환점이 될 수는 있다는 것일까? 이렇게 확실히 결정되지 않은 과학자들의 실험결과를 밝히는 과정과 목적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실험의 동기는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결과는 동기보다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SF 시나리오일 것 같다. 그린필드의 책에서 느낀 기억의 저장과 작용에 관한 그림은 마치 거대한 우주를 연상하게 한다. 사람의 뇌에는 약 천억 개의 신경세포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것을 연결하는 신경망은 성냥 머리만 한 뇌 조직 표면에만 10억개의 연결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뇌의 바깥 층인 피질에만 존재하는 신경세포들 사이의 연결을 1초에 하나씩 세려면 3,200만년이나 걸린다. 인류가 약 700만년전에 진화했음을 감안하면 인간이 진화하는데 걸린 시간보다 네 배 더 오래 세야 한다는 이야기다. 피질에서 신경세포 연결이 이루어지는 서로 다른 조합의 수만 계산해도 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양성자의 수를 넘어선다. (3장 흥분과 흥분파/133)
이렇다면 내가 생각하기에 그 세포들이 하는 일이란 인간이 겪게 되는 자극 하나하나가 각기 저장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각 개별 세포들이 저장한 기억들이 조합되어 나타나는 것이 기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어의적 기억 삽화적 기억 암묵적 기억 명시적 기억과 같은 여러 양상의 기억들이 행위에 존재하는 것 아닐까 한다. 또, 그 조합을 통해 꿈을 꾸고 환상을 통해 자아의 욕구를 만족해하기도 하는 것 아닐까? 사람이 잠을 자면서 꿈을 꾸는 REM수면상태에서는 꿈을 현실로 착각하는 행동을 지속시키려는 것 때문에 몸이 경직된다고 한다. (2장 시스템의 시스템/96) 그처럼 외부의 자극에 대한 기억을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불안감정을 해소하려는, 또 외로운 낯섦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시키려는 감정에 익숙해지고자 하는 욕망충족도 하려는 것 아닐까 한다. 사람이 만약 어디에선가 혼자인 채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면, 타잔의 환경과 로빈슨 크루소의 환경을 섞어 놓은 경우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그에게서 기억이란 어떤 의미로 작용하게 될까? 또는 사람에게 시각이 없다면? 청각이 없다면? 손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라면? 그런 상태에 혼자라면? 기억을 만들어내는 것이 환경이라는 현상이라면 결코 인간의 기억은 혼자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런 동기가 삶의 이유일 수 있다. 내 기억만을 위하여 타인에게 나쁜 기억을 주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
“멍게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움직이는 생물에는 뇌가 존재하고, 정착해서 살아가는 생물에게는 뇌가 필요 없다. 움직이는 동물은 끊임없이 바뀌는 환경과 접촉하기 때문에 뇌가 필요하다. 동물에게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즉시 알아차릴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며, 동시에 그 상황에 반응 할 수 있는 장치도 매우 중요하다.” (2장 시스템의 시스템/63)
그래서 나의 기억을 즐거움으로만 채우려는 노력은 희망일 뿐이지 실현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고 실제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고 보여진다. 아마 아무 곳도 가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으며 그저 주변의 환경에 적응하고 주변의 자극만 받아들이며 살 수 있다면 비록 기억은 암묵적 기억만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그에게는 자신만의 행복한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불행과 비교할 수 없는데 어찌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따라서 비록 고난과 불행으로 얽힌 삶일지라도 수백 만년간 이어져 온 인류 시간의 흐름에 있어서는 불필요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내가 세상을 버리고자 하여도 세상은 나를 품고 있기에 벗어날 수 없다. 한참을 머물던 의문이 지금 해결된듯한 생각 때문에 머리 속이 텅 빈 느낌이라 그 동안의 기억에 비하면 낯설기만 하고 어색하여 뭘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스쳐가는 환경의 자극이 나타나면 또 다른 화두가 내 머리 속을 채울지도 모른다. 그때 그 시간이 되면 처음 가는 여행길에서 새로운 터널을 만날 때처럼 외로운 낯섦이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나이가 많아지는 그 시기를 위하여 寒山詩를 외워 두고자 한다.
欲得安身處 寒山可長保 욕득안신처 한산가장보 = 몸 둘 곳을 찾으려는 욕망이 있다면 한산이 제일 보존하기 좋을 것이다.
微風吹幽松 近聽聲愈好 미풍취유송 근청성유호 = 가녀린 바람이 소나무를 안고 그윽하게 불어대고 가까이 들을수록 그 소리는 더욱 아름답다.
下有斑白人 喃喃讀黃老 하유반백인 남남독황로 = 소나무 그늘에서 머리카락이 반백인 노인이 황노를 소리 내어 읽고 있다.
十年歸不得 忘却來時道 십년귀부득 망각내시도 = 얻은 바 있어 십 년 동안이나 집에 돌아가지 않았으나 올 때의 길조차 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