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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 강의 -상 ㅣ 불연 이기영 전집 30
이기영 지음 / 한국불교연구원 / 1999년 11월
평점 :
"괴로울 때엔 마음의 평정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언제나 잊지 말 것이며,
행복할 때엔
과도하게 기뻐하는 것을 삼가라."
-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 BC 65~BC8)
기원전 65년에 로마에서 태어난 사람이 남긴 말을
독일의 철학자 Schopenhauer(1788~1860)는 자신의 책에 인용하였다.
"스토아 적 윤리가 주로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망상과 그 결과에서 마음을 해방시켜 망상대신 마음의 평정을 주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유명한 송시에 보면 호라티우스는 이러한 통찰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4권 의지로서의 세계에 대한 제2고찰 >
그런데 이 로마의 시인보다 약500년이나 앞서서 살았던
중국 주 왕조(BC1046~BC256)시대의 노자(BC600? ~ BC470?)가 한 말.
爲 無爲 (위 무위): 억지로 함이 없는 함을 실천하고
事 無事 (사 무사): 일함이 없는 일을 실행하고
味 無味 (미 무미): 맛없는 맛을 맛보십시오
大小 多少 (대소 다소): 큰 것을 작은 것으로 여기고 많은 것을 적은 것으로 생각하라.
<도덕경 63>
또 호라티우스가 살았던 그때로부터 800년이나 지난 날
그것도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중국 당나라시대의 선사(禪師) 임제(臨濟) 의현(義玄)(? ~ 866)은 이렇게 화두(話頭)를 남긴다.
師云: 你且 隨處作主 立處皆眞 境來回換不得 (니차 수처작주 입처개진 경래회환부득)
스승이 이르기를(師云),
그대들은(你且) 이제 어디에 가든지(隨處) 거기에서 주인이 되도록 해라(作主).
네가 서있는 그곳이(立處) ,그대로 진실된 곳인 것이다.(皆眞)
어떤 경계가 닥쳐오더라도(境來), 돌려서 바꿔 놓을 수 없다.(回換不得)
임제록 13.
또 비슷한 의미로 같은 구절이 있다.
如大器者 直要不受人惑 隨處作主 立處皆眞 (여대기자 직요불수인혹수처작주 입처개진)
큰 그릇이라면(如大器者), 꼭 다른 사람들의 유혹을 받지 않아야 한다.(直要不受人惑 )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隨處作主), 서 있는 곳마다 다 참인 것이다(立處皆眞)
임제록 15.
그리고 다시 800년이 지난 명나라 말기(1368~1644) 양명학을 하는 유학자 육상객(陸湘客).
이른바 육연(六然)을 주장한다.
주변의 환경에 따라서 흔들리지 말고 초연하며 (자처초연-自處超然)
사람에 따라서 감정을 달리하지 말고 초연하며 (처인초연-處人超然)
일이 많아 바빠도 일에 쫓기지 말고 초연하게 (유사초연-有事超然)
일이 없더라도 불안하게 생각 말고 초연하게 (무사초연-無事超然)
뜻을 이루고 성공해도 들뜨지 않고 담담하게 (득의담연-得意澹然)
최선을 다하였으나 실패했더라도 태연스럽게 (실의태연-失意泰然)
解 - 幽松
그로부터 다시 300여 년이 흐른 1979년 류송월(柳淞月)이라는 승(僧)이
“六然을 요약하면 수처작주(隨處作主-입처개진(立處皆眞)이 되고 이 글귀를 전개하면 육연(六然)이 되는 것이다.”라고
풀어 쓴 책을 출판했다.(흥신 출판사:1979/禪名句二百選)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음미되어온 말에 사족을 달면 쓰레기가 되어버릴 텐데……
세월은 글자 몇 자로 성큼성큼 건너 뛰었지만 그 2,000년이란 세월의 면면을 세세히 볼라치면 글자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만큼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초연(超然)하다라는 말을 동서양의 시대를 달리 산 현자들이 한 뜻으로 추구했던 것을 보면
그렇게 하기가 얼마나 힘들까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희망이야 가질 수 있겠지...