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진화한다 - 자유의지의 진화를 통해 본 인간 의식의 비밀
대니얼 C. 데닛 지음, 이한음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상영했던어벤져스, 2012 The Avengers. 2012는 만화 속 영웅 캐릭터들의 장기자랑을 보여주는 것을 영화화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자유의지는 진화한다]라는 책 속의 내용 중에 법과대학원의 고전적인 수수께끼라는 사례를 영화 속 인물들을 모아서 임의대로 수정하여 상상해본다. -< 3장 결정론에 관한 생각 115P>

동면에서 깬 캡틴 아메리카‘S.H.E.I.L.D’라는 국제평화기구에 합류하게 되자 그를 좋아하게 된 블랙 위도우는 의 아이언 맨과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고, 그 사실을 질투한 아이언 맨캡틴 메리카가 다시 영원한 동면에 들게 하려고, 그의 장비 중 하나인 물통에 자신의 가슴에 박혀 있는 원자로에 쓰이는 방사능 물질을 몰래 넣었다. 그런데 그를 질투한 영웅은 아이언 맨뿐만이 아니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의 위치를 잃게 될 것을 두려워한 토르는 치사량의 오염물질이 섞인 그의 수통에 영원히 잠드는 시간의 모래를 잔뜩 채워 놓는다. 하지만 연인인 블랙위도우를 잃게 된 호크 아이도 그 수통에 화살로 구멍을 내 결국 서서히 그의 수통을 빈 것으로 만들고 만다. 이런 사정을 전혀 모르는 채 외계인의 침입을 막으려 출동한 캡틴 아메리카는 전투 중에 물을 마시려 하였으나 수통이 그 지경인 것을 알게 되었고, 오랜 동면에서 깬 그는 수분 부족으로 결국 사망하게 된다는 가상을 제시한다. 그리고는 묻는다. 이럴 경우 누가 그를 살해한 것인가라고…… 법률적으로 살인의 죄를 퍼센트로 나누게 될 때 현행 법으로 어느 누구에게 얼만큼의 죄가 있음을 나눌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결국 캡틴 아메리카는 죽을 운명이었는가 아닌가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개인의 인생에 어느, 무언가, 나 이외의 무엇이 개인의 삶에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개입할 수 없으며, 자신의 행위의 결과는 그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다고 해야 하는가 아닌가에 대한 질문이라고 봐야 한다,

 

딜레마. 어원은 그리스어의 di(두 번) lemma(제안 ·명제)의 합성어로, 진퇴양난 ·궁지라는 뜻이 있다는 딜레마.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이런 저런 동기와 목적을 가진 행위의 매 순간마다 펼쳐지는 상황과 그에 따르는 선택을 하는 것은 누구 또는 무엇에 의한 결과인가. 순전히 나의 결정에 의한 것인가, 트롤리 딜레마. 죄수의 딜레마 등등. 인간이 결코 의지가 강하거나 도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딜레마들.

책에는 (교착상태가 반드시 타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아무리 열심히 탐색하든 간에, 때로 한 사건의 은밀한 진정한 원인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잇다는 생각을 갖고 침착하게 대해야 한다. –3장 같은 부분)고 말한다.

 

<일부 사상가들은 결정론의 진실이 다음과 같은 낙심시키는 주장들 중 하나 이상을 의미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모든 추세들은 영구적이며, 성격은 대체로 불변이고, 사람이 자신의 방식이나 운명이나 미래의 기본 특성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 열린 미래를 지닌 존재가 되는 것과 닫힌 미래를 지닌 존재가 되는 것의 구분은 결정론과 전적으로 무관하다. (……) 고정된 즉 결정된 개인적 미래가 자신의 활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변화무쌍한 본성이라는 축복을 포함할 수도 있다. ‘고정된혹은 그렇지 않은 개인적 미래들의 전체집합은 역경에 맞선 승리, 약함에 따른 굴복, 성격 교정, 심지어 행운의 뒤바뀜을 담은 수긍할 만한 온갖 시나리오들을 포함한다. (……) 우리가 자신의 과거의 패턴을 반복할지 확실치 않은 미래 궤적을 지닌 부류인지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며, 결정론이라는 일반 주제는 그런 문제들과 전혀 관련이 없다. – 같은 책; 137P>

 

인간이 어떤 문제에 닥쳤을 때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것이 내부의 원인 때문이 아니라 외부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본능적 방어기제, 불안감으로부터의 회피를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그럼 왜 인간은 그런 갈등을 야기시키는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을까? 카렌 호나이Karen Horrney 현대인의 이상성격에는 불안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성향중의 하나이며 그것을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발현되는가에 따라 신경증적인가 아닌가가 된다고 말한다. (첫째로 모든 문화에서 삶의 조건은 어떤 두려움을 불러 일으킨다…….둘째로 주어진 문화에 존재하는 불안들은 어떤 방어장치 가령 의식이나 전통, 제도 등-에 의해 방어된다. 1장 신경증의 문화적. 심리학적 의미 27P) 그렇다면 인간이 갈등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결정론이든 그 반대의 의견에서든 갈등을 불러오는 그것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 조건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학문적인 이유로 이렇게 장황하게 주장하는 것에 별로 흥미로운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게 결정되어 있다는 것은 서양학자들의 의견인 듯하며-내가 그런 책들만 봐서 그렇겠지만- 그 바탕에는 언제든 종교적인 교리가 깔려있다고 본다. 그것은 다시 수천 년, 수만 년의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다른 학문에서의 주장도 함께 고려해봐야 할 텐데 그런 모든 각기 다른 주장을 뒤집는 고집스러운 주장은 그런 모든 것들이 결정되도록 이미 예정되어 있다는 주장으로 마치게 된다. 그것은 내가 그런 종류의 탐구에 흥미를 잃은 계기이기도 하다. 그 의문은 끝이 없는 순환주장을 편다 해서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증명할 수 없는, 마음에만 의존하는 그 주장은 근본주의적인 색과도 맞지 않고, 영지주의적인 의견이라면 그런 의견은 서양뿐 아니라 지구상의 어떤 문화에서도 찾을 수 있는 주장이므로 독립적이지 못하다고 보여진다. 그런 생각의 과정을 통해 변형되어 퍼져나가는 생각 중에 자유의지가 없다고 주장하는 쪽의 의견은 내가 보기에는 이렇다. 인간은 다른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과 비교하여 우수하다. 우수하기에 모든 생물의 먹이사슬에서 최고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으며 다른 생물들은 보여주지 않는 언어나 문자 등을 통하여 서로 교류하고 발전하여 인간의 활동 범위를 지구를 넘어 광활한 우주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인간은 불안을 가질 수 없는 무한한 능력을 갖춘 존재임에도 불안으로 인하여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그 인간이 가진 열등성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인간의 세계에 개입하였을 것이라는 가정을 두어 스스로의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는 심리적 수단임을 부정하려는 것이거나, 인간보다 더 우수한 존재에 자신을 전이시켜 자신의 능력을 보존하고자 하는 것으로, 그런 모든 현상을 다른 관점으로 객관화하여 바라 본다면 죽음의 공포에 불안에 하며 자신을 숨기려 하는 모습임을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인간이 기능적인 면으로 다른 생물보다 우수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기능적인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미생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개미의 뇌에 기생하여 그 숙주의 신경을 조종하여 나무를 기어오르게 한 후 나무를 핥는 소의 간에 기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창협흡충이라는 존재처럼 인간이 갖지 못한 생명유지 수단을 가진 생물들이 언어나 문자 등을 갖지 못한 것은 인간의 관점으로서 보는 단편적인 주장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그런 생물들이 자신들의 의사교류를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때 인간처럼 발전하지 못한 것은 그런 생활방식으로서 만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이 유전적인 요소일지라도 그 생물들은 인간과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간과 같은 진화의 방식을 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식의 내 생각은 신비주의라고 보여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인간이 다른 생물보다 우수하기 때문에 자유의지가 필요 없는 결정된 운명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결정론이 참이면 당신의 미래도 고정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은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결정론이 참이면 당신의 본성도 고정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을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나머지 세계와의 상호작용에 반응하여 본성을 변화시키도록 설계된 실체가 되도록 진화했기에 우리 본성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결정론에 대한 잘못된 걱정이 야기되는 것은 고정된 본성을 지닌다는 것과 고정된 미래를 지닌다는 것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그 혼동은 우주에 대한 두 관점을 동시에 고수하려고 할 때 생긴다.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펼쳐보는 신의 눈관점과 우주 안에 살아가는 행위자의 관점이 그것이다. 142p

 

이런 것을 혼돈케 하는 것은 뇌가 선택을 하고 근육이 또는 신체가 반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300밀리세컨드라는 시간. 그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바로 이 300밀리초의 도덕적 공백이 문제다. 마치 당신의 뇌가 당신이 행동을 하기 전에 결심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8장 당신은 무지한가? 316P >

 

일부 생물학자들의 의견은 자극에 반응하기까지 그만큼의 공백이 있으므로 사람의 심신에 관한 모든 것은 인간의 뇌가 결정하는 것이 전부인 듯 주장하는 것 같다. 그럼으로써 일부는 자아의 결정에 대한 모든 것은 외부에 있는 무엇으로부터 명령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없는 것이며 인간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종교적인 상황으로 끌고 가기도 한다.

하지만 꼭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달라지는 것은 그 사람의 유전적 요소와 그가 살아온 문화적 환경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웨그너Daniel Wegner가 말한 것처럼 사람은 눈덩이처럼 계속 증가하는 타협 과정 속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바로 그런 존재가, 즉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는 존재가 된다.” 349P

신경과학자 라마찬드란은 그 점을 이렇게 조롱한바 있다. “이것은 우리 의식적 정신이 자유의지(Free Will)가 아니라, 오히려 안 할 자유(Free won’t)를 지닌다고 시사한다.” 322P  

 

하지만 문제가 되는 그 공백의 시간은 뇌의 신경이 반응하기 위하여 불가피한 최소한의 시간이라고 하는 것 같다. 공백의 시간이 뇌 속에 존재하는 호문쿨루스가 레버를 움직이는 반응의 시간인가 아니면 외부의 명령을 교차통신이라는 기술로 받아 적는데 걸리는 시간인가. 그것도 아니고 뇌가 순전히 생물학적 반응으로 움직이는데 걸리는 시간에 불과하다고 해서 주위의 자극에 감각이 반응하고 신체가 결정에 따른다고 해서 인간에게 있는 의지는 온전히 자신의 결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인가?

 

어쨌든 그것은 그 간격이 착각임을 보여줌으로써 자유의지를 구할 수 있다. 이 가설에 따르면, 당신은 뇌의 일부가 까딱거리기로 결정할 때 의식적으로 까딱거리기로 결정을 하지만(준비전위가 생성될 때 그것을 타고 거기에 있었다.), 그 뒤에 당신이 시각중추로 가서 최신 글자판을 포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 때문에 그 결정의 객관적인 시각을 잘못 판단한다. 327P 

 

그렇다면 뇌신경이 보편적이지 않아 질병으로 분류 되는 장애를 가진 뇌가 결정을 했다고 보여지는 행위에 대하여는 그 결과가 어떤 것이든 규범에서 예외로 해주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의 뇌에 대하여 벌을 내려야 하는가? 그 뇌는 나의 자신 자아 초자아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 내가 아닌 무엇인가? 결정되어있는 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운명이라면 그 시점은 어디서부터인가? 시기를 어느 시간이라고 가정한다고 하여도 인간의 행위에 개입할 수 있는 인간에 의한 여러 상황들, 또는 좁아진 공간에 의한 주변인들과의 관계에서 얽히고 설킨 어디 부분이 나에게 결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인간이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고 소멸하는 독립적인 무엇이라고 하거나, 자신의 존재를 불안감의 노예로 만들어 스스로의 창조물에게 복종적이고 환경에 적응하려는 힘을 잃어 방황하는 무엇으로써 죽음의 과정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형태라도 생명을 이어가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약하고 외로워하는 존재라고 한들 이득을 보는 것은 무엇이고 달라지는 것은 무엇일까? 미래가 있다고 해서 달라지고 변화한다고 하는 것은 시간을 단편적인 관점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내게 있어서 이런 생각 끝에 머무는 곳은 항시 동양의 사유방식에 있다.

그런 형태는 서양의 심리학자에게서도 볼 수 있었다.

 

우리 인생에는 삶이 줄 수 있는 행복들도 많지만 또한 회피할 수 없는 비극들이 있다. 특별한 고통이 없더라도 우리는 늙고, 병들고, 죽어간다. 보다 철학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우리의 삶은 본질적으로 유한하고 고립되어 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 성취하거나 즐길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며 우리는 모두 고유한 실체이기 때문에 고립되고 분리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추구의 보다 격렬하고 아름다운 표현이 우파니샤드에서 발견된다. 우파니샤드에는 강은 흘러서 바다로 사라지면서 그 형상과 이름을 잃는다고 씌어 있다. 보다 큰 것을 위해 자기를 해체시킴으로써 보다 큰 실체의 일부가 되며 그렇게 함으로서 인간은 그의 한계성을 극복하게 된다. 현대인의 이상성격; 카렌 호나이 14장 신경증적인 고통의 의미 250p

그러나 이와 같은 추구도 말과는 다르게 그 책의 앞부분에서는 세상사에 초연하고 스스로 만족하려는 불안에 대한 방어 수단의 하나인 초연함이다라고 했다. 5장 신경증의 기본적인 구조 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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